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이 닫혀, 밖은 보이지 않는다.
두꺼운 바지와 외투를 입었다. 허리를 숙여 바지 끝을 양말 속으로 넣었다. 털 모자, 털장갑, 마스크, 목도리까지 하였다. 눈 외는 모두 가리고 문을 나섰다. 겨울 매서운 바람이 눈가를 스치고, 장갑 속 손끝이 시리다. 아직 깜깜한 새벽이다.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몸이 무거워 걸음이 무겁다. 추운 생각이 나고, 오늘은 집에 다시 들어가 쉬고, 내일 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두운 도로길 바닥은 보이지 않고, 양 가장자리는 어둠 속에서 대충 구분된다. 바닥이 안 보이는 도로를 기억으로 생각하며 뛴다. 간혹 트랙터 지나가고 떨어진 흙이 밟힐 때도 있다. 도로 파인 곳이나, 아스콘으로 부분 보수한 곳을 밟기도 한다. 계속 앞만 보면서 뛴다. 그러면 하늘과 맞닿은 산 모양이 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하늘엔 아직 별이 반짝이며 환하다. 그래도 도로는 아직 어두워 보이지 않는다. 도로의 양쪽 산들 사이로 북풍이 소리 내어 불어온다. 눈 주위로 스치는 바람결이 매섭다.
마을을 건너보며 뛰는 도로에 불빛이 비친다. 도로가 환하게 보인다. 도로 옆으로 비켜서 뛰면, 버스가 지나간다. 아직 운전사만 있는 빈 노선버스다. 버스가 지나가고 다시 도로가 보이지 않는다. 멀리 버스가 도로를 따라가는 빛이 보인다. 한참을 보고 뛰다 보면, 그 빛도 어둠 속에 숨어버린다. 천천히 보이지 않는 바닥을 조심스레 천천히 뛴다. 아직은 추위를 부지런히 움직여, 이기려고 한다. 아직 추위를 느끼면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어, 조금만 더 뛰고 돌아갈 생각을 한다.
마을을 벗어나 들판 옆 도로를 따라 뛰는 속도는 스로우 조깅이다. 멀리 탑 밭의 소나무가 어둠 속에서 보인다. 그다음에는 동천에 놓인 다리가 흐릿하게 드러나 보인다. 그걸 건너면 유동골 입구이다. 어두운 유동골은 깊이를 알 수 없이 깊다. 그곳 어두운 계곡에서 무엇이 나올 것 같다. 애써 보지 않으려고 앞 만 보고 뛴다. 개울을 따라 뛰는 도로는 개울에 얼음이 갈라지고 조이는 소리가 들린다. 안 보이는 개울에서 들리는 소리도 신경이 쓰인다. 나이 들어도 예전에 듣던 귀신 이야기도 머리를 떠오른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가 돌려진다.
이제 몸이 풀려서 뛰는 것이 힘들지 않다. 이때 기분이 좋아진 게 느껴진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멀리 이웃 마을 교회의 트리 색깔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도로 바닥이 어렴픗이 보인다. 몸이 풀려, 손놀림이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추위도 느끼지 않고 등에 땀이 생긴다. 윗마을 앞 다리를 건넌다. 다시 어둠 속에서 멀리 불빛이 길게 비친다. 올라간 버스가 개골 끝 마을 까지 가, 돌아오는 것이다. 위 마을 다리를 건널 때 버스가 지나갔다. 다시 어두운 길이지만 이제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날이 밝아오는 여명이다. 윗마을도 지나 계속 뛰어간다.
이제 완전히 보이는 도로를 뛴다. 죽향 마을과 여미로 올라가는 삼거리를 지나서, 한참을 뛰어갔다. 늘 돌아오는 곳에서 돌아섰다. 멀리 내가 시작한 마을 하늘에 옅은 아침노을이 보인다.
이제는 밝은 길을 뛰어서 돌아간다. 윗마을을 지날 때 집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없다. 이제 아침밥을 지을 아궁이가 필요 없다. 마을 감나무에 아직 감이 달려있다. 나이 든 노인들이 힘이 없어 그대로 둔 것이다. 겨울이 깊을수록 감들은 검붉은 모양이 된다. 감이 얼어가는 것이다.
다시 내려오면서 개울에 언 얼음을 본다. 겨울이 깊어 흐르는 물도 얼음이 얼었다. 개울 위 벼랑 사이에 놓인 벌통이 보인다. 그 속에 벌이 들어갔을까 궁금하다. 절벽이 높아 올라가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다시 마을이 가까워진다. 아직 마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연기가 올라가는 집이 한두 집 보인다. 아침 추위에 난로에 나무를 지피는 것이다. 그 집은 따뜻할 것 같은 생각이 그려진다.
조깅을 마치고 집안에 들어서면 온기에 편안함을 느끼면서 흡족한 기분이다.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나이 들어서 삶이 단조로울 때, 어떤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이른 아침에 띈 것은 루틴 시작으로, 활기찬 하루의 출발점이다. 하루를 이렇게 스로우 조깅으로 시작하니 생활이 변했다.
늘 걷기는 부지런히 했었다. 그러다 우연히 스로우 조깅을 시작했다. 큰 결심도 없이 뛴 것이 좋은 변화가 많다. 활력이 생기고 이것을 시작으로 계획적인 생활이 된 것이다. 몸도 좋아졌다는 느낌이고 마음도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다. 무언가 달라진 것이고, 나이 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스로우 조깅을 시작한 것에 이것도 작용했다. “믿는 걷기에 건강이 발등 찍힌다” 이런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또 나이 들어도 걸을 수 있으면 뛸 수도 있다고 한다.
지난 몇 년간 6000Km를 걸었다. 그래서 걷는 것이 습관이 되니까, 자주 갔던 등산도 안 가게 되고, 뛰는 것은 너무 힘든 것이 되었다. 그래서 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뛰어 보니 힘들었다.
오랜 트레킹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애쓰면 그 뒤에 오는 기쁨을 따른다는 것을 체험했다. 반대로 게으르면 삶이 무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이렇게 천천히 뛰는 스로우 조깅을 시작한 것이다. 오늘이 53일째 뛰었다. 이것이 습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여기서도 또 다른 좋은 것을 체험할 것 같은 예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