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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Feb 04. 2023

남파랑 길 4일차

용원의 송정공원에서 출발하는데 날씨가 영하의 기온으로 예보되었지만, 음력설이 지난 다음이라서 추위도 이제는 큰 힘을 못 쓰는 듯하다. 용원의 아침도 사람들이 분주히 하루를 준비하는 것 같다. 아침에는 어제 숙소에 있는 커피를 저녁에 마셔서 잠을 설쳤는데, 그래도 한참 걸어가니까 걸을 만했다. 용원 바다에 맞닿은 어물전들이 문을 열어 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이 시장은 예전에 가덕도에서 고기를 잡아서 배로 이곳에 도착해서 활기찬 시장이 형성되었던 곳인데, 아직도 많은 상점들이 고기를 팔고 있다.

이 조용한 어물전 앞에 확성기 소리가 크게 들린다. 한 중년의 여자가 어떤 조합장인지 자격이 있는지 성토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일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양새인데, 상인들도 공감하는지 별 반응 없이 듣고만 있다. 조용한 아침에 확성기에 나오는 소리는 너무 크다.


용원 어물전을 지나서 다리를 건너 부영아파트 옆길을 걸어갔다. 화살표 표시가 잘 되어서 길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부영 아파트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리를 건너가도록 표시되어 있었다. 마침 앞에 두 사람이 가고 있어서 그냥 따라서 갔다. 생각 없이 한참을 가다가 보니까 화살표나 리본이 보이지 않는다. 표시를 놓친 것이다.

표시를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방심하고 걷거나, 표시를 보지 않고 앞사람을 따라가면 종종 생기는 현상이다. 그래도 대충 방향을 알 수 있어서 길을 다시 찾아갔는데, 원래 길로 갔다면 웅천 안골 왜성 밑을 지나면서 토성을 직접 보지 못하는데, 길을 잃어버려서 왜성에 올라가 볼 수 있는 기회는 얻었다.


이번에도 길은 잃어서 다시 찾았지만, 그래도 어제까지 걷던 부산보다는 파랑길 찾기가 훨씬 좋은 느낌이다. 부산에는 원래부터 있던 부산 갈맷길 표시가 너무 많아서 남파랑 길 찾는데 혼란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방향이 일치하는 곳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 문제가 생기고 힘들게 하는 것이다. 원래부터 있던 갈맷길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남파랑 길을 걷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피곤한 것이다. 길은 주위를 돌아보면서 여유 있게 걸어야 하는데, 갈맷길 표시가 헤갈리게 할 때는 길 찾는데 신경을 안 쓰면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신경을 써도 헤갈리게 하는 곳도 있었다. 그런 갈맷길 표시가 사라지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아마도 원래 갈맷길이었으니까 조정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웅천 안골 왜성을 지나서 해안을 따라서 걷다가 보면 나오는 곳이 “황포돛대” 노래비이다. 황포돛대 노래의 작사자인 "이일윤"씨가 이곳 출신이다. 해안가에 바다를 등지고 노래비가 서 있고, 발로 버튼을 밝으면 “이마자”의 “황포돛대”의 노래가 나온다.


다음에 나오는 것이 흰돌메공원이다. 흰 돌이 많은 백석산이라는 뜻의 공원으로 아치 다리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흰돌메 공원의 바닷가는 조용하고 사람이 드물어서 사색하면서 걷기 좋은 곳이다.

황포돛대 노래비를 지날 때쯤에 걷는 것이 즐겁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 걷는 것이 익숙하게 적응할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익숙해진 것 같다. 마음이 넓어지고 조급한 생각보다는 여유 있게 걸고 싶다. 오래 걷지 않았지만, 예전에 걷던 기억이 일시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걸음이 더 안정적으로 걸어가면서 기분도 좋아진다. 아침부터 지금까지는 실제로 걷기 좋은 길이다.


웅천에 들어서면서 멀리 기념관이 보인다. 이 기념관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투옥되어서 독립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이곳 출신 항일독립운동가인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이다.


“주기철” 기념관 건너편에는 창원 웅천읍성이 나온다. 지금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문 앞에 이중으로 성벽을 쌓아 놓은 옹성이 잘 복원되어 있다.

옹성 안으로 들어가서 진해 해양공원 방향으로 계속 걸어간다.


진해 해양공원이 나오기 전에 또 노래비가 서 있다. 이번에는 “삼포로 가는 길” 노래비이다.

이 노래비 아래에 삼포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노래도 작사자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어릴 때 동경하던 향수의 대상이 이 마을에 충족되어서 지었다고 한다. 삼포 마을은 앞은 바다이고 뒤는 산으로 된 작은 어촌마을이다.


멀리 진해 해양공원이 보이는데 아직 한창 정비 중인 것 같다. 바다의 넓은 풍경이나 아늑한 느낌보다는 복잡하고 답답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진해 해양공원을 넘어서니까 조선소 같은 큰 항구가 보인다. 조선소 이름은 별로 알려지지 않는 생소한 이름인데, 지금 걷는 길이 조선소를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이 길 이름도 조선소 길이다. 조선소의 높은 크레인은 보이지만, 다른 건물을 보이지 않게 높은 담장과 대나무로 울타리를 해 놓아서 답답한 담장 길을 한 시간이나 지나가는 차량 매연과 같이 걷는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남파랑 길이 “남쪽 쪽빛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바다가 보인 곳이 그렇게 많지 않고, 해안에 있는 공장을 막아 놓은 높은 담장이나 크고 작은 공장과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생활공간을 보면서 걸어온 곳이 더 많았다. 공장 돌아가는 소리와 겁나게 달리는 대형차량과 같이 걸어오면서 그 매연과 소음을 함께 한곳이 많았다. 그래도 아직은 남파랑 길 시작에 불과하니까 쪽빛 바다를 기대하면서 희망을 갖고 걸어간다.


길고 긴 K 조선 길이 끝나는 지점은 오르막이다.

그 오르막을 넘어서 내려가면 첫 번째 나오는 항구가 행암항이다. 오랜만에 바다를 보는 기분이다.

한가로운 행암항을 지나면 멀리 보이는 항구가 진해항인 것 같다. 진해항을 바라보면서 진해 시내로 들어간다.


진해는 역시 오래된 벚나무가 많은 곳으로 이 나무에서 벚꽃이 피면 장관이고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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