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앞산으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내려오고 있다. 조금 더 지나면 앞이 보이지 않은 시골길이 될 것이다.
리어카를 끌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노인이 있다. 여든을 넘긴 지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걸음걸이에는 힘이 있다. 허리도 그렇게 굽지 않았고 늙어가는 것이 멈춘 것 같이 오래 전과 같은 모습이다.
같은 또래의 노인들은 거의 이 세상에 떠났다. 젊어서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사람들은 노인을 어려워하지는 않았다. 말이 어둔하고 야간 모자라는 듯한 느낌을 주는 스타일이라서 누구나 얕잡아 보는 듯했다. 노인은 젊어서 별로 존재감이 없이 살면서 그래도 개의치 않고 나름 열심히 살았다.
리어카는 오랫동안 같이 들에 다니는 도구이다. 어디를 가든지 리어카를 끌고 다녔다. 리어카가 들어갈 수 있는 토지는 입구에 세워 두지만, 올라갈 수 없는 곳은 가장 가까운 곳에 세워 두고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다.
한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땡볕이 땅을 뜨겁게 달구어도 리어카를 앞세워서 논으로 갔다. 그 시간에는 보통 사람들은 나무 그늘이나 집에서 있을 시간이지만 그래도 들에 나가야 마음이 놓이고 살아가는 느낌이다. 몹시 추워서 찬 바람이 불어서 밖에는 다니는 사람이 없어도 옷을 몇 겹으로 껴 입고 들로 나가서 작년에 가을에 덜 정리한 고춧대라도 만진다. 대설이 오는 날도 눈을 치워가면서 집안일이나 텃밭을 정리했다. 남들이 어설퍼서 하기 싫어하는 냄새나는 일이나 만지기 싫은 일도 노인은 싫은 기색이 없이 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춥거나 덥거나 어설픈 일을 싫어하지 않고 일만 하는 특이한 사람이라고 젊어서부터 소문이 났다.
요즈음은 무엇을 운반하더라도 자동차가 있어서 먼 거리나 많은 양도 한 번이면 끝날 정도로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시간도 별로 안 들고 힘도 들지 않는다. 단지 그 비용은 들 것이다.
노인의 집에서 가장 먼 논이 3킬로 정도 떨어진 아랫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그 논도 상당히 큰 것이 두 곳에 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는 모내기하기 전날 모를 기른 하우스에서 논까지 모판을 운반해 놓아야 한다. 보통 시골의 농사용 트럭으로 두 번만 운반하면 되는 량이다.
노인은 차도 경운기도 없다. 오직 운송수단이 리어카이다. 이웃에 부탁해서 차를 이용하면 되지만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까 리어카로 본인 직접 운반하는 것이다. 비용도 아끼지만 그 시간에 모판을 옮길 수 있으니까 본인이 하는 것이다. 본인의 부지런한 몸을 이용한 것이다. 저녁에 리어카에 모를 가득 싣고 혼자서 3번을 옮기고, 다시 새벽에 앞이 보일 때에 나와서 4번을 옮겼다. 주위에서는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수십 년을 그렇게 하시니까 당연한 일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노인은 장날에는 시장에 자주 가신다. 본인이 지금까지 약초 재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약초 가격 변동도 알아보고 어느 약초가 전망이 있는지도 늘 가서 물어보고 자주 봐야 알 수 있다. 약초를 직접 재배도 하지만 약초 장사를 젊어서부터 했다. 사람들은 어리숙하게 보여서 계산도 잘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계산이 빠르기로 유명했다. 노인은 저울로 근수를 달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을 한번 보면 얼마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것이 틀린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농사할 때는 흙이나 무엇이 묻어도 개념치 않고 살만 보이지 않으면 옷을 입고 다니지만, 장날에는 언제나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간다. 사람들이 노인이 새 옷을 입고 있으면 장날이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
장날도 예전에는 산을 넘어서 걸어서 갔지만 큰길이 생기고 버스가 다닐 때에도 얼마간은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왔다. 지금은 버스를 타고 다닌다. 그래도 시장 일을 다 보고 버스 시간이 맞지 않으면 지금도 이십 리 길을 걸어서 집으로 온다.
