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잔치하는 늙은 총각 2

by 안종익



오전에 잔뜩 흐리더니 오후 들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오지는 않고 조금씩 오다가 마다가를 반복하면서 흐린 날씨에 바람이 불지 않으니까 겨울 분위기가 난다. 실제로 이 비 그치면 추워진다고 하니까 가을걷이를 맞힌 들판은 쓸쓸하고 황량한 분위기이다.

늙은 총각도 할 일 없이 정자에 앉아서 오가는 차를 바라보고 있다. 오랫동안 지나가는 차를 보았기에 차량 번호는 보이지 않지만, 낯익은 차는 대충 누구 차인지 구분이 된다. 차가 오는 속도를 보면 방향지시등을 넣기도 전에 총각네 집에 들어올 차인지, 아니면 지나갈 것인지 알 수가 있다. 간혹 지나가면서 늙은 총각이 혼자 우두커니 정자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경적을 울려주고 지나가는 차도 있다. 그런 차 대부분은 인근에서 농사하는 사람들이다.


차분히 내리던 비가 한참 안 오고 있다. 하늘을 보면 다시 올 것 같고, 오늘은 계속 이렇게 날씨가 흐리고 비가 많이는 오지 않지만 올 것 같다. 그때 트럭이 가까이 오면서 속도가 줄어지는 것이 아마도 늙은 총각 집에 들어올 모양이다. 언 듯 보아도 누구 차인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몇 동네 위에 사는 후배 트럭이다. 평소 일주일에 서너 번은 오는 후배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방향지시등이 커지고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왔다. 트럭 뒤에는 살아 있는 닭이 두 마리 실려 있었다. 닭들을 이른 봄 시장에서 사다가 집에서 키우다가 가을에 큰 닭이 되면 계란을 얻으려고 계속 기르기도 하지만, 봄이 올 때까지 보통 잡아먹는 경우가 많다. 닭을 몇 년이나 집에서 키우는 집은 드물다. 닭을 잡고 싶어도 시골이지만 목을 치지 못해 못 잡은 경우가 많다. 닭의 목을 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굳이 닭을 잡지 않아도 시장에 가면 잘 손질된 닭을 살 수도 있고, 닭을 잡아본 사람이 드문 것이다. 늙은 총각은 닭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다. 닭을 잡아서 비 오는 오후에 한잔하자는 뜻이다. 이렇게 오늘도 닭을 안주로 해서 잔치가 시작된 것이다. 아마도 비가 오니까 조금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이 올 것이다. 오늘은 닭을 가을에 맛이 마음껏 오른 무를 넣어서 끓일 예정이다.


늙은 총각 집에는 오늘도 잔치가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벌써 일부는 집으로 갔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남아 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지만 오늘의 단연 화제가 늙은 총각 결혼하는 문제였다. 늙은 총각은 농사를 지어도 줄 자식이나 집사람도 없고, 생활비만 들어가니까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 것보다 편한 농사일을 더 좋아한다. 늙은 총각에게는 부족한 것이 여자가 없다는 것이다. 늙은 총각이 여자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시집올 여자가 없으니까 못 간 것이다. 그래서 늘 없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놀러 오는 친구들이 이렇게 늙은 총각 장가보내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늙은 총각은 같이 사는 사람이 없으니까 단출해서 좋기는 하지만, 늘 외로움이 같이 있는 것이다. 늘 잔치가 끝나고 친구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고, 그럴 때는 옆에 같이 살 사람이 있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한 번도 정식으로 결혼을 한 적은 없지만, 문제가 있어서 못 한 것은 아니고 때를 놓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혼자 사는 것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환갑이 넘은 늙은 총각에게 시집을 올 사람은 없을 것 같고, 외국 여성에게 장가를 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외국 여성에게 장가를 가려고 했으면 벌써 수십 년 전에 갈수 있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내키지 않았었다.

닭 요리 잔치가 끝나고 모두 돌아가고 늙은 총각은 다시 홀로 되었다.


