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 길 61코스 시작점인 보령 발전소 부근 깊은 골 정류장 부근에는 숙박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보령에서 시내버스 710번을 타고 가는데, 첫차가 6시 50분에 산마트(산림마트) 출발하고, 산 마트는 (구)대천역 부근에 있다. 아침이라서 20분 정도 갔다.
깊은 골 정류장에서 내려서 이름처럼 걷는 길은 골짜기 마을로 내려갔다.
아침이지만 골짝 길이라서 해가 보이지 않는다. 오포 3리 마을 회관 옆을 지날 때 산 위로 해가 떴다. 그때 시간이 7시 50분이다.
보령의 엘엔지 터미널은 높은 곳에 위치해 밑에서 보이지 않지만, 규모가 엄청난 곳이다. 그 밑의 길을 반 시간을 걸어갔다.
엘엔지 터미널을 지니고 바다가 나타났다. 그 바닷가에 갈매못 성지가 있었다.
프랑스 신부 3명을 포함해 5명의 순교자가 바닷가 모래밭에서 처형되어 묻힌 장소이다. 묻힌 그곳에 다섯 개의 비석이 서 있고, 뒤에는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5명은 교황청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갈매못 성지 바로 앞바다에는 무명의 순교자 500명이 수장된 곳이다.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미리 처형하고 보고하라는 령에 의해 배로 오다가 수장도 시키고, 다른 곳에서 참수한 신자들도 이곳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순교자가 잠든 바다는 조용하다. 순교가 중요한 것이지 후세에 알려지는 것은 그다음이다.
순교자들은 신앙에 대한 굳은 신념과 믿음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죽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심이고, 마지막의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믿는 신앙에 대한 확신으로 가능한 것이다.
젊어서는 막연한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이 멀리 있다는 생각에 순교일지라도 죽음은 두려운 것이고 힘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나이 들어 순교에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을 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순교는 대다수 선택의 여지가 신앙과 관련되어 있고, 막다르다. 그래도 순교는 가벼운 것은 아니다.
성지를 지나면 오천항이 나온다. 오천항에 낚시점과 낚시 전문 버스들이 많이 주차해 있다. 전국에서 바다낚시 출조하려고 오천항에 오는 것 같다.
오천은 충청 수영성이 있는 곳이다. 충청 수영성은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사령부로 조운선의 보호와 외적을 방어하는 목적이었다.
이곳 수영성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수려한 경관이다.
수영성 안의 영보정은 오천 앞바다를 내려다보면서 위치해 조선 제일 아름다운 정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정자에 많은 문인이 다녀간 곳이다.
다시 오천항이 올려다보이는 방조제 건너 농노와 바닷길을 걷다가 “천북굴따라길”을 만난다. 굴이 많이 나는 천북면의 바다 해안 길을 걷는 코스이다.
굴따라길은 바다의 테크길로 시작하여 바다 위 배들을 보면서 걷는 길이다.
사호 3리 부근에서 만조 시 우회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처음에는 여유롭게 걷는 길인데, 사호 3리부터 길이 바닷물에 잠기는 시기가 있다. 바닷물이 빠지는 시기를 알아야 한다.
우회 도로 안내를 세밀히 보지 않고 바닷길을 계속 걸었다. 사호 3리에 도착해서 길을 잃고, 표시가 있는 곳으로 가니까 길이 바닷물에 막혔다.
여기서 우회 도로를 찾아 헤매다가 찾지 못하고 다시 그 바닷길로 갔다. 지나는 사호 3리 주민의 말이 물이 들어와도 갈 수는 있다는 말을 들었다.
물이 들어온 바다의 바위를 타고 가는 길은 힘이 들었다. 우회 도로를 찾아서 가야 하는데, 가다 보니까 돌아갈 수 없을 정도까지 갔다.
이곳은 물이 빠지면 쉽게 바닷가로 만들어진 시멘트 길로 가면 어렵지 않고 경관 좋은 길이다.
물이 차서 바윗길을 가는 것은 힘들었다. 가기에 위험한 길이고 바닷물에 빠져 신발이 젖었다. “천북굴따라길”은 네게 너무 힘든 길이었다. 힘들게 바윗길을 지나서 좋은 길을 만났다.
그 길에는 바다를 노려보는 용 조각이 있다. 특이한 조각이었다. 내가 건너온 물이 들어온 바윗길이 위험하고 힘든 곳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