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칸 기와집에서 밤이면 다듬이 방망이질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실제 이웃에서 하는 소리였던 것 같기도 하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잠결에 들였던 소리였다. 다듬이 방망이질 소리를 잠자리에서 들었던 것이 상상이 아니라 기억 속에 있다.
집이 너무 크고 집터가 세면 그런 소리가 들린다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 사랑방에서 할아버지와 둘이서 잤다. 그믐날 초저녁에는 할아버지에게 묵세배 하는 가까운 친척들이 다녀가고, 평소와 달리 할아버지와 장기를 두면서 늦은 밤까지 지냈다. 그믐밤에 잠자면 눈썹이 쉰다는 말을 할아버지가 했었다. 그런 소리를 하면서 늦게까지 사랑방에 불을 밝혔다. 이날은 아침까지 불을 밝혔던 것 같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쉰다는 말이 처음 들었을 때 잠들까 걱정을 했었다.
그러다가 잠자리에 들면 잠들지 않으려 애썼다.
처음에는 내일 아침이면 설날이니까 세배를 한다는 생각과 새 옷을 입는다는 설렘으로 잠이 쉬게 들지 않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잠이 쏟아진다. 그때 잠이 들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여러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려고 했다.
내일 누구 집에 먼저 세배 갈까도 정해 보고, 세배하면 세뱃돈을 줄 사람도 생각했었다. 또 얼마나 줄까도 생각하면서 잠들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 전에 먼저 거울을 찾았다. 눈썹이 쉬었는지 확인하려고 했었다. 그러다 눈썹을 보고는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은 그렇게 그믐날 밤부터 설날 기분을 느꼈다.
그런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관리가 어려워 동네 네거리에 있는 작은 집으로 옮겨서 살 때, 그믐날 밤이면 형제들이 한방에 모여서 보냈다.
그믐밤은 추위가 한창이라서 해가 넘어가기 전에 방에 군불을 넣어 아랫목은 쩔쩔 끓을 정도지만, 옷 목은 약간의 온기가 있었다. 그러다 새벽이면 식어서 다시 아침에 군불을 넣었다.
그때도 그믐날에 잠을 자면 눈썹이 쉰다는 이야기를 어린 동생에게 이야기했었다. 눈썹이 쉬면 늙어진다는 생각이나 왜 나쁜지는 모르고 그냥 나쁘다고 여겼다. 눈썹이 쉬면 나쁘다는 뜻은 이야기하면서 표정으로 했었다. 그리고 동생들이 별 반응이 없으면 귀신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그믐날과 분위가 비슷한 깜깜한 밤부터 시작하면, 조금 철든 동생들은 ”안 듣는다"라고 두 귀를 손으로 막는다.
비가 내리는 그믐날 깜깜한 밤, 공동묘지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마을로 내려온다. 머리는 길게 풀어헤치고, 입에는 피가 묻어 있고 길게 자란 손톱으로 하고 발소리 없이 마을로 들어온다. 마을에 불이 있는 집으로 들어와 방문을 스르르 연다.
이야기가 이쯤 되면 어느새 동생들은 내게로 바짝 다가앉으면서 문 쪽을 멀어지려고 했다. 그리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문으로 귀신이 들어오는 것 같아 문을 바라보았다. 그때 듣지 않으려던 동생들도 모두 내 얼굴을 본다. 침묵이 흐른다. 그때 두 손을 들고 표정도 귀신처럼 하면서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 이름을 부르며 ”누구야“ 하면 동생들은 모두 소리 지르면 아랫목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이야기하는 나도 바깥에 나가길 겁이 나는 그믐밤이었다.
그러다 한 이불에서 누가 먼저 날것도 없이 눈썹이 쉰다는 것도, 귀신도 잊어버리고 잠이 들었던 그믐날 밤이었다.
동네 네거리에서 보냈던 시절의 그믐날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에 소동이 일어났다. 새해 첫날 이른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직 이불 속에 누가 있었다. 누군지 일어나라고 이불을 걷었다.
그런데 그 이불 속에 거지 같은 소녀가 잠을 곤히 자고 있었다. 이불을 걷어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잠이 깊이 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자고 있던 거지 소녀는 놀라서 문을 열고 도망갔었다. 설이 다가오는 며칠 전부터 어디서 왔는지 정신이 이상한 거지 소녀가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때는 그런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믐날 추운 밤에 바깥에서 지내다가 네거리에 붙어 있는 우리 집 방에 들어와 이불 속에 들어와 곤히 잠든 것이다.
그때는 모두 소리쳐 거지 소녀를 방에서 쫓아냈지만, 세월이 지나서 보니 얼마나 추웠으면 따뜻한 방으로 찾아 들었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방에서 우리 형제들과 같은 이불 속으로 들어오면서 아늑함을 느끼고, 아마 들어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을 것이다.
그 설날 아침에 다시 왔다면 따뜻한 떡국이라도 한 그릇 먹여서 보내야 했었다. 그 방을 나가고 마을에서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학교 때는 설날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객지에 나가 무엇을 하든지 고향으로 돌아와 설명 절을 보내고 나갔다. 이 시절 그믐날 밤에는 집에서 그동안 못 본 가족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보내는 것보다,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을 그 밤에 만났다. 공장에 갔던 친구들이나 다른 곳에서 학교 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집에 있는 가족은 언제나 만날 것 같은 마음이어서 그런지 친구들이 먼저였다. 못 온 친구도 있었고 모두가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그때는 서로 연락해서 고향에 온 친구들은 거의 한 집에 모여서 그간 지냈던 이야기하면서 보내었다. 이날도 말은 잠을 자면 눈썹 쉰다고 하면서 늦도록 이야기를 했었다. 밤새 해도 아쉬움이 있었지만 늦도록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달도 없는 그믐날 밤이었다.
이제 그때 어른 들은 모두 안 계신다. 그때 아이들이 어른들 만큼 흰머리가 늘어났고 눈썹도 쉬었다. 지금도 눈썹이 쉰다는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해본 적은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때 아이들 반응이 별소리 다 듣는다는 표정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눈썹 쉰다는 말을 내게 들려줄 때는 눈썹을 만져보고, 그믐밤에 잠들지 않으려 했었다.
그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하면서 믿지 않는 표정을 보고, 혼내주려고 귀신 이야기를 손과 표정으로 하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믐날 밤은 설날을 기다리는 기대와 어두운 그믐밤이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