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풀을 뜯어먹어도...

by 안종익


할아버지가 늘 농사일만 하시다가 어느 날 서울에 다녀온 것이다.

늘 절약이 몸에 밴 어른이 서울까지 경비를 들여가면서 갔다가 오신 것은 서울에 열린 박람회를 구경하러 가신 것이다. 그 시절에서도 구경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하려면 비용이 있어야 하고 또 용기도 있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누가 서울 간다고 하면 마을에 소문이 나고 무엇 때문에 가는지도 알 정도로 먼 곳을 다녀오면 관심의 대상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오던 날 저녁에 친척들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이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에 무사히 다녀온 인사도 하지만, 서울에서 무슨 구경을 했는지 듣고 싶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싶어서 모이는 것이다. 저녁 늦게까지 할아버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같이 웃고 담소하던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거의 준비 없이 다녀온 3개월간의 여행은 끝났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관심은 받을 줄 알았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 동생까지 마중을 나와서 그런 생각에 확신에 갔지만, 실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외국 여행을 간 것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았고, 알아도 내가 외국에 간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만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한 것이다. 그것은 아직도 남의 눈이나 관심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가 살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있어도 본인과 관련이 있거나 이해득실이 있을 때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한 것을 말이나 생각으로는 아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는 늘 남을 의식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에 다시 한번 느낀다. 세상은 자기에서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실제로 3개월 동안 내가 안 보였지만, 무엇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친한 사람 중에도 안부 전화를 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전화했던 사람은 나와 친한 인연이고 가까운 사람이고, 연락하지 않은 사람은 실제로는 별로인 관계인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를 보더니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라는 사람도 있었다. 같이 살면서 서로 엇갈려서 그동안 보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표정이다. 그런 사람이 현실적인 이웃의 모습인 것이다.


각자가 본인의 일에 몰두하다가 보면 다른 사람의 일에는 관심이 멀어지고 그렇게 알 필요도 없다.

실제로 자기 일이 중하니까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정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남의 의식하면서 살다가 보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후회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물론 오직 본인만 생각해서 이기적으로 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적 동물로서 서로 관계에서 의식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불필요한 남의 시선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별로 관심 없는 세상에 너무 남을 의식하면서 살 필요가 없다.

남이 항상 나를 지켜본다는 생각과 남과 비교하는 삶은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여행을 다녀와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관심이 없기는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자기 살기가 바쁘니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없는 동안에 빈자리가 허전한 생각은 했겠지만, 그렇게 없는 것이 불편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조용해서 더 좋다는 마음도 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만치 나의 존재의 의미는 작아졌고, 내가 할 역할은 다한 것이다. 그것이 서운하다는 마음을 먹기보다는 세월의 이치가 내가 있을 자리를 비켜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없어진 자리가 그렇게 갑작스러운 표시가 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비켜 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별로 표시가 없는 처지는 다시 나만의 공간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 공간은 오래 머물지 않고, 기억이 오래 남지 않은 곳이다. 낯선 곳으로 이방인처럼 떠돌고 싶은 것이다.


살아온 시간들이 별로 다정하고 붙임성 있게 살아오지 않았는 것 같다.

여행한 수개월 동안에 평소에 연락하고 지내던 사람도 한 번도 연락 오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이다. 물론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연락을 하는 것이지만, 나를 먼저 생각난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제 나는 잊혀도 되는 것이고 부담 없는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 같다. 이제 그 부담 없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서 최소한 부담이 되는 구성원은 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아는 지인이 필리핀으로 오면은 세부라는 곳에서 쉬기도 하고 물가가 저렴하니까 보내기는 그만이라는 연락이 왔다.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에 아쉬움이 있는 것을 잠시라고 잊고 싶어서 어디든지 떠나고 싶은 때였다.

연락이 오니까 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그곳이 여기보다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곳은 영어를 주로 한다니까 다음에 낯선 곳을 여행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도 해 본다.

또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나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도 별로 차이가 없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도 급하게 예약하고 짐을 꾸려서 세부로 출발해 본다.

새로 무엇인가 하다가 보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가 보일 것 같은 막연한 기대 속에 또다시 새로운 여행지로 가 보는 것이다. 무료하게 보내지 않고 자존감 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서 다시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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