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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버킷리스트

by 안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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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침에 영하로 내려가면 개울에 살얼음이 얼었다가 한낮에 해가 뜨면 녹는다. 다시 추운 저녁을 지나 밤에 얼음 얼기를 여러 번 하다가 어느 날 몹시 추워지는 첫 추위가 찾아온다. 추위가 삼사 일이 되면 개울에 얼음이 두꺼워져 겨우내 얼어있다. 이렇게 갑자기 첫 한파가 오면 사람들의 발걸음도 공연히 빨라진다. 그때 얼음 치기 하려고 준비할 것이 찾을 때이다.


올 첫 추위가 왔을 때 물고기 잡을 도구를 준비해 놓고, 날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에 개울로 나갔다. 얼음이 잘 얼어서 조심스럽게 돌을 던져 보았다. 얼음이 바로 깨진다. 아직 사람이 올라갈 정도로 얼지 않은 것이다. 오늘도 춥다고 하니까 내일은 얼음 치기가 가능할 것 같다.

다음날에 얼음 치기 한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설쳤지만, 일찍 일어났다. 오늘도 방 안에서 추운 기운을 느낄 정도이니까 얼음 치기는 분명 가능할 것 같다. 그동안 몇 년을 하지 못해서 오랜만에 하는 얼음 치기이다.

바쁘게 집을 나섰는데 길에는 눈이 살짝 내려 있다. 불안한 마음으로 개울가에 도착해 얼음에 올라가니까 얼음 위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잘 얼었다. 그런데 힘이 빠질 정도로 실망하였다. 얼음 위에 눈을 뿌려서 밑이 잘 보이지 않는 얼음이 된 것이다. 이렇게 얼음 위에 눈이 오면 얼음 치기는 끝난 것이다. 얼음 밑에 있는 물고기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름은 이제는 날이 조금 풀려도 큰 개울가는 응달이어서 녹지 않고 더 두꺼워져 간다. 얼음 치기는 첫얼음이 얼었을 때 못하면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한다.

첫얼음이 얼 때 얼음이 투명해, 얼음 아래 물속이 모두 보인다. 그 얼음 위에서 얼음판을 울리면서 물고기를 따라다닌다. 물고기는 영하로 내려간 아침에 위에서 얼음을 울리며 따라다니면 쉽게 지쳐서 돌 옆이나 수초 사이에서 멈추어 선다. 그때 위에서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이 얼음 치기이다. 얼음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물고기를 따라다니는 것이 즐겁고,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물고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순발력과 긴장감이 있는 정말 재미있는 천렵이다. 이때 첫얼음이기 때문에 얼음이 깨질 것 같이 금도 가고, 깊은 물 위를 다니기에 아찔함도 있다. 그때 잡아서 얼음 위에 놓으면 물고기는 즉시 얼어서 죽은 것 같은데, 얼음 치기가 끝나고 찬물에 다시 넣으면 얼었던 물고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신기했었다.


그래도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어오던 겨울날의 작은 버킷리스트는 물고기와 관련이 있어서 이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달리해서 해보려는 마음이다.

두꺼워진 개울 얼음을 깨고 통발을 놓는 것이다. 그러고는 며칠 뒤에 다시 얼음을 깨고 통발을 걷어서 그날 작은 버킷리스트를 실행할 생각이었다. 겨울 물고기는 활동성이 적다고 하고, 한 번도 얼음 속 통발은 해보지는 못했다.

겨울에 통발을 놓으려면 일단 얼음을 깨야 한다. 고기가 있을 것 같은 깊은 개울에 가서 얼음의 두께를 보니, 너무 두꺼워 도끼나 함마로 가능하지 않았다. 전기톱이나 큰 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일단 물고기를 구하지 못해서 이번에도 버킷리스트는 이룰 수가 없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개울가 얼음 위에서 혼자 옛날을 회상하며 미끄러운 얼음 위를 걸었다.

얼음이 예전보다 더 미끄러운 느낌이고 걸음이 조심스럽다. 엉덩방아 찍으면 낭패할 것 같아 얼음판 위를 아주 천천히 걷는다. 큰 개울 얼음 위에서 옛날에 얼음지치기하던 시절과 개울가에서 모닥불을 쬐던 시절이 회상하니 얼굴엔 웃음이 돌았다.


이곳에서 첫얼음이 얼었을 때 큰 송사리를 보고 따라가다가 갑자기 빠르고 큰 붕어가 옆을 지나간다. 그러면 그 붕어에게 눈을 돌려 보는 사이에 오래 따라다닌 송사리를 놓치고 만다. 한 눈 파다 두 마리를 모두 놓친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만나는 송사리는 이제 다른 고기가 지나가도 끝까지 따라가 지치면 얼음을 깨고 잡아 올렸다.

