농사를 흔히 말하기를 밭농사를 기준으로 2백 평 이상이면 텃밭이 아니라 농사라고 말한다. 이 평수를 가꾸려면 농사에 필요한 것은 거의 있어야 하고 노동력도 만만찮은 것이다.
보통의 농사일을 싫어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농사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도 텃밭을 가꾸는 것이 로망일 것이다. 나이 들어서 시골이나 도시 근교에 전원주택을 짓고 그에 딸린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것이 꿈인 사람도 많을 것이다.
텃밭에 여러 가지 작물을 심어 놓으면 커가는 것도 보면서, 나중에 수확도 하고, 이웃이나 자식들과 나누어 먹는 맛도 있다. 작물의 종류도 많아 금방 자라면 먹을 수 있는 채소도 여러 종류이고, 그해 수확할 수 있는 과일이나 과일나무도 종류별로 심어서 수확하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식물이나 과수를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니 더 애착도 가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는 그만이다.
이웃 도시에 가서 누굴 뵈려고 갔는데, 아직 만날 사람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식당 앞에서 서성이다가 보니까 산과 붙어 있는 조금만 땅을 일구어서 땅콩을 한 줄 길게 심어 놓았다.
그 심은 땅콩들이 벌써 생기를 찾아 자리 잡고 잘 자라고 있었다. 땅에 검정 비닐을 깔고 심어 놓았기 때문에 잡초 걱정도 없이 가을에 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문득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에 있는 논밭은 원래 농사하던 주인이 돌아가시고 그 자손들이 물려받은 것이 많다. 그 자손들이 대개가 다른 곳에서 살기 때문에 토지는 보통 임대를 준다. 임대해서 농사짓는 사람 중에는 농기계 출입이 쉽고 평지에 있는 땅을 임대하기를 원하고 산비탈이나 산속에 있는 땅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던 것이 논농사만 주던 정부 보조금인 직불금이 밭농사까지 확대되면서 이제는 그런 비탈밭도 경작한다. 직불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농민들 중에는 만평 이상 경작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만평 이상하면 정부 보조 직불금도 천만 원 이상 나온다. 그 외에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무척 많다. 그래서 이제 농촌으로 돌아오는 청년이 더러 있다. 본인만 부지런하면 농지는 얼마든지 있고, 정부가 지원하는 농기계나 자금이 많아서 수만 평도 경작 가능하다
농사일도 거의가 기계로 하기 때문에 기계를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종류별로 기계도 구입해야 한다.
농약을 칠 때도 이제는 완전무장을 하고 기계로 살포하니까 오히려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농약에 무방비 상태이다. 봄철 한때는 쾌적하고 상쾌한 시골길이 아니라, 아직 덜 썩은 퇴비를 살포해서 그 냄새가 지나가기가 불쾌하고 퇴비 준 농지 주변은 고약한 냄새가 오랫동안 지속된다. 그런 퇴비도 퇴비공장에서 생산해서 살포하는 토지까지 직접 배달해 주는 것이다. 이 시기는 퇴비나 비료를 옮기기 위해서 들녘에 대형 트럭과 지게차가 동원되는 모양이 장관이다.
신세대 젊은이들은 농사하면서 건강도 생각하고 무리하게 일을 하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술도 많이 먹지 않는다. 일을 시작할 때도 몸을 풀고 같은 동작으로 몸을 혹사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단순 반복 동작이 요구하는 힘든 일은 주로 이주노동자를 이용한다. 그들이 힘들고 하기 싫은 고추심기, 고추 따기, 배추심기 등 몸으로 하는 일을 한다. 일당은 하루에 7만 원씩 그날그날 입금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한참 농번기에는 일손이 달리면 농가에서 웃돈을 주어서 경쟁적으로 데려간다. 그때는 11만 원까지 임금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들 중에 상당수는 불법체류자이지만 이분들이 없으면 농사를 못 짓기 때문에 묵인하는 실정이다.
오후에 돌아오면서 텃밭을 만들 생각을 굳혔다.
아직 해본 적은 없지만 그동안 보아왔고 들어온 것이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은 텃밭을 구해야 했다. 생각나는 장소가 있었다. 주인에게 전화를 해보니 그 땅을 사용해도 좋다고 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에 본 땅콩과 고구마를 심고 싶었다. 땅콩이나 고구마는 땅을 일구어서 그 위에 비닐을 깔고 심으면 될 것 같았다. 특히 고구마는 워낙 무성하게 자라서 다른 잡초가 자라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에 밭을 장만해서 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집에 있는 괭이와 삽을 가지고 가서 땅을 일구어 보았다. 땅이 일구어질 것 같았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땅이라서 괭이나 삽으로 땅을 일구기는 어려웠다. 기계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기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트럭터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운전하는 사람은 잘 아는 후배였다. 텃밭을 할 것이니까 땅을 일구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불과 몇 분 만에 트럭타가 왔다가 갔다가 하니까 땅이 다 일구어졌다. 트럭터가 좋기는 좋았다. 그러고는 텃밭은 골은 내가 대충 만들어서 비닐까지 씌웠다. 이렇게 쉽게 텃밭을 만든 것이다.
