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익 Feb 20. 2023

남파랑 길 20일차

시골로 가는 버스는 많지 않아서 일찍 숙소를 나와서 삼천포 터미널로 갈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에게 남해 창선 가는 버스를 타러 가는데 시간을 몰라서 일찍 나섰다고 말했다. 역시 이곳에 사는 택시 기사는 버스 시간을 대략은 알고 있었고, 터미널로 가지 말고 부두 정류장에 가면 버스가 있다고 했다. 택시는 방향을 부두 정류장으로 돌려서 버스 타는 장소에 내려 주었다

정류장에는 창선 가는 손님들이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버스 시간을 물어보니까 벌써 새벽 버스는 떠났고, 다음 버스는 한 시간 있어야 온다고 한다.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이때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의 여유를 있어야 한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 할머니들이 많이 나와서 장사를 하고 있다. 옆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오늘이 장날이냐고 물었다. 역시 오늘이 삼천포 오일장이 서는 날이고, 그래서 이렇게 일찍 할머니들이 장에 온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할머니들이 장사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이고 약간 쌀쌀한 날씨지만 활기가 있어 보인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두꺼운 옷에 모자를 쓰고 추위에 신경을 쓴 복장이다.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자연히 정류소 의자에 앉게 되었는데, 그 의자가 따뜻한 의자였다. 각 지역마다 정류장 의자가 겨울에는 따뜻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런 의자를 약간 쌀쌀한 날 아침에 앉아 보니까 정말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좋았다.

사람들이 오가는 것도 보고 건너편에 할머니들이 장사하는 것도 구경하니까 복잡한 부두 정류장에 기다리는 시간은 빨리 가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삼천포 대교를 넘어서 창선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어도 버스 타고 가는 시간은 잠깐이었다. 어제 마친 창선 길에서 다시 걷기 시작을 했다.

시골의 산길을 걷다가 창선면 소재지인 수산리에 나왔다. 수산리의 농협을 지나갈 때에 하나로 마트가 보인다. 시골에 하나로 마트가 있으면 그곳이 중심이 되는 곳이 많았다.

수산리를 지나면서 가는 길은 시골 농촌 풍경이다. 시골길에는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보다 차들이 훨씬 더 많이 다닌다.


오늘 가는 창선 길은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이다. 그래서 고사리가 나는 몇 달은 고사리 주인의 신경이 예민해진다는 길이다. 걸어가는 길에는 산 전체가 고사리 산으로 보이는 곳도 있었고 밭들도 고사리를 재배하는 곳이 많았다.

오늘 걷는 식포, 언포, 가인 길은 “고사리밭 길”이라고 부른다.

고사리 산길을 걸어가면 길 양쪽이 모두 고사리밭이 만들어져 있고 경사가 급한 곳도 많다. 창성 고사리가 전국에서 유명하고 생산량도 많다고 한다. 그러니 고사리를 꺾는 철이 되면 트레킹 하는 사람들은 호기심에 하나씩 꺾어도 주인 입장에서는 상당히 많이 피해를 입기 때문에 예민하다는 것이다.

고사리 밭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이 많아서 그곳을 지나다 보면 삼천포가 건너다 보인다. 오늘도 흐려서 그렇게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산길을 가다가 멀리 작은 개 한 마리가 보인다. 내가 다가가니까 겁이 나서 오지는 못하고 그 자리에서 나를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다. 짖지 않는 작은 개에 신경을 쓸 일도 없고 그냥 지나치는데, 나를 따라오는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서 주인이 걸어오고 있다. 그때 그 개는 주인에게 뛰어가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짖기 시작하는 것이다. 주인이 오니까 돌변해서 짖는 것이다. 주인이 말리니까 조용해지더니, 그래도 경계를 하는지 주인 옆에 붙어 있다. 그러다가 주인과 내가 이야기를 하고 가니까, 신기하게도 나에 대한 경계를 풀고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간다. 작은 개이지만 눈치가 있는 것이다.


