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바라는 모습은 표정에서도 볼 수 있지만 분위기에서도 알 수 있다.
바램은 희망보다 더 간절함이 있고 살아가면서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을 것이다.
바램은 본인들의 생각이므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도 바램이 있을 때가 좋은 날이고 살만한 시절일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다시 스페인 땅끝마을까지 걸어가서 마음에 담고 있던 아쉬움이나 잊고 싶은 것을 내려놓으려고 했었다.
걷기 마지막 날 대서양을 바라보면서 많은 위안과 겸손을 배웠다.
날이 저무는 저녁 시간에 땅끝을 뒤로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제 다 걸었다는 마음에서 곤하게 잠이 들었지만, 새벽에 어김없이 잠에서 깨었다.
잠이 깨니까 땅끝마을의 일출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일어나 숙소를 나섰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에 간밤에 내린 비에 도로가 촉촉이 저 저 있다.
마을에서 땅끝까지 가는 거리는 3Km나 되는 상당한 거리이다. 땅끝마을의 일출을 보러 관광객들이 많이 갈 줄 알았는데 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어두운 새벽에 적막한 도로만 어렴풋이 보인다. 관광객들은 간밤에 비가 왔고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구름이 잔뜩 낄 것 같아 일출을 포기한 것일 수도 있다.
땅끝까지 가는 동안에 어두워서 걷기 힘들어 인도를 가지 않고 도로를 따라서 걸었다. 이 길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곳에 가로등이 없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야고보의 동상을 지나서 멀리 땅끝이 보이는 곳에 왔을 때 등대의 불빛이 대서양을 향해서 돌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때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어두운 바다와 파도 소리만 들리고 고요한 새벽이었다.
멀리 땅끝의 등대가 보이면서 바다 위에 솟아있는 땅끝의 언덕이 유난히도 높아 보인다.
땅끝에는 아직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멀리 희미하게 안갯속 사람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앉아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뒤에 서 있는 것 같다.
나보다 더 먼저 일출을 보기 위해서 올라온 것이다. 가까이 가보니 경계석 위에 앉아서 해 뜨는 쪽을 바라보는 사람은 소녀였고 그 뒤에서 소녀를 지키듯이 서 있는 사람은 엄마인 것 같았다.
사람이 올라와도 관심을 두지 않다가 엄마만 가벼운 목례로 인사하고 소녀는 계속 해 뜨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나도 주변에 자리 잡고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본다.
예정된 일출시간이 다가오면서 해 뜨는 동쪽에서 약간 붉어지기 시작한다.
날이 밝아 오니까 구름이 동쪽 하늘에 많이 있다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해가 뜨는 동쪽에 구름이 많아서 일출을 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대를 갖고 눈은 계속 동쪽에 두고 있다.
구름 사이로 하늘이 보이는 곳에 해가 고개를 내밀 것 같은 생각도 들고 구름이 갑자기 걷히고 환한 해가 나타날 것 같은 생각도 해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고 땅끝마을에 와서 떠오는 태양을 보면서 바램을 빌어 본다는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더욱 일출이 보고 싶어 진다.
옆에 있는 소녀의 눈은 동쪽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움직임이 없는 망부석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간절한 바람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 뒤에 있는 모친은 그런 소녀를 지키면서 소녀의 바램이 꼭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 있는 것 같다.
소녀의 얼굴은 희고 순수해 보이면서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보는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맑은 눈이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소녀가 땅 끝에 뜨는 해를 보고 싶어 할 수도 있고, 소녀가 큰일을 앞두고 뜨는 해를 바라보면서 바램을 빌고 싶어서 해를 기다리는지는 몰라도 간절한 바람이 느껴진다.
하늘은 구름이 걷힐 것 같지 않았지만 해가 떠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해가 바다 위에서 솟아오를 시간은 지났지만 구름은 걷히질 않고 구름 위에는 해가 비치는 햇살이 주위 구름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러더니 소녀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인지, 구름 사이로 작은 하늘이 보이고 햇볕이 보이는 듯하다. 그 구름 사이가 조금 더 걷히고 해가 나오면 소녀의 간절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름 없는 온 하늘에 붉은 태양이 솟아야만 일출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름 사이로 해가 잠시 고개만 내밀어도 일출이 되는 것이다. 해는 구름 사이로 나타날 것 같이 햇살이 구름을 계속 붉게 물들인다.
아직도 소녀는 움직임 없이 해 뜨는 곳만 바라본다. 뒤에 있는 엄마도 같이 망부석이 되어서 움직임이 없다. 일출을 보려는 소녀의 마음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나도 붉어진 구름을 바라본다.
해는 거기까지였다. 다시 구름이 붉은빛을 가리더니 이내 동쪽 하늘은 구름이 다 덮어버렸다.
잠시 붉은빛을 보여 준 것도 소녀의 간절한 바람이 있어서 나타난 것이고 소녀의 바램이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이제는 더 이상 일출을 보기 힘들어졌을 때 소녀의 움직임이 있었다. 헝가리에서 온 모녀는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서 올라왔다고 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무슨 바램이 있는지 묻지는 못했지만, 간절한 바람이 있는 것 같다.
바램은 비밀스러우면서 잘 이루지지 않는 아쉬움이 남는 마음이다. 앳된 소녀의 얼굴에 아쉬움이 보이면서 온 길을 돌아가는 모녀의 뒤 모습에서 그래도 미련이라는 작은 희망이 보았다.
그날의 땅끝의 언덕 위에 일출을 보려고 온 사람은 소녀의 모녀와 나, 세 사람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