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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Feb 14. 2023

남파랑 길 14일차


아침에 창문에서 날이 밝아올 시간이 되었는데, 아직도 훤하질 않다. 비가 오고 있을 가능성이 많아 창문을 열어 보니 비가 내린다.

멀리 보이는 저구 앞바다는 흐린 날씨지만 파도는 잔잔하다.

출발부터 우의를 입고 배낭은 비닐로 감싸고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정류소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 한 분이 빨간 우산을 쓰고 있다. 흐린 날 빨간 색갈이 더 강렬한 느낌을 준다.


저구항을 지나자 산속으로 난 도로를 따라서 간다. 이 길은 남부 해안로로 저구항에서 한참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바다의 해안선을 따라서 난 길이다.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길을 비 오는 날 혼자서 걷는 기분은 차분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이 마음이 평온하다. 너무 빠르지도 않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으면서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마음도 생긴다. 이제부터는 걷는 것을 즐기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싶다. 매일 걸으면서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는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그런 시간은 별로 많지 않고 오늘 묵을 숙소나 식사 생각이나 옛 생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구 마을에서 시작한 남부 해안로는 바다를 보고 걷는 남파랑 길의 의미에 부합되는 멋진 도로이다. 비가 내려 흐려서 쪽빛 바다와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해서 아쉽지만, 날씨가 화창했으면 멋진 길이었을 것이다. 비는 이슬비같이 조용히 내리는데, 그래도 길은 젖어 있다.

중간에 풍광이 좋은 곳 길옆에 정자가 있다.

이쯤에 쉴 시간이 될 만한 곳에 정자를 만들어 놓았다. 정자에서 비 내리는 바다와 섬들을 구경하면서 발을 주물러 준다.

어제는 오랜 시간을 등산길을 힘들게 걸어서 아침에 다리가 아파서 걷기가 힘들 것 같았는데, 아침에 다시 걸으니까 다리가 풀리는 것 같다. 휴식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다시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테크 전망대를 만났다. 소나무 한 그루 옆에 놓인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에 마련되어 있다.

이 코스는 이렇게 해안로를 따라서 걷다가 쌍근 마을이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탑포마을이 나오면 종점이다.


걷기 쉬운 길을 걷다가 보니, 벌써 쌍근 마을이 나왔다.

그때까지 비는 내리는데 우의를 벗으면 안 되고 입고 걷기는 덥다는 생각이 든다. 쌍근 마을은 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집에서 부침개를 해서, 내리는 비와 바다를 바라보면서 막걸리를 한잔하면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해를 시작하는 봄이 다가오니까 올해는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한잔하다가 따뜻한 방에서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날이다. 아마도 여러 날 걸어왔으니까 쉬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그런 마음을 드는 것이다.


쌍근 마을 지나니까 바로 앞 바다에 섬에 보이고, 탑포마을과 항구가 보인다.

탑파 마을도 조용하고 사람이 다니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도로에는 간간이 차들은 다닌다. 탑파 마을을 지나면서 섬은 더 가까이 보이고 소나무가 많은 곳에 새들이 많이 앉아 있다.

탑파 마을에서부터 누런 개 두 마리가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나를 따라서 같이 걷고 있다.

마치 같은 일행인 것처럼 보폭도 맞추어서 걷는다. 나도 신기해서 일행이라 생각하고 걸어갔다. 탑포 마을 삼거리가 다가오자 개들은 빠르게 뛰어간다. 아마도 자기들 집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걷기 좋은 길은 끝나자 남파랑 길도 한 코스가 끝났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25코스가 시작되었다는 안내판을 보고서 거리와 지형을 살펴본다. 이 길도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임산도로와 산길을 반복하면서 걷는 길이다. 이 코스를 시작하기 전에 비는 야간씩 내리지만, 우의가 불편해서 벗어서 배낭에 넣고 걸었다. 우의를 벗으니까 산 길은 야간 추운 느낌이 든다. 그래도 쉬지 않고 걸으니까 땀이 나는 것 같은데, 잠시 쉬려고 멈추면 몸에서 땀이 식어서 한기를 느낀다. 오래 쉬지 못하고 다시 걸어서 나온 마을이 부춘마을이다.

부춘마을을 지나면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다.


오망천 삼거리까지 도로 옆을 걷다가 오수 마을 안내 팻말이 있는 곳에서 논둑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오수 마을까지 도로를 따라가면 금방 갈 거리지만, 차가 다니는 길을 피해서 논둑 길로 가니까 1km 이상 돌아서 간다.

남파랑 길을 만들면서 차가 다니는 도로를 피해서 만들어야 하니까 이런 곳이 상당히 많다. 오수 마을을 지나서 종점인 거제 파출소로 가는 길도 바다 옆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았다. 남파랑 길의 의미에 맞게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바다의 갈대숲길을 지나게 된다.

거제 마을은 면 소재지인데 특이하게 숙박 시설이 없다. 또 잘 곳을 찾아서 버스정류장을 찾는 것이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이다. 버스는 시간을 잘 맞추면 금방 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시간 이상을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한다. 요즈음은 정류장에 앉는 의자에 따뜻하게 해놓은 곳이 많아서 이렇게 날씨 흐리고 비 오는 날은 앉아서 기다리면 따뜻해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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