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by 안종익

집안 행사가 내일이다. 평소 전화가 없던 딸 전화다.

내일 이른 아침에 50Km 정도 떨어진 기차역에 내리니, 데리러 오라는 것이다. 전혀 뜻밖이다. 집에서 껌껌한 새벽에 나서야 했다.

사실 기차역에서 바로 앞에 있는 버스터미널에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버스가 있다. 그래도 오랜만에 딸 부탁이어서 반갑게 나갔다.


흔히 아빠와 딸 사이는 친하다고 한다. 또 딸 바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는 아니다. 딸을 귀하게 말하는 애칭으로 “공주님”이라고 하고, 예전에는 “무남독녀”라는 말은 그 딸이 귀하다는 뜻이다. 수십 년 전에 자식들이 보통 다섯 이상일 때에 자식이 오직 딸 하나일 때, 무남독녀이다. 요즈음 무남독녀가 흔하고, 보통 딸이 하나이다. 이제 젊은이들에게 무남독녀란 말이 귀한 말이 아니라 낯선 말이 됐다. 그래도 딸은 내게 가장 귀하다는 뜻으로 “우리 딸”이다.


늘 그랬듯이 반가운 인사 대신, 서로 보고 웃는 게 인사다. 오는 차 속에서도 반가운 인사나 정다운 이야기보다 대화는 서로의 주장이다.

딸은 대화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숨도 쉬지 않고 말한다. 마치 아비가 자기 말에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계속 빠르게 이야기한다. 딸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그것에 다른 생각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그래서 서로 생각을 주장할 뿐이다.

그래도 딸에게 이야기했다. “자기 말을 하는 것보다 상대방 말을 듣는 것이 더 중하다”. 그건 딸에게만 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 딸은 자기가 믿는 신앙 위주로 생각하니, 현실의 삶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신앙에 너무 집중한다.


우리 딸을 보고 생각난 것이 있다.

미국에 “세인트 존스 칼리지”라는 학부가 있다. 이 학교는 80년간 고전으로만 수업하는 학사과정이다. 소규모 토론식 수업으로 4년간 고전 200권을 읽고 서로 토론하는 것이다. 물론 수학, 과학, 어학과 음악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고전은 그리스 고전, 신.구약성서, 군주론, 돈키호테, 세익스피어 작품, 아인쉬타인 전집, 프로이드 정신분석학, 종의 기원, 링컨 연설문 등의 고전이다.

수학, 과학 시간에는 코페르니크스전집과 기하학원론을 토론한다.

이런 고전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에 도움 되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또 지식은 한 영역에 갇혀 있지 않고, 다방면 정신적인 성장을 할 수 있고, 전인적인 인간이 되는 것고, 삶아가는 삶의 균형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와 토론에서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는 할 수 있는 능력을 생긴다. 이 학교의 슬로건이 “삶에는 전공이 없다”이다.

우리 딸도 이런 폭 넓은 생각 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본다.


또 우리 딸이 고집하는 신앙도 우선 여러 종교의 원리를 알아보고 “그래도 이것이다”라고 선택했으면 한다. 그러면 아마 답답한 자기 이야기만 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탈종교화하는데, 모든 것을 폭 넓게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 우리가 살면서 여러 책을 독서하는 것도 참으로 좋은 일이다.

지식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있다. 그보다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바탕을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책을 열린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내 생각대로 살지 않아도 우리 딸을 생각하면 늘 안쓰럽다.

우리 엄마가 날 생각하듯이, 나도 그렇다. 우리 딸이 슬프면 나도 슬프고, 기쁘면 나도 기쁘다. 좋은 것은 바라지 않아도 아프거나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딸을 생각할 때 가슴 짠한 것이 아비의 마음이다.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리는 천륜의 귀한 인연이다.


오늘 깜깜한 새벽에 갈 때는 짜증도 났다. 그런데 갈 때는 다른 차 타고 갈 수 있어서 쉽게 떠났다. 막상 그렇게 가도 나니, 허전하다. 다시 내가 역까지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딸이 보고 싶어진다. 보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보이지 않으니 잘 살았으면 하는 아비의 마음이 된다.

그것이 아비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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