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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r 15. 2023

남파랑 길 30일차

해가 뜨는 선소 대교는 바다에 비친 그림자도 붉게 물들려 진다.

아침의 공기는 야간 차가운 기운은 있지만 상쾌하다. 해안을 따라서 조깅하는 사람이나 걷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선소 대교 옆을 지나서 소호동으로 이어지는 해안에는 동동다리가 바닷가 위에 만들어져 있어서 운동하기 좋은 길이다.

이 거리는 유명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는 곳이다.

소호동 요트경기장을 지나면 바닷가로 가다가 한적한 시골 마을이 나오고 앞에는 바다가 펼쳐진 곳이 보인다. 농사도 하면서 바다의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지나는 길 바닷가 갈대숲에는 길손이 지나가면 오리들이 미리 알고 먼 곳으로 헤엄쳐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오늘은 화양면 지역을 걷는 구간으로 나선 마을이 면 소재지이다. 이 마을도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농사를 주로 하는 곳이다. 마을의 규모가 제법 큰 곳이다.

농로를 따라서 걷다가 다시 나오는 곳이 안포 마을이다. 안포 마을 주변에 바다를 앞에 두고 형성된 곳으로 개벌이 있으면서 앞에는 섬이 막아 주는 곳이 인상적이다. 이런 곳이 고기 잡은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이 사는 어촌 마을이 상상되는 곳이다.

원포 마을이 나오면서 오늘 걷는 56코스가 끝나고 새로운 57코스가 시작된다. 번화한 여수에서 조용한 시골의 어촌 마을을 걸어온 길이다.

원포 마을에서 청소하는 노인들을 만났다.

떠들면서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있어서 "무엇하시냐"라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마을 청소를 한다는 것이고, 노인 일자리를 하는 날이라서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이렇게 열심히 하시냐고 물어 보이니까 대답은 12시까지 열심히 하고 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답은 시원하고 확실했다.

그래서 노인 일자리가 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할머니가 다시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노인 일자리를 ”노는 일자리“라고 하면서, 모여서 출석만 부르고 12시까지 놀거나 화투치다가 집으로 가는 것만 보았다. 때로는 잠깐 일하는 척은 하지만, 그래도 노인 일자리 날은 노는 것이 당연한 시간이다. 그냥 정부에서 노인들에게 쉬면서 돈을 받아 가고, 일자리가 늘어났다는 통계만 잡히면 된다는 생각을 내가 사는 곳의 노인들은 하고 있는데, 여기 노인들은 그래도 일하는 자리로 알고 있으니까 분위기 완연히 다르다.


원포 마을에는 둘레가 4m 넘는 느티나무가 마을회관 옆에 자리하고 있고,

여기서부터 봉화산 임산도로가 길게 난 곳이다. 시끄러운 도로를 벗어나서 산길을 걸으니까 조용하지만 너무 긴 임산도로 길이다. 임산도로에서 멀리 보이는 바다와 산들은 오늘은 전망이 좋아 잘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여수가 아니고 다른 지역인 것 같다.


임산도로를 걸으면서 내가 걷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그냥 집에서 무료하게 시간 보내는 것보다, 이렇게 걷는 것이 났다는 생각 외에는 걷는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때로는 걷는 것은 삶의 의미와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거창한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런 것은 걷는 것에 폼 나는 명분을 붙인 것뿐이다.

걸어도 잡생각을 하고, 힘들면 귀찮아지고, 옛날에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각나면 분노하고,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것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걸으나, 다른 방법으로 놀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시간 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그저 사는 것은 시간 보내기고, 마지막으로 가고 있는 길이라는 허무한 생각으로 정리한다. 그러니 사람 사는 것이 별것이 아닌데, 어떻게 살든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생각하는 수준이 여기까지지만, 계속 걸어보면 어떤 느낌이 올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런 기대마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작은 일에 만족하고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사는 사람들은 존경스럽고 대답한 분들이다


임산도로가 끝나면 다시 산속으로 난 도로 길이다. 이 길은 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는 도로이다. 이곳에 산속에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나는 산동네도 보인다.

산속의 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양쪽에 심어 놓은 벚나무는 곧 꽃이 필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길이 수 십 년이 지나면 명풍 벚꽃길이 될 것 같다.

벚꽃은 앞으로 며칠 더 걸어가면 만개한 것을 볼 것 같다.

봄이 오는 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하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이 사람들은 동우회에서 온 것 같은데, 한 무리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뒤로 떨어진 사람들이 간간이 혼자서 지나간다.

그래도 혼자 뒤처져 가지만, 지나가는 길손에게 오히려 격려의 손을 흔들어 준다. 지나가면서 격려 받고 관심을 받으니까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도로 길이 끝나고 다시 바다 쪽으로 내려가니까 멀리 푸른 바다가 보이는 곳이 나온다. 구미 마을이라고 곳으로 부지런한 농부들이 양파밭에 약을 치는 있다. 이곳에서는 주변에 양파를 많이 심어 놓았다. 제법 양파가 많이 자란 것이 수확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날씨가 좋아서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다.

오늘은 날씨가 변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 같다. 아침은 약간 쌀쌀한 느낌이 있었는데 오전에 바람이 훈훈해지더니 오후에는 날씨가 약간 더워지는 것 같다. 다시 저녁에는 온도가 내려갈 것 같다.


오늘 지나는 길에서 야산에 핀 진달래를 보았다.

올해 진달래꽃을 처음 본 것이다. 개나리꽃도 곧 만개할 것이고 산수유는 벌써 지고 있다.

진달래가 핀 산 밑으로 소서이이라는 마을이 경사진 곳에 자리하면서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있다. 마을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내려다보면서 걷는다.

걷는 그 길에 산속으로 뻗어 있는 아스팔트 길도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을 지나서 더 가면 임산도로로 들어간다.

임산도로를 오르는 길이 힘이 들 무렵에 계곡으로 집들이 보인다. 분위기가 별로이고 혼자 걷기에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곳이다. 그곳에는 개들이 너무 많아서 무섭게 짖기까지 한다. 그런데 사람은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기도원이라고 낡고 글자가 떨어진 간판이 더 무서운 생각이 들게 한다. 자연스럽게 발이 빨라지는 곳이다.

임산도로의 정상 고개를 넘어서 멀리 보이는 곳은 산속에 넓은 들판이 있는 곳이다. 내려갈수록 들판이 넓어 보인다.

57코스 종점인 서촌 마을이 나왔다. 이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서 하룻밤 묵어갈 곳이 없는 곳이다. 여수로 나와서 쉬고 다시 내일 아침에 이곳에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오늘 걸어온 길은 특별한 구간도 아니고 평범한 농촌과 어촌을 걷고, 임산도로를 걸어온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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