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삶이 소설이다

by 안종익


<모든 삶이 소설이다.>

어렵게 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자기의 삶은 소설을 써도 몇 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살아온 것이 힘들고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아마도 살면서 자기가 의도한 대로 되었다면 성공한 자서전은 될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자기의 삶이 소설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처럼 살았다는 것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고, 거기에는 이유와 사연과 아픔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소설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살아오고 살아갈 인생이 소설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단지 감동적이거나 흥미를 끌 만한 것이 많고 적을 따름이다.


모범적으로 가정을 꾸리면서 다음 세대를 만들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다가 죽으면 평범한 삶이다. 이런 경우는 소설이 된다면 교과서 같은 소설이 되는 것이다. 크게 성공해서 무엇을 이룬 사람의 삶은 자기개발서 같은 책이 될 것이다. 보통 우리가 읽고 싶은 소설은 평범한 것이나 성공담보다는 스토리가 있고 반전이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삶을 흥미 있는 소설처럼 어렵고 힘들게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살다가 보니까 읽을거리가 있는 소설의 내용처럼 산 사람이 있다. 스토리가 있지만 힘들게 사는 삶은 모두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예측 가능하지도 않으면서 불안하고 즐겁지 않은 삶이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즐겁게 살면서 해피엔드가 있는 소설 같은 인생을 바란다. 우리는 모두 소설로서 흥미는 덜 하지만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한다.


소설로 써도 흥미 있고, 인생도 보람 있게 사는 삶도 있을까? 있을 수 있다.

그런 삶은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인생의 고비를 모두 극복하고 어떤 목표를 달성하는 그런 것도 있지만, 평범하게 살아도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감동이나 느낌을 주면서 오래 생각나게 하는 삶일 것이다. 그러니 누구나 사는 것이 소설로서 대작은 아니지만, 감동을 주는 작품 같은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삶의 작은 감동이 있는 이야기도 잘만 구성하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널리 알려진 대작처럼 삶을 살거나 경험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작가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만들어 낸 상상력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삶이 소설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은 대작이나 특별한 경험에서 나오는 작품도 있지만, 어떤 감동만 있으면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감동은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그런 것을 잘 구성하고 묘사한다면 흥미 있는 소설인 것이다.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엮는 기술이 있어야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 그런 작가는 인생을 관찰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고 본인의 상상력을 글로써 표현하는 사람일 것이다. 작가는 어떤 사명감이나 열정이 필요할 수도 있고 특별한 통찰력이나 남다른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한 것보다는 근면하고 집념이 먼저일 가능성이 있다. 세밀한 관찰을 하면서 남다른 생각도 해보고, 그것을 표현해서 전달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골에 노인들이나 요양원에서 계시는 노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연들이 있다. 그 나이에 감출 것도 없고 마음속에 있는 생각도 말하고 싶을 때이다. 노인들의 이야기 속에는 살아온 인생도 제각각이고 사는 것이 정해진 길이나 방법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보통 노인들이 말하는 어려웠던 시절에 고생했던 이야기가 관심이 덜 한 것은 그 시절에 누구나가 어려웠고 고생을 했기 때문에 소설의 소재로는 평범하다.

그런데 노인들의 각자의 삶 속에서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이나 어려움 속에서 배려나 희생한 부분이 있다면 감동적이다. 자식을 위하거나 가족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특별한 양보나 희생이 있다면 이야깃거리가 될 수가 있다. 그 외에도 살아오면서 순박하고 자연과 같은 성품을 갖고 평생을 을의 위치에서 살았지만 어떤 가치를 위해서 산 노인들에게서 감동을 찾을 수가 있다.

결국은 모든 사람이 소설의 소재가 될 수가 있고 어디에도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것에 관심이 두고 엮으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요즈음 시절에는 시집갈 나이에 아이 여섯을 낳은 과부가 되고 시부모와 같이 살았으니 이야기가 평범하지는 않지만, 혼자서 고생하고 어른들 공양하고 어렵게 자식들을 키우다가 나중에는 병으로 돌아가신 것은 엄마 시절에는 평범한 슬픈 이야기이다. 그보다는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한 부분이 감동될 수 있는 소재이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어 힘든 일을 하고 조상이나 먼저 간 남편을 위해서 제사 지내던 관습을 버리고 신앙을 받아들여 새벽에 늘 교회 나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면서 산 것도 감동이 있는 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엄마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삶을 산 것이다. 물론 엄마의 삶이 소설이 되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식들에게는 감동의 소설이요 드라마인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기도하는 삶이 평범하면서 특이한 삶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는 특별한 엄마의 삶인 것이다.

어쩌면 모든 엄마의 삶은 그 자식들에게 아름답고 읽고 싶은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감동이 있는 소설처럼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것이다. 그 감동이 대작에서 나오는 느낌이 아니라 느낌이 있는 단편 소설처럼 소소한 작은 감동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처럼 대작이 되어서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우여곡절의 삶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대작의 감동이나 훌륭한 교훈이 되는 삶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작은 이야깃거리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이야깃거리이지만 감동이 있고 읽을거리가 있은 삶을 살아야 한다.

장황하고 긴 읽을거리도 있지만, 짧아도 읽을거리가 있는 삶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 있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우리는 거의 교과서 같은 삶이나 종교의 경전이 말하는 삶을 선호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 것만 삶이 아니다. 평범하지만 잔잔한 감흥이 있고 느낌이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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