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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14. 2023

남파랑 길 28일차

광양의 유서 깊은 유당 공원에서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일기예보 상으로는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있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왔지만, 비는 오지 않고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지금은 가물어서 비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이런 때 비가 오면 좋지만 시원하게 오지 않는다. 일단은 비가 오면 우의를 입을 생각으로 걸어갔다.

광양읍을 돌아서 가면 남도 미술관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멀리 광양역이 보이는 곳으로 농로를 걷는 길이다. 처음부터 걷는 길은 광양의 농로 길이고, 멀리 보이는 마을이 도월리다. 도월리 마을도 사람이 다니지 않았지만,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몰고 걸어가고 있다. 아침 운동을 나온 것이다. 할머니들이 운동하는 모습은 어디를 가나 비슷한 것 같다.

도월리 마을을 지나서 농로를 따라 걸어가면 세풍리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도 조용한 농촌 마을로 지나는 동안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 보면 길에는 다니는 사람은 도시에서는 운동하는 사람들이나 시골에서는 운동하는 노인들이 보이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길에는 길을 걷는 사람보다는 차들이 더 많이 다니는 것이 보통인 시대이다. 길에서 사람보다 차들을 훨씬 많이 보인다.


다시 농로를 따라서 걷는 길은 지루하고 먼 길이지만 걷기는 조용한 길이다.

아직은 들판에는 농사가 시작되지 않아 가을걷이를 한 그대로 있는 상태이다. 농로를 지나서 갈대숲을 지나면 현대제철이 있는 바다가 나온다.

이곳은 광양을 지나서 순천으로 왔지만, 순천으로 들어섰다는 표시는 없었다.


현대제철 옆에는 충무사가 자리하고 있다.

충무사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100여 년이 지나고 이곳 신성리에 순천왜성에서 죽은 왜병 귀신이 자주 나타나서 주민을 괴롭혔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왜병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서 충무공 사당을 짓고 충무사를 세운 것이다. 그 뒤로는 왜병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에는 충무사가 소실되었고, 다시 해방이 되어 재건된 충무사이다. 충무사의 오랜 된 나무가 충무사의 역사를 아는 듯하다.

이곳 신성리에는 예전에 왜병 귀신이 나타난 곳이라 알려진 곳이라서 그런지, 교회가 높고 잘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교회에서 보면 충무사가 아래로 보이고, 일본 왜성도 잘 보이는 곳이 위치하고 있다.


충무사를 지나서 신성마을에서 한참을 올라가면 일본 왜성이 나온다.

일본 왜성은 현재는 석축으로 다시 잘 쌓은 곳으로 왜성 안은 상당히 넓은 곳이다. 왜성은 헌대 제철 쪽은 절벽으로 되어 있고, 반대로는 높은 곳에 위치하여 성으로서 적당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왜성 위에서 보면 사방이 모두 보이고 바다가 가까워서 이동하기도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왜란 당시는 순천 왜성에서 왜병들이 많이 죽었다는 곳이지만 지금은 한가로이 한 가족이 쑥을 뜯고 있다.


순천왜성을 지나서 내려오면 현대제철 길을 오랫동안 걸어갔다. 끝없이 걷다가 보면 처음 나오는 마을이 호도 마을이다. 이 마을의 입구에는 모련 꽃이 멋있게 피어 있지만, 남파랑 길 코스가 아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서 걷다가 보면, 마을 담장 안에는 매화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어서 한가로운 마을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마을을 지나면 순천이 끝나고 여수의 율촌면이라는 간판이 친절하게 서 있다.

율촌면 소재지를 지나지만,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은 곳이다. 이 소재지를 지나도 나오는 길은 농로이다. 또다시 농로 길을 접어 들어서 그냥 한없이 걸어간다.


걸어가는 농로 길에서 멀리 밭에서 일하는 젊은 아주머니가 보인다. 이른 봄에 무슨 일을 하는지 이채롭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들에서 일하는 모습은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바람에 펄럭이는 치마가 일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다.

별로 움직임이 없었지만 일을 하고 있어서 그냥 지나치면서 자세히 보니까 마네킹에 옷을 입혀서 사람처럼 보이는 허수아비이다. 그냥 생각 없이 지나치면 누구나가 밭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로 볼 것이다. 아직 허수아비가 서 있을 농작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난해 가을에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겨울의 추운 들판을 이 아주머니 허수아비가 지킨 것 같은 기분이다.


농로 길을 따라서 걷다가 조화리 마을에 도착을 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는 것이 곧 비가 올 것 같은 감이 왔다. 비를 피할 곳을 찾아 걸음이 바빠졌다. 가까운 곳에 교회의 탑이 보였다. 그곳에 가면 비를 피할 것 같아 가보니, 오늘이 주일이라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곳에 들어갈 수는 없어서 가까운 길옆 처마 밑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이 심상치 않아 급히 그 집 헛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는 천둥을 치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붓는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것을 놀래서 바라보았다. 그동안 걸으면서 걷지 못한 정도의 비는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걷기 힘들 때는 한두 번이었다. 이런 비를 농로를 걷다가 만나면 비옷을 급히 입는다 해도 배낭과 속옷까지 다 젖었을 것이다. 비가 이렇게 무섭게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보았다. 자연이 무섭다는 것을 지금 보여 주는 것 같다. 이렇게 운 좋게 비를 피한 곳이 조화리 마을이다.

비가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우의를 입고 출발을 했다. 다시 걷은 길도 농로이다.


여수에 들어온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농사하는 시골이다. 농로를 계속 걸어가다가 바다를 만나면서 멀리 여수 공항의 관제탑이 보인다.

하늘은 여수를 내려 두루듯이 검은 구름으로 덮여 있다.


여수공항을 지나면 도시가 나올 줄 알았지만, 다시 농로 길이다. 길고 긴 농로 길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간간이 있는 건물에는 어김없이 개들이 있어서 내가 지나가면 오랜만에 낯선 사람을 보았는지 짖어서 시끄럽다.

비는 많이는 아니지만, 계속 내리는 길을 하염없이 걸어간다.

농로가 끝나고 만난 곳이 덕양역이다. 덕양역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쇄된 역으로 문들이 굳게 닫혀 있고, 주변에 잡초가 나 있다. 이 역도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역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쓸쓸하다.

덕양역을 지나면서 덕양 시장 곱창거리가 나오면서 사람이 사는 곳처럼 보인다.

이곳을 지나는 길손의 모습이 가게의 창문에 비친다. 걸어가는 모습이 쓸쓸하고 고단한 걸음이다. 우의는 그래도 볼만하지만, 배낭을 덮은 비닐은 바람에 날리어 더 쓸쓸하게 보인다. 곱창거리를 지나서 걸어가다가 농협을 만난다. 이곳이 52코스 종점이었다.

이 종점 옆에 정류장이 있어서 지친 발을 쉬게 하면서 배낭의 비닐도 정리해서 배낭에 넣었다. 한참을 쉬고는 다시 고단하지만, 도시의 길을 걷는다. 오늘은 어제의 따뜻한 봄볕은 어디 가고, 바람과 비가 겨울로 가는 늦가을을 연상케 한다.

고단한 걸음을 걸으면서 따뜻한 숙소를 생각한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내일 아침이면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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