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에 다녔던 중학교 동문 체육대회 한다는 문자가 떴다. 부지런한 우리 기수 총무가 보낸 것이다.
매년 왔지만, 관심 두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때맞춰 시골에 머물고 있었다. 예전에 간 적 있지만, 오랫동안 참석하지 않았다. 어색할 것 같아 가지 않으려다, 총무 개별 전화도 있고 동창들 변한 것도 궁금했다.
정문은 옛날 자리이고, 그 학교 앞 집들은 낡았지만 그대로이다. 주차장에는 고급 차와 외제 차가 많이 보이고, 시골 농사 트럭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교정은 지난해 말라버린 정리 안 된 잡초들이 눈에 보이고, 새로 올라온 풀들이 약간 파랗게 보인다. 어린 시절 넓어 보였던 운동장은 아담하다. 교실 건물은 두 채인데, 뒤에 건물은 단층에서 2층으로 올린 것 같고, 앞 건물은 새 건물이다. 한참 옛 기억을 하면서 살펴본다. 학교 주변의 소나무는 그대로인 것 같다. 소나무를 보고, 예전 그 자리에서 봤던 기억을 살리려 해도 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소나무는 옛날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운동장에는 지붕만 있는 텐트가 무대를 보면서 ㄷ자로 설치되어 있다. 그곳에 기수를 알리는 표시를 붙여 놓았다. 무대 앞에는 기증자 이름을 크게 적어 붙인 경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무대 양측에 축하 화환이 놓여 있다. 누가 보냈는지 관심이 없다.
기수 번호인 5번 천막에 가니, 낯익은 한 사람이 있다. 이런 행사에 거의 만나는 동창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 나누고, 주변 선배 기수 천막에서 반겨주는 선배들이 보인다. 3기 천막에도 반가워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거의 동문 행사 때마다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바로 아래 6기 천막은 없고, 7기 천막이 옆에 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기수별로 내는 분담금을 내지 않아 6기는 자리를 뺐다고 한다. 순서로 된 천막은 갈수록 동문들이 많이 보인다. 환갑 전후가 동문회에 열정이 많은 시절이다.
11시에 시작한다는 개회식이 시간이 지나도 방송이나 시작 기미가 없다.
각 천막에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이 미리 준비된 주류와 음료를 들면서, 이야기에 정신이 없다. 거기에 준비한 떡과 안주가 푸짐하다. 탁자 위에 술병이 많은 쌓인 순서는 젊은 기수 순이었다. 5기만 해도 먹는 사람은 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한두 잔 정도이다. 그 위 기수는 술보다 음료나 떡을 선호했다.
아직도 젊은 기수는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술로 회포를 푼다. 옆 천막 7기들도 많이 늙었다. 흰머리나 머리숱이 없어진 것은 마찬가지고, 오히려 7기에서 더 늙어 보이는 동문이 있다. 같이 늙어간다는 것이 실감 났다. 정오가 지나도 시작 없이, 점심 배식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점심 국밥과 반주로 술판이 무르익는다. 기수별로 단합 건배도 하고, 선후배 오가며 술잔을 나누는 분위기이다. 서로 분주히 이야기하고, 웃음꽃이 봄날에 활짝 폈다.
이때 같은 색 점퍼 입은 사람들이 운동장에 들어와 천막을 순서대로 지난다. 머잖은 선거 출마자들이다. 일일이 악수하고 명함을 준다. 더러는 먼저 아는척하며 달려가는 동문도 있다. 여기저기 악수하는 출마자들의 점퍼 색이 유난히 붉어 보이고, 마치 선거 출마자들을 위해 동문회 하는 것 같다.
늦게까지 아는 동문과 국밥도 한 그릇 같이 하고 출마자들이 떠나고, 식사도 마쳐갔다.
천막에 나와 무대 앞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반복해서 한다.
천막에서 나오는 순서도 젊은 기수 순으로 나오고 있다. 나중에 나오는 기수가 가장 늙은 기수이다. 5기도 이제 다 온 것 같은데, 모두 14명이다. 그런데 맨 처음에 와 있던, 그 친구는 초반 주변을 돌아다니며 떠들더니, 모이라 할 때는 보이지 않는다. 언제 간지 모르게 조용히 사라졌다. 그 친구는 특정 직업도 없고 선거철에 바람잡이로 한두 푼 얻으려고 다닌다고 한다. 그렇게 조용히 떠난 것은 회비 낼 돈이 아까워서인 것 같았다. 얼굴만 비치고 간 것이다.
회장이 나와 개회사를 하고, 마지막 유인물로 나눠준 교가를 불렀다. 들어올 때 유인물로 받아, 점심 먹고 술 먹고 떠들다가 모두 천막 탁자에 두고 왔다. 그래도 교가가 시작되자 50년 전에 불렀던 교가가 기억난다. 그 노래를 부르니, 잠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다.
다시 천막으로 돌아와 기수별로 도구를 이용한 게임을 했다.
봉 타고 걷기와 탈 쓰고 홀라 후퍼 돌리기, 고무신 멀리 차기 게임이다. 기수별로 서로 나가라고 채근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이고, 또 자진해서 참여하는 동문도 있다. 나이 들어 오랜만에 힘쓰는 모습들이다. 그래도 모두 즐겁게 웃고 소리 지르고 응원했었다.
사회자는 중간중간 잘하는 사람이나 특이하게 웃음을 주는 동문에게 경품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작은 삼각 깔때기로 트랙을 만들어 이어 달리는 계주를 하고, 이어서 마지막인 노래자랑을 시작한다.
노래자랑은 기수별로 사전 명단을 받아 놓아서 선배 기수부터 시작했다.