원동기에 휘발유가 필요한데 그 휘발유는 버스에 실어 주지 않기 때문에 리어카로 이십 리 길을 끓고 가서 다시 휘발유를 리어카에 실어서 집으로 왔을 때는 융통성이 없는 막힌 늙은이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늘 그렇게 살아온 뒤라 별로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다.
원래 술은 잘 먹고, 먹을 수가 있지만 할 일이 있어서 안 먹는 경우가 많고, 돈이 아까워서 안 먹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까지 같이 살아온 동네나 아랫동네 위 동네의 또래들은 거의 다 죽거나 죽지 않아도 요양원에 있지만 노인은 아직도 걸음걸이가 젊은이 같다. 그 또래들이 늘 하던 소리가 노인의 술을 얻어먹으면 그해는 감기를 안 한다고들 했다. 그만치 돈은 10원 한 장 헛돈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쓰지를 않았다. 노인에게는 돈이 들어가는 것은 보아도 나오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다 보니까 좋은 논과 밭을 만평 정도 갖고 있다. 여든이 중반인 노인이 오늘도 리어카를 앞 세우고 들판을 누빈다. 자기 토지는 자기가 모두 하지만 일부는 다른 사람의 토지도 임대해서 붙이고 있다. 마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농사하는 것이다.
어제 오후에는 마늘을 수확했다. 오백 평이 넘는 논에 마늘을 캐내고 여기에 벼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이모작을 하는 것이다. 오후에 혼자 시작한 마늘밭이 다음날 새벽에는 깨끗하게 정리했다. 일하는 노인 기계인 것이다.
예전에 주식이 좋다고 해서 여러 생각을 하다가 노인도 주식을 시작했다.
주식을 산 돈은 열심히 농사해서 번 돈으로 주식을 쌌다. 주식을 사서 지금까지 갖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주위에서 10억은 넘는다고 한다. 무슨 주식을 얼마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까 정확한 금액은 아무도 모른다. 아마도 자식도 정확한 것은 모를 것이다. 노인은 주식을 사면 팔지를 않으니까 올랐다는 것이다. 노인은 주식도 돈과 같이 손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수십 년을 갖고 있는 주식이 지금은 처음보다 엄청나게 불어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늘 돈만 벌었지 쓸 줄 몰랐지만 그래도 재산을 불리는 데는 능력이 있다. 토지를 산 것도 올랐고, 주식도 올랐고, 서울에 집도 수십 년 전에 사 두었는데 올랐을 것이다.
자식들도 여러 명이 있는데 그중에 큰 아들은 우리나라에 셋 손가락에 뽑히는 대학을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해서 그 대기업의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가 퇴직했다. 원래 노인을 닮아서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한때 잘 나갔지만 그만 주식을 하다가 서울의 노인 집도 없애고 지금은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노인은 주식으로 돈을 벌고 아들은 잃은 모양새이다.
그러니 노인은 아직도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있다. 믿을 것은 본인 뿐인 것이다. 주위에서 나이도 있고 하니까 재산을 정리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요지부동이다. 내일 어떻게 되어도 재산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보다는 지금 일할 생각을 먼저한다.
노인은 지금까지 일만 하고 살았다. 누구에게도 반말하거나 얕보는 인상도 쓰지 않으면서 늘 같은 마음으로 살고 있다. 동네에서 어릴 때 같이 놀던 몇 년 후배가 엄청나게 유명한 목사가 되었다. 동네가 전부 교회에 나간다. 일요일이면 동네 사람 모두가 점심을 같이 먹는다. 그래도 노인은 교회 근처도 가지 않는다.
아마도 교회 가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일하게 전도되지 않는 노인이다.
오늘도 부지런히 일만 한다. 너무 일을 해서 늙은 시간이 없었는지 아니면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이니까 몸이 구체 없어서 활발히 기능을 유지하는지 알 수 없다
시골에서 그 정도 열심히 사용한 몸이면 보통 사람은 달아서 탈이 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자세가 바르다
평소에도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노인은 10원이 아까워서 벌벌 떤다고 이야기하지만, 다른 사람의 돈이 아니고 오직 농사해서 번 돈이다.
돈을 버는 것이 재미있어서 일을 하는 것이고, 또 돈이 되는 것이 보이니까 일하는 것이지만, 아직도 어제까지 일할지는 모른다.
오늘도 리어카를 앞세워서 집을 나서서 논으로 간다. 가면 할 일이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