그리고 다시 만나는 재빠른 붕어도 순발력 있게 따라다니면 쉽게 지치는 것이 붕어였다. 붕어는 순간 방향 전환이 민첩하고 속도도 제일 빠랐다. 때로는 얼음을 가만히 보면 돌 사이에 돌처럼 움직이지 않고 숨어있는 순진한 꾹지도 얼음을 깨고 잡아냈다. 이른 아침 영하의 얼음판에서 이렇게 고기를 따라다니면 시간이 언제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 한참 지나면 개울가 얼음 위에는 동네 어른이나 아이들이 가득하기도 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따라다니다가 놓친 고기가 지쳐서 숨어있는 것도 종종 힘들이지 않고 잡아 올렸다. 그런 첫얼음이 얼 적에 하는 얼음 치기는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바람 부는 얼음판을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겨울에 하려던 작은 버킷리스트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많은 간절함은 없지만, 그냥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날에는 낭만이 있고 멋지게 보였던 버킷리스트였다. 이제 그런 열정이 조금은 작아진 것 같고, 그 버킷리스트를 하더라도 낭만과 꿈보다 지난날의 추억의 시간이 될 것 같다. 시간이 가면서 버킷리스트도 변할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올겨울을 넘기지 말고 하고 싶었다. 처음에 버킷리스트가 되었을 때만 해도 너무 아름답다고 낭만적일 것이라는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날짜를 정해 놓고, 겨울 물고기를 구하는 방법을 달리해서 버킷리스트에 필요한 것을 준비했다.

투명한 텐트를 구할 방법이 없어서 지붕만 있는 텐트에 투명한 비닐을 구해서 사방을 둘러치면, 내가 생각한 바깥이 보이는 투병 텐트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옆집의 텐트를 빌리고 비닐도 구했다.

다음에 필요한 것은 같이 버킷리스트에 참여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가까운 도시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해 시간을 약속했다. 세 명이 필요한 것 같아서 두 명도 타지에 있는 친구와 옛 동료와 약속을 잡았다. 나머지는 집에 있는 것을 가지고 가면 되고, 그것을 실행할 개울의 얼음판도 높은 절벽 아래 큰 개울인 범숙쏘로 정해 놓았다.


이번 겨울에 물고기를 여러 이유로 직접 잡지는 못하니까 이번엔 미리 잡아 놓은 고기를 구하기로 했다. 읍내 선배에게 물고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하니까 본인은 없고 구해줄 수 있다고 한다.

버킷리스트를 실현할 날이 며칠 남겨두고 읍내에서 전화가 왔다. 물고기가 있던 집에 다른 사람이 먼저 가져가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 알아보라고 한다. 그래도 냉장고에 얼어 있는 물고기는 구하기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고, 여러 곳 찾아봤다. 모두가 없다는 대답이다. 가까운 매운탕 집으로 전화를 해 물고기를 팔 수 있느냐 물어도 보았다. 겨울이라서 물고기가 부족해 없다는 대답이다.


겨울에 잡는 물고기 비린내도 거의 없고, 시원한 가을무와 같이 끓이면 겨울철 별미다.

그런 물고기를 얼음을 뚫고 겨울에 잡는 얼음 치기도 정말 즐겁고 자주 경험하지 못하는 천렵이다.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매운탕을 친구들과 어울려 끓이고, 그 장소를 사방이 잘 보이는 경관이 수려한 개울 얼음 위에서 하는 것이다. 거기에 벗과 같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꿈과 희망의 이야기하고 정겨운 대화를 두런두런 나누면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작은 버킷리스트였다.

추운 겨울날 얼음판 위에서 바람을 맞아가면서 그렇게 하기란 추워서 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얼음 위에 투명한 텐트를 치고, 둥근 의자에 둘러앉아서 중간에 휴대용 버너에 매운탕을 보글보글 끓이는 것이다. 그 열기로 바깥에는 바람이 불어도 텐트 안은 훈훈해지고 멀리 보이는 얼음판 위의 풍경은 마음이 넉넉해질 것이다. 그리고 막걸리는 얼음 위에 그대로 놓으면 시원한 한 잔이 될 것이다. 이 작은 버킷리스트를 오래전에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했어도 하지 못한 것이다.


물고기가 준비되지 않아 올해도 작은 버킷리스트는 내년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다음 해를 기약한다는 연락을 했다.

깊어가는 겨울에 그렇게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정이 자꾸만 식어가는 것을 느낀다. 세상에 하고 싶은 일도 때와 시간이 있는 것 같고, 하고 싶던 것도 세월이 변하는 것 같다. 세상에 영원한 버킷리스트 있을지 의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더 오래 간직하는 경우와 덜한 경우뿐이다. 그러나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는 하지 못한 아쉬움에 더 좋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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