노래하는 동창을 중심으로 참석한 동창은 모두 무대에 올라갔다. 춤추며 응원하는 분위기로 운동장이 후근 달아오른다. 한 기수가 끝나면 경품 추천하고, 그 경품 당첨된 기수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특별한 무대 재주꾼도 경품을 준다. 노래가 이어지면서 올라가는 기수의 응원이나 춤이 신명이 넘친다. 오늘을 기다린 사람처럼 놀았다. 두 자리 기수로 가면서,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15명이 올라가는 기수도 있었다. 서너 명 참석한 기수도 있고, 많아야 15명 이내이다. 그렇게 동문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작년에 큰 산불로 체육대회를 개최하지 않았는데도 저조하다.
갑자기 술 취한 동문이 무대에 올라간다. 미리 신청하지 않은 동문이다. 그 기수는 4명이 와서 그렇다 할 눈길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혼자서 무대로 올라가 사회자에게 노래를 신청한다. 얼큰하게 술이 돼 올라온 사람을 박절하게 하면 분위기가 어찌 될까, 원하는 한 곡을 부르도록 한다. 취한 목소리였다. 노래가 끝나도 무대를 내려가지 않고, 앞에 보이는 경품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회자가 주변에 있는 경품을 하나 주니 무대를 내려갔다. 객지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내려왔다고 자기를 소개한 동문이다. 오늘 무대에 올라온 동문 중에 고향에 돌아와 정착했다는 동문이 여럿 있었다. 그렇게 술 취해도, 동문 체육대회여서 모두 유쾌히 넘어가고 즐기려는 분위기이다.
노래나 게임을 점수 내어 1,2,3 등을 정한다. 그 순서에 따라 상금이 차등으로 지급된다. 기수에 뛰는 춤이나 액션으로 점수에 영향을 주는 동문은 모두에게도 웃음을 주었다.
이제 경품에 신경이 쏠리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값싼 것은 다 주고, 남은 것은 상당한 가격이 있는 것이다.
추첨하는 순간마다 함성이 들린다. 그 기수를 먼저 부르고 이름을 부르니, 같은 기수는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난 실제 경품 기대는 하지 않지만, 한편으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상당히 고가 경품 하는데, 내 이름이 불린다.
동기들이 환호하고 일단 나가서 받았다. 사실 경품 당첨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기수는 여기 모교 운동장에서 동문 체육대회가 끝나면, 저녁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한다. 식사하면서 결산 겸, 회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인근 펜션으로 자리를 옮겨 술도 먹고, 뒤풀이를 하는 일정이다. 이곳에 사는 동창도 있지만, 거의 멀리서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까지 먹고 헤어지는 것이다.
오늘 옛 중학교 운동장에 갈 때는 학교 다니던 시절을 생각했다. 만나는 동창들이 변한 것도 보고 싶고, 누구 볼까도 궁금했다.
막상 가보니, 예전에 나온 사람들이었다. 오히려 오던 사람이 줄어들었다. 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었다. 여자 동창들도 같은 사람이었다. 이 동창들은 다른 동문 행사나 심지어 이 지역 행사에도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이다.
예전에 추억은 어디도 찾을 수 없다. 학창 시절 앳된 얼굴이 늙어진 주름에서 세월의 시간은 느꼈다. 이 사람들은 내년에도 또 나올 것이다. 선배들이나 후배들도 예전에 본 사람들이다.
동문회는 온 사람은 계속 나오고, 안 나오는 사람은 계속 불참이다. 이제는 매년 나오는 사람, 그들만의 동문회가 되었다. 그러다 나오던 사람도 별로라는 생각이 들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자기 과시하고 싶은 사람도 잘 나오고, 돈을 많이 벌거나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이런 동문회 감투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새로 나오니 분위기가 어색하고, 그들 잔치에 불청객이라는 기분마저 든다.
대화 내용이 학창 시절 추억이나 그 시절 은사나 학우들이 아니다. 은근히 자기 자랑, 다른 사람 뒷담화, 시골 친구들은 농사 이야기이다. 별로 즐거운 것이 없고 반복되는 비슷한 대화에 지루하기까지 했다. 술이 들어가니 어떤 동창의 여과 없이 나오는 말은 거북했다. 별로 참신한 것 없고 시간이 갈수록 빨리 끝나면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중간에 가야 하는 이유도 찾기 힘들어 자리를 지켰다. 운동장 행사만 끝나면 나머지 기수 모임에는 가지 않고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가의 경품이 당첨된 것이다. 당첨되면 오랜만에 나와 경품만 받고 갔다고, 뒷담화 할 것이다. 그것 때문에 당첨되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 경품을 추천하는 것으로 동문 체육대회는 끝났다. 어쩔 수 없이 기수 다음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또 다른 동창이 참석했다. 그 사람들도 매년 오는 사람들이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회의도 했지만, 과거 여행 갔던 이야기고 다툼이 있었다. 나이 들어 이해보다는 나름 아집이 많이 보인다. 저녁 자리에서 나오니 날이 어두웠다.
다음 장소인 펜션으로 모두 이동했다. 여기서도 빠지는 동창이 있었지만, 끝까지 따라갔다. 펜션에서 본격적으로 술이 오간다. 이제 그렇게 술을 많이 먹는 동창들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 술이 줄어든 것이다. 운동장에서 술 취한 동창은 여전히 횡설수설이다. 그곳에서 듣기만 하고 말없이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겨우 11시경에 바빠 집에 가는 사람이 있어, 따라나섰다.
이제 경품만 타고 갔다는 말은 듣지 않을 것 같다. 내년에 참석할 마음이 지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