길에서 만난 사람은 창선 사람이었다. 창선 사람은 예전에 창선이 단합이 잘되고, 생활력이 강한 이유를 이야기했다. 창선은 논이 없어서 먹고살기 힘이 들어 바닷가로 나가서 먹을 것을 찾기도 하고 산을 일구어서 살았기에 힘든 삶을 선조들은 살았다고 한다. 이곳이 섬이라서 파도가 높거나 날씨가 좋지 않으면 육지로 나가는 일도 힘들었다고 한다. 창선 섬이 전국에서 12번째로 큰 섬이지만, 환경이 좋지 않아서 살기 위해서 사람이 독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긴 말이 “창선 사람은 고춧가루 서 말을 먹고, 바 다 밑을 십 리나 걸어간다"라고 할 정도로 독한 사람으로 이름이 있었다. 그래도 일찍이 도시로 나간 사람들은 모두가 잘 사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교가 놓여서 환경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가 보니까 적량 마을에 도착을 했다.

여기서부터는 또 다른 남파랑 길이 시작하는 코스이다. 마침 점심때가 넘어서 주변에 식당을 찾아봤으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가게는 있을 것 같은 큰 마을이라서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물어서 찾아갔다. 그런데 가게는 닫혀있었고 주인을 찾았지만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주인이 아마도 밭에 간 것 같다고 했다. 다시 다른 마을이 나올 때까지 걸어갔는데, 그다음에 나온 마을이 대곡 마을이다. 이 마을은 가게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넘어가니까 이번에는 제법 큰 항구가 보이는 장포 마을이 나왔다.

이곳에는 가게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가게는 찾았는데 소주 몇 병과 막걸리와 과자가 전부였다. 그래도 점심으로 할 만한 것이 구석에 있었다. 두유가 한 박스가 보인다.

두유를 두 개 사서 다시 산길을 올랐다. 이제 적당한 장소를 찾으면 늦은 점심을 먹을 생각이다.


산으로 오른 길도 고사리 밭길이었다. 산으로 오르니까 바람이 더 세게 부는 것이 앉아서 점심을 먹을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람에는 아직 추운 기운이 남아 있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몸에 한기를 느꼈다. 계속 찾다가 보니까 적당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걷는 길 밑에 경사가 급한 고사리밭이 보인다. 급한 경사가 있는 밭으로 내려가 바람을 막아 주는 곳에 앉았다.

높은 산이라 앞에는 바다가 보이고, 뒤는 경사진 밭이 바람을 막아 주고, 앉은 자리는 고사리가 말라서 숲을 만든 것이 푹신한 방석 같다. 경사진 밭에 기대어 다리를 뻗고 앉아서 늦은 점심 요기를 했다. 경사진 고사리 밭은 길을 걷는 사람의 최고의 휴식장소이고, 점심 먹는 장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바람 소리는 들리지만, 바람을 맞지 않고 아늑한 곳에서 늦은 점심을 하면서 편안히 쉬었다.


산길은 계속되고 길옆에 있는 보현사를 지나서 초도에 들어가니까 오늘 목적지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다시 도로를 따라서 창성 대교를 향해서 갈 때에 보이는 것은 죽방렴이다.

창성 대교 주변에 죽방렴이 많이 설치된 것은 이곳이 바다의 유속이 빠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부터 죽방렴은 이곳에서 시작한 죽방의 본 고장이라는 곳이다. 창성 대교에서 죽방렴을 자세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바다의 물 흐림이 빠르다는 것이 육안으로 확인되는 곳이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도 걸었는데 마음도 편안하게 걸은 것은 오늘 유숙할 장소가 걷기를 마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걷고 다시 숙소를 다른 곳으로 찾아갈 때가 힘이 든다. 온종일 걸어서 다리가 지쳤는데, 다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앞으로는 그런 염려까지도 내려놓고 걷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남파랑 길 19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