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by 안종익


산티아고 순례길은 앞서가는 순례객을 따라서 걷는다.

순례 행렬은 일정한 사이를 두고 목장으로 가는 소들처럼 길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짚고 가는 스틱도 일정한 리듬을 타는 음악처럼 들린다.

순례길에서 걸음이 빠른 순례객들이 앞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렬에서 처지지 않도 모두가 최선으로 걷는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뒤에서 빠른 걸음 소리가 난다. 계속 따라오는 것이 힘 좋은 젊은이인 줄 알았는데 백발의 노인이 “부엔 까미노”를 외치고 힘차게 앞을 지나간다. 머리만 흰 것이 아니라 긴 흰 수염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계속 갈수록 거리는 벌어진다.

한참을 걷다가 보니까 노인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은 정도로 멀리 걸어간다.


이제 혼자 걷는 순례길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 순례길이 끝나면 무엇을 할지 생각에 잠긴다. 일단은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다.

아직은 사람과 어울려 같이 일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아니면 일없이 편하고 즐겁게 한잔하면서 주로 운동을 소일거리로 하면서 살면 힘들지 않은 세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남들이 살 듯이 무리 없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운 세월이라는 마음이 드니까 삶의 의미를 찾는다.

무엇인가를 해야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사실 마감할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끝이 보이는데 열심히 산다는 것은 쉽지는 않다. 마치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인데, 그런 마음을 먹기는 어렵다.

그래도 아직은 그런 마음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끝까지 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길은 고독한 길이고 인내해야 하는 길이다.

말없이 내실 있는 시간과 늘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그 길을 가자면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야 하고 늘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는 일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더라도 하루 세 시간 이상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고, 아니면 인고의 단련 시간이 필요하다.

무늬만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여러 생각 속에 그 길을 선택하고 마음을 정리한다.

어디에도 기웃거리지 않고 오직 남을 세월을 내 멋에 사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타인의 간섭이나 관심 밖에 있는 진정한 자유인 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자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오르막이 심한 곳을 걷고 있다. 오르막으로 가는 길이 힘들어지니까 나이 든 순례객들은 걸음이 느려진다.

멀리 힘들게 올라가는 그 노인이 보인다. 노인이 그렇게 잘 걷던 길도 오르막에는 느려지면서 자주 쉬기 때문에 앞서가던 노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거의 나란히 걸어간다. 노인은 여기서부터는 내가 앞서가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이다. 내가 한참을 앞서서 나가다가 갈림길을 만났다.


여기까지 도로와 순례길이 같은 길이었다가 도로길과 순례길이 나누어진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또 순례길과 만나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느 길이 더 쉽고 좋은 길인지 아무도 모른다.

순례길은 계곡 쪽으로 가는데, 계곡이 깊어서 오르막이 심할 것 같기도 하고, 도로 길은 약한 오르막이지만 거리가 길 것 같다.

어느 길로 갈까 망설이면서 외투를 벗어 배낭에 묶었다. 오르막 오를 채비를 한 것이다.

그러고는 선택했다. 도로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노인도 뒤에서 갈림길에 도착 중이고, 나는 벌써 도로 길로 십여 미터 올라가는 중이다.

뒤에서 노인이 소리친다. “그 길이 아니다”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택한 길을 올라간다.

돌아보니까 노인도 망설이는 듯하더니 순례 표시가 있는 길을 간다.


처음에는 한참을 올라가도 도로 길은 계속 완만한 오르막이다. 그러던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심한 오르막이 되면서 힘들어진다. 지치고 힘들어 도로에 앉아서 쉬었다.

이 길 선택이 옳았는지 생각과 후회도 하면서 노인이 간 길이 더 쉬운 길인 것 같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한참을 쉬니까 친구 같은 두 사람이 힘들어하면서 올라온다. 이 두 분도 도로 길이 쉬울 것으로 판단하고 선택한 것일 것이다.

한 친구는 힘들어서 나처럼 도로가에 쉬려고 주저앉았고, 다른 친구는 힘이 남았는지 친구를 남겨두고 혼자서 걸어 올라가고 있다.

고갯길은 친구도 도울 수 없고 혼자 가야 하는 길이지만, 친구는 같이 쉬지 않고 혼자만 올라가는 것이다.

친구 사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인 것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보지 못한 길이 더 좋았을 것 같고, 내가 살아온 길이 힘든 길이었다는 마음도 든다. 인생에서 가보지 못한 길이 더 좋아 보이고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이 있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 힘들게 걸을 때 건넛마을이 보인다. 그 마을에 가지 않고 다른 길이 있어서 고개를 넘었으면 했지만, 그 마을로 길은 가고 있다.

바라는 것이 이루진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기억에 오래 남고 이루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버리지 못한다.


오르막은 긴 길이었다.

뒤처진 친구는 아직도 저 아래에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다. 앞서간 친구는 벌써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 도착하니까 마을 입구 바에서 사람들이 많다. 힘든 오르막 고개를 올라와서 한잔하는 중이다.

노인도 한편에 앉아서 큰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쉬고 있었다. 언제 도착했는지는 노인만 알뿐이다. 나를 보고 미소를 보낸다. 나도 따라서 웃는다.

노인의 길이 더 좋은 길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내 길은 힘든 길이었다.


가보지 않은 길은 선택하지 않아 가보지 못한 길이기도 하지만, 누구도 가지 않은 길도 그런 길이다. 나는 가보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한다.

예전에 걸었던 해파랑길에서 얻은 것이 노력을 해야 무엇이든지 이루어지고 보람과 결과와 만족도 온다는 당연한 것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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