술기운도 있었지만 조금 전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이라도 덜 외로운 것이 좋은 것 같아서 외국 여성과 결혼을 하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인 것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있으면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환갑이 넘은 늙은 총각에게 시집올 외국 여성이 있을 것 같지 않는데, 있다고 하는 후배의 말이 자꾸 생각이 난다. 그 후배의 주장은 비록 환갑이 지났지만 늙은 총각은 기본 재산이 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외국 여성이 시집을 온다는 것이다. 늙은 총각이 죽으면 그 재산을 물려받는다는 것을 외국에서 시집올 여성 중에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외국 여성은 앞으로 늙은 총각이 죽으면 재산을 얻어서 좋고 늙은 총각은 죽을 때까지 외롭지 않아서 좋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차피 죽어서 가져갈 수 있은 재산도 아니고, 누구에게 물려줄 사람도 없는데 같이 외롭지 않게 살아 준 외국 여성에게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늙은 총각은 다음날 아침에 어제 늦게 잠이 들어서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일어나기는 싫고 일찍 일어나야 할 일도 없어서 여러 생각을 한다. 수년 전에 멀지 않은 동네에 사는 띠동갑인 후배가 자살한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 후배는 늙은 총각에게 잘해 주고 따르던 후배라서 더 생각이 난다. 후배는 외국 여성을 얻으려고 그 나라에 지참금을 들고 가서 장가를 갔다. 그리고 수십일 뒤에 외국 여성과 같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농사하면서 행복하게 잘 사는 듯했다. 그 외국 여성이 얼굴이 이뻤다. 그 나라에서 미인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는 여성이었다. 그렇게 이쁜 여성과 사는 것이 후배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을 했으니까 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고, 일도 곧잘 하던 외국 여성은 어느 날부터 외부 출입이 잦았다. 물론 거의가 같이 시집온 같은 나라 여성들과 어울려 다녔다. 평소에 이 외국 여성은 자기 나라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주변에 농촌 일손을 공급하는 일까지 했다. 그 인원이 엄청 많아서 거의 사업 수준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소개비로 받는 돈이 백만 원이나 되었다고 하니까 상당한 재력을 쌓은 것이다. 그런데 그 농촌 일손 공급 사업은 경제권을 외국 여성이 갖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많아지니까 외국 여성은 같은 나라에서 온 여성들과 도박을 하고 다녔던 것이다. 인력이 부족한 농촌에 외국 인력이 없으면 농사가 안 될 정도이니까 농촌에서는 돈을 벌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 외국에서 들어온 인력에 대한 경제권을 누가 갖는가가 문제이다. 보통은 남편이 갖지만 외국에서 시집온 신부가 갖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권을 갖은 외국 여성들이 서로 몰려다니면서 도박도 하고 음주와 가무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남성들과 눈이 맞아 외박도 잦았다고 한다. 후배는 설득도 하고 협박도 했지만 고쳐지지 않았고, 나중에 자식도 돌보지 않으니까 자기 성질에 못 이겨서 자살을 한 것이다. 그 후배가 죽고 나서 그 외국 여성은 읍내로 나가서 식당을 하면서 잘 살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늙은 총각은 그렇게 당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나 아랫마을에 사는 더 어린 후배는 외국 여성과 결혼해서 그 여성의 장인이나 친척들이 와서 농사철에는 일손도 높고 또 주변에 인부를 공급해서 해마다 억대의 수입을 얻고 있다. 그 외국 여성은 후배에게 잘하고 집안 어른들에게도 잘해서 칭찬도 많이 듣고 늘 웃으면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외국 여성이라도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 생각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아침해가 벌써 중천에 떠 있고 비 온 뒤라서 하늘이 무척 맑다.


나이가 많으니까 외국으로 직접 가서 신부를 데려오는 것은 어려울 수가 있으니까 주변에 시집을 온 후배들의 신부에게 부탁을 해 보는 것이다. 모든 조건을 그대로 보여주고 같이 살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아직은 농사를 잘할 수 있는 나이이고 일 년에 수익도 조금만 열심히 하면 꽤 버니까, 외국 처가도 어느 정도 준다고 약속을 하고 나중에 늙은 총각이 죽으면 재산은 모두 신부가 갖는다는 조건이면 장가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에 희망이 생기니까 아침 햇살이 더 따뜻한 것 같다.


홀로 사는 것이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적응된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으니까 늘 잔치를 해서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그렇게 해서 덜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아온 것이다. 이제 잔치 대신 장가를 가서 외롭지 않은 방법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애로나 아픔이 올진 모르지만 그 또한 새로운 경험이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제까지 혼자 살아왔는데, 그리고 익숙해졌는데, 새로운 것을 머리를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또 나온다. 그 외국 여성이 어떤 나쁜 마음으로 온다면 나이 들어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격이다. 그런 마음고생을 한다면, 지금처럼 걱정 없이 사는 늙은 총각의 생활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든다. 후회할 일을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마음이 또 기운다.

늙은 총각은 이제까지 저울질하고 망설이다가 세월 다가서 여기까지 왔다. 오늘 아침에도 또 그런 갈등의 시간을 갖는 중이다. 무엇이든지 결단을 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안 가본 길을 갈려고 하니까 잘못될까 봐 하는 걱정이 앞서는 병이 도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늙은 총각으로 계속 잔치하면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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