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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12. 2023

남파랑 길 27일차


오늘은 안개와 미세먼지가 있어서 걸어온 길을 돌아다보니까, 멀어지는 배알도 섬과 별 헤는 다리와 별맞이 다리가 어렴풋이 보인다.

배알도 섬을 뒤로하면서 걷는 길은 바닷물이 빠진 갯벌 위 도로를 따라서 혼자 걸어간다. 이른 아침이라서 차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길이다.


조용한 길을 걸으면서 아직 아픈 곳 없이 이렇게 걸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난다. 나이는 조금 있지만 이렇게 오래 걸을 수 있는 체력이 가능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아침이다.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 중에는 벌써 멀리 떠난 사람도 있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드니까 지금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더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쁜 마음으로 인생 마무리를 준비를 했으면 한다.

이런 때는 걷는 것이 즐거움을 느끼고 계속 가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은 빈손으로 가지만, 산티아고 순례자처럼 나무 지팡이를 짚고서 조용히 걷다가 마감하고 싶다는 마음까지도 생각해 본다. 걷다가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면 짚고 가는 지팡이를 마감하는 그곳에 세우면 비목이 되는 것이다. 그런 비장한 생각도 하면서 인생의 의미나 나만의 만족을 얻으려고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침에 걸을 때는 아직 힘이 많아서, 걷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지만, 오후가 되면 힘들다는 생각이 더 많아진다.


계속 해안선을 따라서 조용한 길을 가는데, 멀리 연기와 매연에 싸인 제철소가 희미하게 보인다.

제철소 주변 길은 길고 직선 길이 많다.


제철소를 지나서 우레탄을 깔고 양쪽에 벚나무를 심은 잘 만들어진 길이 나온다. 아직은 피지 않았지만, 벚꽃이 필 때는 나들이객들이 많을 것 같다.

지금 걷는 코스는 특이한 것도 없고 해안을 따라서 지루하게 걷는 평범한 길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걷다가 보니까, 멀리 이 코스의 종점이 있는 무지개다리가 보인다.

무지개다리를 건너자마자,


삼화섬으로 올라가는 오르막 테크 길이다. 올라가면 광양의 주변 풍광이 잘 보이는 곳이지만,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선명하지 않았다. 삼화섬을 내려와 다시 걷는 길은 도로변이지만, 나무로 잘 조성된 길이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작은 근린공원이 나오고 여기서 남파랑 길 49코스는 마치고 다시 50코스가 시작된다.


다시 광양의 도심을 벗어나서 임산도로로 지루한 길을 걸어간다. 도심을 걷다가 숲속으로 들어오니까 처음에는 기분이 전환되었지만, 너무 긴 단순한 산길을 걸어가니까 발바닥이 아파진다. 이번에도 발가락 양말을 준비해서 신고 걸었지만, 물집이 잡힌 기분이 든다. 물집이 잡히면 발에 특유의 신호가 온다.

그래서 쉬면서 양말을 벗고 확인해 보니까 생각한 대로이다. 물집에 간단한 밴드로 동여매고 다시 걷는데, 확실히 조치를 하고 걸으니까 덜 아프다. 걸으면서 이상이 생기면 그 즉시 할 수 있는 조치를 해야지, 그냥 참고 걸으면 더 오래 아프고 후유증이 있다.


지루한 임산도로를 끝내고 내려온 곳에는 흰 목련 꽃이 피어 있다. 모련 꽃은 아직 만개하기 직전으로 떨어진 꽃잎은 없었다.

진선 도로가에는 아주머니가 쑥을 캐고 있고.

노란 민들레도 피어 있다.

이곳은 완전히 봄날이다. 겨우내 언 땅에서 견디다가 올라온 쪽파는 너무 싱싱해 보인다.


시간은 흘러서 점심때가 지났지만, 식당도 보이지 않고 가게마저도 없는 길이다. 석정마을은 제법 큰 마을인 것 같은데도 점심을 먹을 곳이 없었다.

점심 생각을 하면서 부지런히 광양읍으로 걸어갔다. 멀리 광양읍이 보이지만 배가 고프니까 음식점이나 가게가 있는지 살피면서 걷는다.

광양읍에 도착해서 일단 점심을 해결하고 주변을 돌아보니까 오늘이 광양 오일장 날인 것 같다.


광양 오일장에는 아직 할머니들이 나물을 갔고 나와서 팔고 있다.

아직은 철이 빠른지 이때쯤에 많이 나오는 야생 부추는 보이지 않고, 색깔이 빨간 머위는 보인다. 이 머위도 이른 봄에 처음 올라온 머위인 것 같다. 장터 입구에는 철에 맞게 묘목을 파는 묘목 상이 자리하고 있고,

이른 봄에 예쁜 꽃들과 다육식물도 많이 나와 있다.

아직은 각종 채소 묘종은 나오지 않았지만, 멀지 않아서 나올 것이다.


광양읍 입구에 오래된 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남파랑 길 50코스의 종점이기도 한 공원으로 오래된 버드나무가 많은 유당공원이다.

공원에 봄날에 상춘객들이 쉴 수 있는 정자도 있었다.


물집 잡힌 발의 신발을 벗고, 정자에 앉아서 따듯한 봄날의 오후를 즐겨본다.

정자에서 연못을 바라보면서 봄볕을 구경하다 보니까 연못 안 돌 위에 자라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자라가 봄볕에 몸을 말리는 중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어서 돌 위에 자라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자라상을 만들어 놓은 줄 알았다. 한참을 봐도 움직임이 없어서 의심하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까 돌조각이 아니고 살아 있는 자라였다.

그자라는 움직이지 않고 그렇게 계속 있는 것이다. 내가 자리를 뜰 때까지 자라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서 걷기를 마치고, 시장에 가서 국밥으로 저녁을 먹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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