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2일 차

by 안종익


해동용궁사는 이른 아침에 도착했는데도 신도들이 많이 있었다.

어제 용궁사 부근에 숙소가 없어서 기장읍까지 가서 유숙하고 아침에 다시 온 것이다. 해파랑길 전 구간을 빠짐없이 걸어서 완주해 보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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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바다에서 떠오르는 햇볕을 받은 해동용궁사는 바다와 어울려서 멋진 모습이다. 용궁사가 바다 위에 야간의 높이가 있는 끝자락에 자리를 잘 잡은 것 같다. 용궁사에서 방생의 길로 나와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바다와 맞닿아서 파도가 손에 잡힐 듯하면서 하얀 거품 물결이 쉴 새 없이 들락인다. 해변의 바위들도 파도와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해동용궁사에서 국립수산과학원의 담장을 연하는 길은 가면서 이렇게 편안한 바닷길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멀어지는 용궁사가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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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아직 지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파도 소리만 들리고 그런 파도를 보고서 걷다가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모친의 얼굴이다.

오늘이 모친과 함께 매년 보냈던 섣달 그믐날이다.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돌면서 가슴이 시리도록 그립고 보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 눈물이 날 때가 많다. 이유는 모르지만 슬프고 그립고 아쉬운 생각이 많아지고 오늘처럼 그믐날이나 특별한 날은 더욱 그렇다.

모친은 섣달 그믐날이 되면 자식들이 언제나 올까 대문 밖에서 기다리셨다. 이날이 되면 자식들은 거의가 모친을 뵈러 고향집에 갔었다. 그믐날에 자식들을 만날 때 그렇게 환하게 웃던 모친의 모습이 떠오르자 이제는 눈물이 흐른다. 이 길에서 아무도 없으니까 마음껏 눈물을 흘린다.

모친은 섣달그믐이 다가오면 며칠 전에 가마솥에 손두부를 해 놓으셨고, 순두부를 좋아하는 자식들을 위해서는 눌리지 않은 순두부는 조금이라도 냉장고에 보관하시던 모친이었다.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거의 준비해 놓고, 자식들이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던 날이 오늘이다.

아침부터 자식들을 기다리면서 오는 길만 바라보던 어머니가 지금은 안 계신다.

오늘이 섣달 그믐날인데 모친은 안 계시고, 나는 객지에서 나를 돌아본다고 헤매고 있는 것이다. 모친이 이렇게 살라고 하지 않았는데 갈 곳 없이 사람처럼 길을 걷고 있다.

이제는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갈 곳은 없어졌지만, 오는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데, 있던 곳을 나와서 헤매고 있다.


아침은 밤새 휴식을 하다가 시작하는 길이니까 몸이 가볍다. 섣달 그믐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까 긴 해안 길이지만, 동암항과 서암 항도 지나고 대변항이 앞에 나타났다. 용궁사에서 여기까지 노란 리본이 적당하게 달려 있어서 길 찾기가 쉬웠다. 대변항은 정박한 배들이 많았고 항구로서 바람을 막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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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항 끝에서 해안선 해파랑길이 끝나고 산길로 이어진다. 길은 작은 동네 산을 넘어서 이어져 있었다. 봉대산(229m)의 허리를 돌아서 가야 하는데, 앞으로도 해파랑길은 고개를 넘고 산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돌아서 가는 가벼운 오르막이지만 평길보다 숨이 차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니까 별로 힘들지도 않고 공기가 맑았다. 봉대산을 지나니까 작은 어촌이 자리하고 있었다. 평범한 어촌이지만 해파랑길의 리본을 따라 큰 기대 없이 가다 보니까 눈에 번쩍 띄는 성당이 보였다. 바닷가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성당이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바닷가 위에 등대와 성당의 뾰족한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위치가 너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당의 무슨 성당인지 알아보려고 가보니 갤러리라고 쓰여 있고 예전에 영화의 성당 세트였다고 했다. 무척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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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다운 성당 영화 세트를 뒤로하고 언덕을 계속 올라가니까 내리막이 나오고 멀리서 건물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기장 읍내로 들어온 것이다. 내려가는 길을 얼마 가지 않아서 정형적으로 관공서처럼 보이는 건물이 나왔다. 기장군청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 정확했다.

