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by 안종익


유럽 여행을 다녀온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다녀온 뒤로 아무런 일도 없었고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잠시 보지 못한 지인들을 만나서 술이나 먹으면서 보냈다. 마치 여행을 다녀오지 않은 옛날처럼 보냈다.

시간만 끊어지지 않고 무심히 흘러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행 중에 들고 다니던 메모장을 보게 되었다. 그 메모장에는 여행 마지막 무렵에 이번 여행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메모해 놓은 것이 있었다. 아마도 돌아오는 도중이나 돌아와서 소감을 쓸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메모도 기억 못 하고, 돌아올 때는 무사히 온다는 안도감과 돌아와서는 늘 살던 곳의 편안함에 취해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메모의 내용을 보니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이번 여행은 평소 무료한 일상과 코로나의 짜증 속에서 벗어나려고 갑자기 용기백배해서 떠난 여행이다. 거의 준비도 없이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첫 번째 목적지의 항공권과 숙박만 예약하고 용감하게 떠난 것이다. 무모했지만 아마도 집에 있어도 그 시간들은 의미 없이 흘러갔을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잘한 여행이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사실 가슴은 그렇게 뛰지는 않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많지 않았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고 두려운 생각도 없었다. 여행 중에는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길 찾기에 온 신경이 갔고 새로운 곳으로 갈 때마다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정신을 차리면서 살았던 시간들이다.

그래도 간간이 만족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것은 무사히 예정한 여행지에 도착해서 매체나 책에서 보던 관광지를 구경하면서 아직도 충분히 잘 걸을 수 있는 있다는 생각과 내가 평소에 하고 싶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을 느낄 때에 행복했다.

그래도 앞으로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개념이 확실히 선 것도 아니고, 여행의 방법도 명확히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동행이 있으면 이야기 벗이 되어 외로운 생각이 덜 찾아올 것 같으나, 여행의 멋은 혼자 하는 것이라는 말에도 공감하는 혼란한 상태이다.


여행을 떠날 때에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서 떠났는데, 실제로 힘들 때 부탁을 하면 들어주고 힘든 얼굴을 하면 도와주는 것이 사람들이 있어서 초보 여행자도 다닐 수 있었다.

때로는 삶이 찌들어 나쁜 사람도 있었지만, 선한 사람도 많았고 대부분은 사는 것이 바빠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자기를 위해서 살고 있었다. 때로는 사는 것을 즐기려는 애쓰는 마음이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니 사람 사는 곳은 별로 다를 것 없이 비슷하다는 것도 느끼는 여행이었다.

너무 풍요롭게 편하게 사는 사람도 많았고, 너무 어려워 힘들게 사는 사람도 많은 것이 세상이었다. 이런 좋고 나쁜 모든 구성원이 있어야 세상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처럼 바쁜 것도 없이 온종일 거리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보내면서 맥주나 마시면서 지내는 사람들이 더 인상에 남는다. 너무 일에 매몰되지 말고 즐기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좋아 보였다.

그렇게 천천히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나 바쁘게 사는 사람도 보내는 시간은 같은 것이다.

내가 아는 노인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잘 못 사는 것 같은 마음이 들고, 더운 날에도 일을 해야 마음이 편안하고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보다 즐기는 시간을 더 갖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본 것도 이번 여행이다.


세상에는 잘나고 멋진 사람도 많지만, 못생기고 장애를 가진 사람도 좋고 멋진 것에 위축되거나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당당히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뚱뚱해서 하마 같은 몸이지만, 비키니를 입고 있고 즐기는 여자분은 남들이 자기 모양을 더 구경한다는 것을 알지만, 주목받는 모양새를 의식하지 않는 태도에서 자신을 긍정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오히려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했다. 세상을 자기 멋에 살아야 하고 그 모습이 본인에게는 최고인 것이다.


그래도 게으른 삶보다는 부지런한 삶이 살아야 한다.

노는 것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더 즐겁고, 하고 싶은 것도 더 열심히 해야 얻은 것이 많은 것이다. 부지런한 것은 우리 인간의 중요한 덕목이다.

여행에서 사람들은 제각각으로 살지만, 특별한 삶이 없었고, 그렇게 위대한 인간의 삶도 내용을 들려다 보면 회의감이 들 때가 많았다. 온통 유적들은 승자의 전리품이었고 기록일 뿐이지 그것이 반듯이 진실이고 선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느낌이고 때로는 오랫동안 왜곡된 진실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이 그런 약육강식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오직 현재를 살면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만 찾는 것이 복잡한 진실을 아는 것보다 좋은 것이다.


여러 사람을 보았지만 모두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고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이렇게 이방인처럼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서 그래도 그 당시 좋은 사람은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친절한 웃음 뒤에는 속임수가 있을 수가 있지만, 우선 다정한 사람들이 편안했다. 그렇게 급한 것도 없는 세상에 인상을 쓸 일도 성질을 낼 일도 없이 친절한 사람이 세상을 밝게 하는 것 같다. 다정하게 대하면 상대도 편하고 일도 쉬워지는 것 같았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는 힘이 들고 내가 왜 걷는지 묻고 싶었고 실제로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때는 달리 갈 곳도 없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반쪽짜리 여행에서 걷는 것은 말로 걷지 않고 다리로 걸으니까 산티아고 길은 온전한 여행이었다. 산티아고 길은 목표도 있고, 걷고 그리고 먹고, 자고 또 걸으니까 머리도 복잡하지 않고 좋은 시간이었다. 힘든 걷기를 하니까 몸도 활동적이고 걸어간 거리만큼 결과물도 있는 여행이었다. 우리의 삶도 노력하고 결과물이 있어야 사는 것 같은 삶이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걸어간 산티아고 길이 지금은 가장 생각나고 오랫동안 잊지 못할 길일 것 같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삶은 계란을 먹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산티아고 길의 숙소인 어느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전열기구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마트에 가서 계란을 샀다. 돌아와서 삶으려고 냄비를 찾으니까 냄비가 없었다. 또 어떤 알베르게는 냄비는 있는데 전열기구가 없는 곳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계란을 삶지 못하고 버릴 생각을 하다가 옛적에 할아버지가 날 계란을 먹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때부터 날 계란을 먹기 시작해서 산티아고 길 내내 단백질 보충은 날 계란으로 했다.


여행 중 어느 날 문득 참 오랫동안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여행은 삶을 길게 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때 여행은 시간이 늦게 흘러간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매시간을 열심히 신경을 써서 길을 찾았고 무사히 찾은 다음에는 안도의 기쁨도 맛보았으면 그 시간들은 거의 새로운 것을 경험한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보니까 시간이 늦게 흘러간 것이다. 여행은 우리의 삶을 느리게 가게 하니까 일 년을 여행해도 수년을 산 것과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보는 것마다 새로운 것이니까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끼듯이 여행도 그런 것이다.

여행은 동심으로 해야 양질의 여행이 된다. 다시 여행을 떠날 때는 동심을 찾아서 갖고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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