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주어진 세상을 따라 살아온 삶은 정해진 나이가 되어 지금까지 하던 일은 마무리했다. 이제부터는 꼭 해야 할 일도 없고 무엇을 하라는 일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마지막으로 죽으면 나의 일생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마지막까지 확실한 것은 정해지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남아 있는 시간 동안에 내가 무엇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고 주변의 환경이나 시스템도 내 역할이 필수 요인은 아니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서 하든지 아니면 어떤 역할이나 일을 하지 않고 보내도 별로 관심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직 남은 시간이 제법 있을 것 같다. 그 남은 시간을 그냥 텔레비전만 보면서 보내기는 싫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욕심보다는 부담 없는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상 의미 있는 일인 것이다. 남은 시간에 어떤 일을 해서 성과를 얻으면 그 기쁨이 클 것이다. 지난날처럼 간절한 바람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할 필요는 없고, 절박함이 없는 상황에서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결과물이 있다면 오롯이 남는 삶인 것이다.
그런 마음이니까 무엇을 하려는 것은 완전히 욕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부담이나 급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무엇이든지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 미련이나 후회는 있지만 잊힐 것이고, 그날이 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쉬운 것들이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의 것은 없고, 그리고 꼭 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할 일이나 사람도 없다. 이제는 나만 남에게 짐이 되거나 폐를 끼치지 않으면 되는 처지이다. 이제부터 무엇을 하든지 상관할 사람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 것도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여럿 있다. 무엇을 하든지 잘해보고 싶다.
어느 날 주변에 사는 스님을 찾아 나섰다. 이 스님은 다른 곳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스님이다. 혼자서 기거할 암자를 짓고 텃밭을 일구어서 자급자족을 하면서 살아가는 스님이다. 이 스님의 삶의 목표가 소박하게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법정 스님처럼 청빈하게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아주 조용한 곳에서 산 짐승들과 자연을 벗 삼아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스님을 만나 홀로 살아가는 것도 보고 싶고, 살아가야 할 방향에 얻을 것이 있을까 생각되어 두 번이나 찾아갔지만, 암자는 굳게 잠겨 있었다. 돌아오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이렇게 사람과 단절된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감정과 맞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수행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살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가 된 것 같다.
자연에서 홀로 살아가면서 만족하다고 말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들 중에는 살아온 삶이 힘들었거나 후회되는 삶들을 잊기 위해서 자연에 들어가 위로를 얻고 건강도 회복했다는 분들이 많다. 본인의 삶을 자연에 적응시킨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과 단절하고 혼자 살아가야 할 필요나 의미가 없고, 이렇게 자연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에 적응하고 싶지도 않다.
남은 삶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사람과 같이 사는 것도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이나 노하우에서 얻은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다. 한적한 자연이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 좋다는 말과 믿음을 주는 다정한 이웃이 되는 것이다. 수도자의 모습도 아니고 힘들어 고뇌에 찬 얼굴을 한 늙은이 얼굴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인심 좋고 늘 다정하게 웃으며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노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사는 곳이나 살았던 곳이 아니라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와 다른 사람,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까지 인연을 모두 단절하는 것이다. 인연뿐만 아니라 살아온 환경도 완전히 낯선 다른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완전히 일생을 두 번 산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한 번 산 것이고, 다시 전혀 새로운 곳에서 지금까지 모든 인연을 버리고 새로 시작해서 한 번 더 살아보는 것이다.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면 아쉬운 것도 있지만 새로운 인생을 한 번 더 살아본다는데 의미가 있고, 일생을 두 번 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기이다.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사는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고, 이렇게 살면 앞으로도 같을 것이다. 그래도 달리 살아보면 또 다른 의미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서 그렇게 살아볼 시간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환경과 경험과 인연은 버리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잘 사는 노하우는 그대로 살리면서 사는 것이다. 늘 마음속에 멋지게 생활하는 방법이라고 그 자세로 살아보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일 막은 이제까지 살아온 것이고 이제 2 막은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주변에 이해를 구할 사람에게는 충분한 설명을 하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인연을 모두 끊고 다시 새로운 삶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삶은 처음 시작하는 아이 같은 마음으로 호기심과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새로 만난 낯선 사람들이 다시 살아가는 삶에서 가족과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삶은 모두 잊는 것이다. 잊어도 내 마음만 정리되면 문제 될 것은 없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도시 남모르는 곳에서 작은 빵집을 하거나 항구도시에서 고기 잡는 일을 하거나 도시 근교에서 농사일을 하는 것이다. 아니면 완전히 낯선 외국으로 가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늘 사람과 같이 살면서 평범하지만 즐겁게 열심히 사는 것이다. 그곳에서 인생 2 막을 사는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2막 인생도 의미 있게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일생을 두 번 사는 것이다. 완벽히 다른 인생을 살고 마음속에 간직했던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늘 준비하다가 어느 날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늘 어디라도 떠날 준비를 하며 살다가 갈 때가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