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 창을 보니까 흐린 느낌이다.
문을 열고 밖을 나가니까 날씨가 잔뜩 흐려있다. 문을 나서서 몇 발 가다가 되돌아왔다. 우산이 필요했다.
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우산 쓰고 대문을 나서면서 멀리 보니까 높이 보이는 비봉산이 낮게 내려앉은 구름으로 보이지 않았다.
온 천지가 내리는 이슬비로 회색과 푸른색으로 흐릿하게 보였다.
바람이 한 점 없으니까 조용하기까지 했다.
앞 개울가에 설치된 보에는 날씨가 흐리고 이슬비가 내리니까 다슬기가 무리 지어서 기어 올라가고 있다.
마을 앞다리를 건너서 학교 앞까지 걸어가 오른쪽 도로로 올라간다. 아직 일어나 밭에 가는 사람은 없다. 이슬비 오는 날이라 아침잠을 더 자는 듯하다. 간간이 늦은 닭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한 달 전에 만든 텃밭에 지나면서 심긴 작물을 본다. 비료도 퇴비도 없이 심어 놓은 땅콩과 고구마는 겨우 살기는 했어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비료기가 없어서 노랗게 보이는 것을 뒤늦게 옆을 뚫어서 비료를 주고 물을 주었다. 오늘 보니까 조금 비료기가 올랐는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여전히 잎이 노랗게 보인다. 늦게 양쪽 가장자리에 심은 옥수수도 심은 지 몇 주가 지났건만 아직도 키 작은 옥수수로 남아 있다. 올해 가을에 옥수수를 먹을지 염려된다.
텃밭을 지나면 벼가 자라는 칠성바위 논이 있다.
처음 모내기하고는 벼들이 모두 힘이 없어서 똑바로 서지 않고 옆으로 누워 있어서 부실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모두 다 일어나 있다. 옆 논에 있는 벼보다 며칠 일찍 심었지만 주인 눈에는 훨씬 부족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더 검푸르게 좋아 보인다. 작년에 콩밭을 했던 곳이라 비료를 너무 많이 주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아직은 걱정할 단계는 아니고 벼가 알이 벨 때 알 수 있다고 한다.
한참을 걸어가는 도로 양쪽에는 논에 벼 대신 심은 고추밭이 보인다. 벌써 고추가 제법 달렸고, 고추나무마다 하얀 꽃이 많이도 피었다. 고추나무가 옆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줄을 두 번째 치고 있다. 이 줄을 네 번이나 친다고 하니까 아직도 고추나무는 이보다 배나 자란 다는 것이다.
이른 봄에 파종한 배추가 벌써 알이 차서 출하되고 있다. 그렇게 어리던 배추 모가 이제는 하나만 들어도 무거울 정도로 큰 것이다. 새벽 일찍 배추 작업을 하다가 비가 오니까 중단되어 있었다. 배추밭 가운데 트럭이 배추를 반쯤 실은 채로 서 있고, 작업한 분들은 보이지 않는데 얼마 전에 먹은듯한 컵라면 빈 컵이 밭가에 흩어져 있다.
멀리 한 절의 두 번째 논이 보인다. 처음 모를 심을 때는 이 논이 가장 부실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가장 좋아 보인다. 논이 크고 반듯해서 더 좋아 보이기도 하다. 여기는 오늘도 어김없이 두루미들이 논 가운데 있다. 주변에 여러 논이 있지만 우리 논에만 며칠째 두루미가 찾아온다. 두루미 먹이가 되는 개구리나 올챙이가 많은 것 같다. 다른 논과 비교해 보면 우리 논에 올챙이가 많았다. 우리 논이 올챙이가 잘 살 수 있는 환경인 것 같은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올챙이와 벼는 별로 상관이 없으니까 두루미가 와서 처리해도 관심 가질 필요는 없다. 두루미는 지금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이슬비는 계속 내리고, 멀리 보이는 산에는 흐릿하게 보이지만 푸른 기운이 완연하다. 그 푸른 산허리를 구름이 돌아서 계곡으로 들어가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계곡으로 들어간 구름은 숨어 버린 것 같이 보이지 않으니까 또 다른 구름이 돌아서 들어간다. 뿌연 안갯속에 내리는 이슬비, 구름 속에 나온 산봉우리와 산허리를 감아도는 한 줄기의 구름이 한 폭의 동양화이다.
오늘은 늘 보이던 노인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늦잠을 주무시는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맘때면 늘 소리 나던 농기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너무 조용한 아침이다. 그래도 멀리 보이는 마을에 한두 집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양도 한가롭다.
그렇게 바쁘게 하던 고추심기, 모내기가 끝나고 콩심기도 거의 마무리 단계이다. 바쁜 철이지만 한가한 시기인 것이다. 이런 날 아침에 이슬비가 내리니까 부지런한 농부들도 저절로 늦잠이 오는 것이다.
밤시골 마지막 논이 보인다. 벼가 푸르게 잘 자라고 있다. 처음 심었을 때는 가장 반듯하게 서는 듯하던 벼가 이제는 가장 못하게 보인다. 주변에는 벼 심은 논은 별로 없고 고추나 콩밭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논 보다 밭이 더 선호하니까 논을 밭으로 만들어서 농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산책을 하면서 논에 돌아보면서 논물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아침에 논물을 보러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아침 운동을 한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이제 돌아가야 할 곳까지 왔다. 멀리서 우산 쓴 아주머니가 콩 밭 가운데 서 있다. 오늘 같이 흐릿하고 이슬비가 내리는 날에는 언뜻 보면 우산 쓴 허수아비는 우산 쓴 아주머니로 보인다. 심어 놓은 콩이 올라오는 중이다. 허수아비가 비둘기를 지키는 것이다. 이번 주가 콩밭에서 비둘기와 다툼은 절정이다.
이슬비이지만 제법 내린 것 같다. 우산 쓴 아주머니 허수아비 모자가 비에 젖어서 밑으로 쳐져가고 있다.
고요한 아침에 바람도 불지 않아 멀리 산 밑 집에서 올라가는 연기는 곧게 올라가고 새소리는 오늘따라 요란하다. 새소리에 귀 기울이면 멀리서 들리는 소리, 가까이서 들이는 소리,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어우러져서 소리는 시끄럽지만 듣기 좋은 소리들이다.
오늘은 이슬비 내리는 아침에 새가 즐거이 노래하고 부지런한 농부들이 느긋하게 아침잠을 즐기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