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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May 09. 2024

서해랑 길 2일차

걷기를 시작하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을 느낀다. 큰 병을 하고 난 뒤라서 그런 것 같다. 사실은 아직도 통원진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집에서 조용히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걷고 있는 것이 몸에 나쁘게 작용할지 염려도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난 것이 다시 하루를 시작해서 감사하다는 마음이다. 이런 감사의 마음을 앞으로도 계속 갖기를 희망한다. 하루하루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행복한 삶이 될 것이고, 주위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다. 실제 이렇게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숙소에서 나와 송지면 사무소까지 가서 2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면 소재지의 건물과 집 사이 골목길을 가는 중에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담벼락 벽화도 구경하면서 농지가 있는 길로 나왔다.


농로를 따라서 가다가 도로 밑 터널을 건너가니까 예쁜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은 미학리로 담장에 벽화가 수준 높게 그려져 있다. 

농악 하는 그림과 시도 쓰여 있고, 멋진 소나무가 그려져 있다. 벽화에 쓰인 정호승 시인 “봄길”은 걷고 있는 나에게 느낌을 준다. 마지막 구절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처럼 계속 걷기를 소망한다. 

미학리를 넘어서 내려가니까 마늘밭에 마늘쫑을 뜯는 할머니가 “어디서 왔느냐"라고 말을 걸어 준다. 혼자서 걷는 길에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본격적으로 농로 옆에 있는 수로를 따라서 직선 길을 걷는다. 들판에는 거의 모내기를 하지 않았고, 간간이 마늘이나 다른 작물을 심어 놓은 곳도 있다. 

수로가 끝나는 부근에는 보리밭에 보리가 익어서 황금빛을 띤 것이 장관이다. 


농로를 직선으로 걷다가 왼쪽으로 가서 다시 긴 농로 길을 걸어가니까 우근리가 마을이 나온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앞에 펼쳐진 넓은 들에도 일하는 사람이 없다. 


우근리 지나서 직선 농로는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이 될 정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 


햇볕이 따갑게 내리지만 얼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으면서 걸어간다. 지금 심정은 얼굴이 어떻게 되든지 관심 없다.

걷는 것도 예전과 같지 않아서 평지를 걷는데도 발바닥과 다리가 아프다. 이번 서해랑 길은 완주할 자신이 없다. 


넓은 우근리 평야를 끝없이 걷다가 색다른 풍경과 마주한다. 바다가 가까워지는 농지에 대단위 태양광 발전 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내륙에 이렇게 크게 만들어진 태양광 발전 시설은 처음이다. 태양광 판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발전 시설이 끝나고 나니까 염전이 보인다. 아직 바다가 보이지 않지만 가까운 바닷물을 당겨와서 만든 염전이다. 염전 이름 중에는 땅끝 염전도 있다. 이곳에는 땅끝이라고 붙여진 곳이나 것들이 많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바다가 보이면서 물이 빠져서 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다. 갯벌이 보이는 방조제를 끝이 가물거리는 거리이다. 지루하게 걷다가 보니까 끝이 나오고, 그곳이 두모 선착장이다. 


방조제 밑으로 한참을 내려가니까 제법 큰 마을인 두모 마을 골목길에 들어가니까 마을회관과 그 앞에 효열문이 서 있다. 

이 마을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직 걷고 있는 내가 집 안에 있는 개들을 짓게 하면서 지나간다. 지금까지 서해랑 길을 걷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두모 마을을 지나서도 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다. 이렇게 넓은 농지가 있으면 곧 방조제가 나온다고 보면 된다. 넓은 농지는 바다를 막아서 만든 간척지인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바다 건너 있는 마을이 보이는 완만하게 굽은 방조제가 나온다. 여기도 썰물 때라서 갯벌이 많이 드러나 있다. 


이 방조제를 따라서 가다가 수로가 있는 부분에서 모기장으로 만든 뜰채를 들고 수로에서 고기 잡는 사람들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까 잡는 고기는 실뱀 장어였다. 작은 페트병에 잡아 놓은 실뱀장어가 담아져 있다. 

이 방조제에서는 수로에서 왼쪽 가야 한다. 이곳에서 정신없이 걷다가는 계속 직선 길로 가기 쉬운 곳이다. 


바닷길 옆으로 난 농로를 따라서 가다가 멀리 보이는 중정리 마을로 들어간다. 중정리 마을에서는 고구마 싹을 한창 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흙들의 색깔이 붉은 황토색이다. 황톳 땅에 고구마가 잘 되니까 이곳은 특산물은 고구마이다. 대형 비닐 안에서는 아직도 밭으로 나가지 못한 고구마 싹들이 자라고 있었다. 중정리 마을을 중간으로 질러서 언덕으로 올라가 도로를 가로질러 농로가 따라 걷는다. 


농로나 밭들은 모두 황토 흙이고 중간에서 만나는 대지 저수지도 흙이 황토물이다.

며칠 전에 비가 와서 황토물이 저수지에 들어간 것이다. 대지리 마을회관 앞에는 오랜만에 노인들이 몇 사람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나가는 나를 잠시 쉬었다고 가라고 하지만, 간단한 인사만 하고 계속 걷는다. 오늘 목적지에 도착해서 해남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해남읍으로 들어가는 차 시간을 모르니까 일단 빨리 도착하고 싶은 것이다. 한참을 걸어가니까 나오는 마을이 사돈 마을이다. 

이 마을 지나서 멀리 2코스의 종점으로 보이는 관동 방조제가 보인다. 이정표에는 아직 2.3Km를 표시하고 있다. 


종점이 보이니까 다리가 더 아프고, 발바닥이 통증도 심해 온다. 그래도 무리하지 않게 신경을 써 가면서 걸어갔다. 

젊은 시절은 젊고 활기차서 아픈 줄 모르고 걸었지만, 지금은 무리하지 않게 부지런히 걸어가야 할 것 같다. 세월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무리해서 이상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관동 방조제에 도착하니까 길이가 1Km 가까이 된다. 


천근 같은 다리로 방조제를 건너 얼마 가지 않아 2코스 종점 표지판이 나온다. 

역시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과 방조제만 보인다. 영터 버스정류장이 어디에 있는지도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방조제 밑 도로를 따라서 힘없이 걷다가 보니까 화물차가 오고 있다. 세워서 물어보려고 손을 드니까 자연스럽게 정차한다. 

이렇게 배낭을 메고 이 지점에 걷는 사람이 자주 있는지, 묻기도 전에 영터 버스 정류장 위치를 알려주면서 기다리면 해남 군내버스가 온다고 했다. 고마운 아주머니였다. 


일 년 전 같으면 서해랑 길 1, 2코스는 하루에 걸어도 충분한 거리이지만, 지금은 이틀에 나누어서 걸었다. 숙소가 해결되지 않아서 해남읍에 가서 숙식하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이곳에 와서 출발할 생각이다. 

서해랑 길 2, 3, 4코스 주변에 숙소가 없어서 해남읍에 들어가 묵었다가 다시 나와서 걸어야 한다. 군내버스의 요금이 천원이니까 부담없고, 버스가 언제 있는지 문제가 된다. 






#서해랑 길  #해남읍  #방조제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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