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옷

by 안종익


<꽃무늬 옷>


청량리역 광장의 시계탑 밑에는 키가 크면서 몸도 살이 많이 붙지 않은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역 광장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오가고, 주변에는 노숙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였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노인분들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고, 노숙자 중에서 부지런한 사람은 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도 하고 있었다. 역 광장 의자에는 역 주변에 사는 사람들과 노인들이 앉아 있다.


청년은 주위를 보다가 옆에 있는 백화점 쪽으로 걸어갔다. 백화점은 문을 금방 열어서 점포마다 종업원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다. 청년은 백화점 큰문을 지나서 1층 옷 점포 쪽으로 이동했다. 눈치 빠른 젊은 여점원은 젊은이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그 점포는 여자 옷 전문 점포였다.

“누구 입을 옷을 찾으세요”

청년은 말없이 옷을 둘러 보기만 했다. 얼굴에는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망설이는 듯했다. “할머니 옷을 찾는데요” 눈치 빨라 보이는 여점원은 청년을 밀어 넣듯이 점포 가운데로 유도했다.

“우리 집 좋은 옷 많아요”, “연세가 어떻게 돼요."

청년은 새삼 나이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환갑은 이삼 년 남았고요”. "점잖은 옷이었으면……." 말꼬리를 흐렸다. 청년은 물건을 흥정하는 데는 익숙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여점원은 입가에 한껏 웃으면서 옷을 골라서 아들 앞에 보여 주었다. 꽃무늬가 있는 블라우스이었다. 꽃이 너무 커 보이고 색상도 화려하게 보였다.


“너무 화려해요”. 청년은 반사적으로 말했다. 여점원은 그 말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말했다.

“요즈음은 환갑 전에는 이렇게 화려하게 입어요” “입는 분이 누구세요” 도리어 청년에게 물었다.

“엄마” 청년은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여기게 자신을 얻은 여점원은 “엄마를 젊게 입히세요” “아마 좋아할 거예요”

그리고는 그 옷을 청년 상의에 대보기도 했다. 청년은 미덥지 않은 눈으로 옷과 여점원을 번갈아 보면서 갈등하는 눈치였다. 여점원의 눈에는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청년은 여점원이 잡는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보였다. 여러 옷을 보지도 못하고 첫 번째 화려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샀다. 치마도 그 옷에 맞는 것이 있었다. 자연히 같이 샀다. 청년은 엄마의 옷을 처음 산 것이다. 아니 여자 옷도 처음 산 것이다.


다시 옷을 산 봉투를 들고 역 광장에 나왔다. 그 역은 청년이 서울에 처음 도착한 역이고 이 광장은 청량리역 광장이다.

시골에서 올라오면 어리바리한 사람들을 등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소문난 역이었다. 방금 옷을 산 백화점은 역 광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맘모스백화점이다.


아들은 몇 달 전에 서울에 취직했다. 그 직장에서 이제 자리를 잡고 잘 다니고 있었고, 첫 휴가를 얻어 고향을 가기 위해서 청량리역에 온 것이다. 첫 휴가에 고향 가면서 홀어머니의 옷을 사갈 생각이었다.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붉은 내복을 사준다는 말도 들었기에 그 대신 옷을 사려고 생각하고 백화점에 들어가서 첫 번째 흥정에서 옷을 산 것이다.

열차표는 벌써 준비되어 있었다. 고향 가는 열차를 타려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합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동역에 내리니까 벌써 늦은 오후가 되었다. 서둘러서 버스터미널로 가 고향 가는 버스를 타고, 또 다른 곳에서 차를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니까 저녁 무렵이었다. 멀리서 차가 도착을 하자 엄마는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내린 곳에서 집까지는 바로 앞이다. 엄마는 버스가 서는 곳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마도 오후 내내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얼굴에는 온통 웃음뿐이었다.

“오나”라는 말뿐이지만 할 말은 웃음으로 대신하는 듯했다. 아들도 잘 계셨냐는 인사도 못 하고 그저 웃으면서 바라보기만 했다. 손에는 옷이 든 가방이 들려 있었다.

집은 옛날 집이다. 흙집에다가 천정이 무척 낮았다. 들어가는 문이 작아서 큰 키의 아들은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했다. 방에 들어가니까 벌써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몇 시에 나섰노” “힘들었제” 물으시고는 “배 고프제, 밥 먹어라”라고 엄마는 말했다.

얼굴에는 웃음과 취직한 아들이 대견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밥상은 오랜만에 보는 시골밥상이었다. 반찬이 모두 아들의 입에 맞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사 온 옷을 건네면서 “옷이 너무 꽃이 많고 화려한 것 같은데 입을 수 있나?” 하면서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는 옷을 꺼내 보면서 “곱기는 곱다” 하면서도 아들 생각과는 달리 너무 화려해서 못 입겠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봄가을에 입으면 되겠네” 하면서 좋아했다. 아마도 처음으로 아들에게 옷을 받은 것이다.