기장군청 옆을 지나서 기장 대로를 오랫동안 지루하게 걸어갔다. 옆으로는 차가 쉴 새 없이 달리고 소음도 많아서 이런 길이 해파랑길에서 가장 걷기 싫은 길일 것이다. 지루하던 길도 끝나고 일광 해수욕장길로 들어갔다. 오늘은 아침부터 기장에서 시작해서 아직도 기장 땅을 벗어나지 못했다. 부산시 삼분의 일이 기장 땅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아직도 기장 땅을 벗어 날려면 멀었기 때문이다.


일광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마지막에 있는 집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점심시간 한참을 지나서 식당에는 사람도 없었다. 좁은 테이블보다 다소 넓은 곳을 택해서 앉았다. 주문을 하니까 "혼자냐"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 주인이 넓은 곳에 앉지 말고 일 인석에 옮겨 앉으라고 했다.

전에 같으면 식사 때도 지났고 올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 먹어도 될 것 같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아니면 기분 상한다고 그 식당을 나왔을 것이다. 이번에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 인석으로 얌전히 옮겼다.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것보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며칠 사이에 조금 변한 것 같다. 실제로 식사를 마칠 때까지 손님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오늘은 발가락이 더 아파졌다. 오른쪽 발가락은 물집이 두 개 생기려고 하고 있고, 왼쪽 발가락도 또 하나가 나빠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발가락도 아프지만 오래 걸으니까 발바닥이 아프다. 잠시 쉬면서 손으로 주물러 주어도 그때뿐이고 다시 걸으면 아프다. 이런 아픔을 감수해야 완주할 것 같다. 어느 정도 아프고 나야 적응될 것이다. 현재의 가장 문제는 배낭이 너무 무거운 것이다. 어깨가 너무 아프다. 배낭의 물건을 집으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연휴가 끝나야 소포를 부칠 수 있으니까 삼일은 참아야 한다.


일광해수욕장을 지나서 해안선을 따라서 한참을 걸으니까 동백항이 나왔다. 항구나 방파제에 낚시하는 사람이 무수히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낚싯대를 바다에 두리 우고 있지만, 고기 잡은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또 특이한 것은 해변에서 긴 장화를 신도 얕은 바다에 미역을 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 기장 사람들이 아니라 도시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다.

계속 걷고 걸으니까 이동항이 나왔고 그다음은 동백 방파제 그리고 칠암항이 나왔다. 그곳까지 오니까 오늘의 목적지인 임랑해수욕장의 백사장이 멀리 보인다. 보이는 임랑해수욕장이 아무리 가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몸이 지친 것이다.

바다와 같이 걸으니까 지루한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다리가 무거워지고 발이 아파서 힘들었다. 앞으로 한 달 이상을 걸어야 하는데 가능할지 자신이 없다. 아직 내가 이 길을 가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때 그만두는 것이 체면을 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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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도 어제처럼 힘없이 걸었다. 어깨도 아프고 발가락과 다리도 힘이 풀린다.

앞만 보고 천천히 걷는 것이다. 나는 지금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아무 일을 안 해도 누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고 나에게 관심 갖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힘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 오후 걷는 모습이 지금의 나의 처지와 같은 모양새이다.


해파랑 2일 차는 길을 잃어버리거나 어려운 것은 없었다. 표시도 잘 돼 있고 길도 험한 곳은 별로 없었다. 나만 지쳐 있는 것이다. 얼마나 지쳐 있었으면 임랑해수욕장 첫 번째 민박집에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았다. 곧바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섣달 그믐날 객지에서 모친을 그리워하면서 쓸쓸히 보내는 것이다. 사는 것은 대체로 슬픈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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