이왕 만든 김에 오늘 어둡기 전에 작물까지 심기로 했다. 읍내로 곧장 가서 땅콩과 고구마 모종을 사 왔다. 읍내는 장날은 아니지만 채소나 작물 모종이 넘쳐났다. 종류도 쌈 채소만 해도 수십 가지가 되고 다른 모종도 많았다. 이렇게 모종만 가꾸어서 파는 농장도 규모가 클 것 같았다. 많이는 사지 않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때쯤 텃밭에 심거나 아니면 옥상에나 골목 앞이나 화단 등에 용기에 흙을 담아서 심기 때문에 수요는 많을 것이다.
땅콩 두 판과 고구나 한단을 샀다. 가격이 몇 천 원이 아니라 몇 만 원이다. 이 모종이 잘 자라기를 바라면서 텃밭에 도착해서 심으니까 지나가던 지인이 그렇게 심으면 안 된다고 했다. 구덩이를 뚫어서 그 안에 작물을 심는 것까지는 맞고, 그다음에 나처럼 그냥 흙을 덮어서 눌어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땅이 물기가 많으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통 땅에 수분이 없어서 말라죽는다는 것이다.
작물을 구덩이에 넣고 그다음에 그 구덩이에 물을 충분히 준 다음에 흙을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몇 포기는 다시 원위치시키고 물을 구해야 했다.
물이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다. 물을 구할 수 있지만, 물을 줄 수 있는 조리도 없었다. 그 조리는 일단 이웃에 빌려서 사용했는데 물을 길어 오는 거리가 멀어서 물을 많이 줄 수가 없었다. 내가 보아도 목말라죽지 않을 정도로 주었다
땅콩과 고구마를 다 심었다. 주변에 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비닐을 깔아 놓은 모양과 비교해 보았다. 내 텃밭은 꾸불꾸불하고 편평하지도 않고 높낮이가 한눈에 보아도 심했다. 심긴 땅콩이나 고구마는 임자를 잘 못 만난 것이다.
처음 땅을 장만할 때 거름이나 비료를 뿌리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생각은 몰라서 못했다. 그저 비닐만 깔고 심으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냥 영양분이 주지 않은 땅에다 심었기 때문에 앞으로 크려면 애로가 많을 것 같다. 그래도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텃밭을 만든 것이다.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가을에 수확할 때에 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 줄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까 땅콩은 그대로인데 고구마는 모두가 기절해 있다. 고구마는 싹을 잘라서 심는 작물이기 때문에 땅에 묻힌 잘린 줄기에서 뿌리가 내려서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심으면 마치 죽은 것처럼 모두가 힘없이 누워 있다가 며칠 지나면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고 기다리면 될 것 같았다. 또 다른 분에게 물어보니까 물기가 없고 건조하면 뿌리를 못 내리고 말라죽는다는 것이다. 내가 심을 때는 물이 멀어서 조금씩만 주었다. 지금은 비도 안 오고 줄기가 뿌리를 못 내리고 싹이 안 나올 가능성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다른 분은 고구만 싹을 집에서 키운 것은 줄기를 굵게 키워서 어지간하면 잘 살지만, 시장에서 사 온 고구마는 줄기가 가늘어서 잘 죽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가보니까 줄기가 가는 것 같았다. 고구마는 여전히 말라가고 있었다. 다음날도 가보니까 고구마는 아직도 일어날 기미도 없이 정원 비닐에 탁 붙어 있다. 보면 신경 쓰이고 살면 살고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비가 왔다. 비오 날은 농부들이 휴일이다. 토요일이나 국경일에는 일을 하지만 비 오는 날은 일을 못하기 때문에 농촌의 휴일이다.
이주노동자들도 비 오면 휴일이다. 이날은 모여서 회식을 하는 날이라고 한다.
시골에서 농사하는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은 술 먹는 경우가 많다. 술이 체질적으로 받지 않거나 몸이 아파서 술을 못 먹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농사철에 비 오면 보통 모여서 술을 먹는다. 술을 먹으면서 농사정보도 교환하고 농사하느라 힘든 것도 잊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니 아침부터 비가 오면 친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이다. 적어도 점심 전에는 술이 시작된다. 비 오는 날은 누구도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농사철에 자기가 한 일의 진도도 점검해보고 다른 집과 비교도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자기가 미진한 부분을 할 생각도 하고 계획을 짜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이 조금 지나서 전화가 왔다. 모이자는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아침부터 청승맞게 비가 오니까 멍하니 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그런데 고구마 생각이 났다. 비가 오니까 기절한 고구마가 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전에 술 먹으러 오라고 전화 온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비 오면 고구마는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엄청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 오는 비를 먹고 모두 살 것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술자리로 단순에 달려갔다. 농사하는 사람들은 하늘이 도와야 잘 된다는 말을 예전에 들은 기억이 났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조금만 텃밭을 해도 신경이 쓰이고, 고구마 싹이 죽고 사는 것도 비가 좌우하는데, 수만 평 하는 농부들은 신경 쓸 일이 얼마나 많을까?
비가 안 와서, 바람이 불어서, 너무 추워서, 너무 더워서 걱정거리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술이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술 먹는 동안은 잊을 수 있고, 특히 비 오는 나에는 아무도 일을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술맛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