그 여점원의 말이 맞은 것이다. 엄마도 젊게 보이는 것이 좋았던 것이다. 엄마도 여자였다. 그 옷을 그 자리에서는 입어 보지 않았다.

................

오랜만에 면회가 된다고 했다.

하루 전날에 연락해야 가능하다고 해서 전날에 미리 연락하고, 오후 3시경에 면회를 신청했다. 다음날 병원에 갔다. 평소에는 뒷문을 통해서 들어갔다. 그날도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앞문으로 갔다. 감기 전염병이 돌고부터는 문을 한곳으로 통일한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일단은 면회할 분의 성함을 물었다. “김석남 할머니입니다” 대답했다. 그리고는 출입 대장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쓰라고 했다. 혹시 면회가 안된다고 할까 봐 정자로 뚜렷하게 썼다. 면회시간은 10분이라고 했다. 307호실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고 기다리니까 최고층으로 이동 중이었다. 기다렸다가 갈려고 했지만, 몸은 벌써 계단 쪽으로 가고 있었다. 빠르게 3층에 올라왔지만 숨은 하나도 차지 않았다. 307호는 출입문에서 좌측에 3번째 있었다. 다른 방도 문이 열려 있어서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고 오직 307호만 번호만 눈에 들어왔다. 방호 수 밑에 환자 이름이 있었다. 두 사람 이름이 보였다. 김석남 이름이 뚜렷했다. 안으로 들어갔다. 두 분 다 낯선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은 분명히 모친이었다. 너무 살이 많이 빠졌다. 감기 전염병이 돌고서 처음 보았다. 전염성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굴의 살도 너무 빠졌지만, 다리 살은 더 빠졌다. 정강이 밑 다리에는 살이 거의 없었다.


손을 잡았다.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옆의 간병인은 금방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한참 있으니까 어떤 느낌이 왔는지 눈을 떴다. 눈도 뜨기가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눈이 금방 생기가 조금 돌아오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아들을 본 것이다. 아들은 엄마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다정한 말은 못 했지만, 이 순간에도 어떤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코에도 콧줄을 꽂고 있었고 살이 빠져서 뼈만 남은 팔에는 링거 줄과 연결된 바늘을 꽂혀 있었다. 서로 눈을 쳐다볼 뿐이다. 서로가 눈가에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벌써 10년 가까이 병상에 계신다. 여러 곳을 다니셨지만, 이곳에서 기력이 빠르게 나빠졌다. 감기 전염병으로 인해서 면회도 안 되고 어디가 불편한지 직접 보지 못하니 알 수가 없었다.


일전에는 갑자기 폐렴 끼가 있어서 이곳 병원에 입원했다. 원래 요양병원에 계셨다. 폐렴 끼 같은 중한 병이 생기면 자매병원에 입원하는 시스템이다. 다시 그 병이 호전되면 요양병원으로 돌아간다. 전번에는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폐렴이 다 나았는데도 요양병원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감기 전염병이 창궐하는 때여서 감기 전염병에 대한 전염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요양병원에서 입소를 거부한 것이다. 그것에 대해 우여곡절 끝에 검사해서 다시 요양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그곳에 계시다가 다시 산소 부족으로 호흡이 곤란해져 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고 계속 잡고 있었다. 말은 옆에 있는 간병인 해 주었다. 가끔 치매 끼가 있으면 차고 있는 지저귀를 뜯는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힘이 장사라는 표현도 했다.

그때 말리는 방법은 뜯으면 이것도 돈이라고 하면 알아듣고서 안 뜯는다는 것이다. 병상에 있으면서도 돈이 든다는 말에는 아직도 반응하는 것을 보면, 어렵게 살던 때가 가슴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면회시간이 다 되어 나오면서도 살이 빠져 야윈 엄마의 모습에 눈길 돌릴 수가 없었다.


꽃무늬 블라우스는 엄마가 외출할 때 자주 입고 다니셨다. 아마도 아들이 사준 첫 번째 옷이고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 옷을 십여 년 뒤에도 입고 다니시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자랑했을 것 같다. 그렇게 자랑하는 것을 보았거나 들은 적은 없다.

그때 젊은 엄마를 왜 할머니로 생각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엄마는 그때 50대 후반이었다.

농사일에 찌들고 관리 안 한 얼굴을 생각하면서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때 엄마도 예쁜 옷이 좋았고 마음은 청춘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고향 집 장롱에는 아직 그 꽃무늬 옷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엄마의 청춘도 그 장롱 속에 같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누워 계신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고 생각하실 것이다. 꽃무늬 옷을 입고 나들이 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그냥 누워만 계신다. 엄마는 누워 계시면서도 마음은 그 꽃무늬 옷을 입고 읍내 장에도 가시고, 고향 오는 아들을 기다리려고 대문 앞에 나가 계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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