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구정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지만 할 일이 없다. 홀로 집 떠나서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일출을 볼 마음이 없었지만, 새해 첫날은 일출을 보러 동해안에 오기도 하는데 마음을 바꾸어 일출을 보러 나갔다. 묵는 숙소 앞이 임랑해수욕장이고 해변이다.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제법 나와 있었다. 구름이 낀 것 같았지만 일출은 볼 수 있는 날씨이다. 벌써 해가 떠오른 쪽은 붉은빛이 진해지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니까 해가 수평선 위로 오른다.
한 해가 밝은 것이다. 경건한 마음으로 가족들의 안녕과 해파랑길을 완주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그리고 올해는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생각도 했다.
해는 어제처럼 떴지만, 오늘은 우리가 정한 새해의 첫날이기 때문에 같은 해가 떠올랐지만 의미를 생각한 것이다.
새해 첫날이 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에는 잊고 살거나 잘 기억하지 않던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난다.
특히 같이 지내던 가족들은 더더욱 그렇다.
모친이 오늘 아침처럼 보고 싶은 때는 없었다. 그리움이 사무친다는 말이 이때 적합한 말인 것 같다.
먼저 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보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세월이 무디게 해서 덜 그립고, 모친은 불과 작년까지 계셨으니까 그리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온다.
나이 들어가면서 명절 때 혼자 사는 노인들이 외로워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나도 그동안은 바쁘고 할 일이 있어서 그런 마음을 못 느꼈는데, 이제는 할 일도 없고 몸이 늙어가니까 그런 심정이 느껴진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외로움은 깊어 갈 것이다. 이러한 외로움에 견딜 수 있는 고독감을 키우면서 더불어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아침이다.
이제 민박집에서 나와 출발했다. 일출을 보고 곧바로 출발을 했기 때문에 어제보다 조금 일찍 출발했다. 멀리 원자력 발전소가 보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리본이 있는 방향으로 계속 가니까 월천교가 나왔다. 이 다리를 건너지 않고 좌측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월내교를 넘어가야 한다. 여기서는 이 다리만 주의해서 가면 이정표나 리본이 잘 안내하고 있었다. 월내교를 지나 주택가를 계속 가다가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한참을 가면 산속으로 올라가는데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다. 그 산에서 내려가자마자 부산시에서 울산시로 구역이 바뀐다. 여기까지 부산 구간의 해파랑길을 모두 지나온 것이다.
울산시로 들어서니까 해파랑길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있었다. 몇 미터 가서 어떻게 하라고 정확히 표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그동안 부산 구간에서 헷갈리게 하던 “갈맷길”이란 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부산권에서는 해파랑길이란 리본은 찾기 힘들었고 거의 갈맷길이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 리본을 참고는 했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간혹 보이는 해파랑길 리본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고, 갈맷길과 같은 코스라고 생각하고 따라온 것이다.
원래 부산에서 고성까지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기존에 옛길이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던 것을 중앙정부에서 연결해서 해파랑길을 만든 것이다. 물론 지역 간에 연결되지 않는 부분은 새로 조성했을 것이다. 부산에서는 갈맷길을 비중 있게 운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해파랑길에 묻힐까 염려되어서 그렇게 심하게 리본이나 스티커를 붙여 놓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혼돈이 되는 것이다.
울산지역에 넘어와서 해파랑길은 강 옆으로 갔다가 들판으로 가고 다시 언덕을 넘어서 가다가 어떤 경우는 음식점과 밭 사이로 길이 나 있기도 했다. 직선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길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이정표가 정확하게 알려주어서 다른 길을 갈 염려는 없었다.
마을 입구에 큰 곰솔이 있는 신리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기서도 원자력 발전소 원형 지붕이 보였다. 결과적으로 원자력 발전소 앞바다로 통과하지 못하니까 해파랑길을 그렇게 돌고 돌도록 만든 것이다.
신리항부터는 다시 바다가 보이는 해안 길이다. 신리항을 지나서 한참을 가다가 보면 바위와 모래와 자갈이 그대로인 길이 있다. 여기서는 길은 없지만 해변을 따라서 잘 찾아가야지 다듬어진 길을 찾다가는 엉뚱한 곳을 들어간다.
이 험한 길을 지나면 다시 조용한 어촌이 나온다.
새해 첫날이어서 사람들이 거의 정장 차림에 세배를 다니는 모습이다. 집마다 어른과 아이들이 서로 웃고 떠들면서 손에는 음식이나 선물을 들고 부지런히 마을을 다니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까 가족들이 생각났다.
새해 아침 일찍 출발해서 아침을 못 먹어 음식점을 찾았지만, 문을 연 곳이 없을 것 같아 체념하고 걸었다.
그런데 신리 항구 마을을 지나다 보니까 해변가 경계석 위에 과일을 올려놓았다. 사과, 감, 한라봉 한 개씩 올려놓은 것이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자세히 보니까 제사에 쓴 과일도 아니다. 과일 상태로 보아서 새해 아침에 지나는 과객을 위해서 보시하기 위해 내놓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새해 아침에 용왕님께 드리는 것일수도 있다. 해석은 내 마음대로 하고 일단 그중에서 사과 하나만 가져갔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있게 두었다. 사과만 가져온 것을 나름의 배려라고 생각하고 싶었고, 이렇게 보시한 사람에게 복 많이 받으라고 기원했다.
신리항을 지나 나서 마을부터는 길이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다. 바닷가에 테크 길이 잘 정비되어 가기가 수월했다. 동평항에서 간절곶에 이르는 길은 가족단위가 많은 보이는 것을 보니 아침에 세배나 차례를 지내고 산보 나온 것 같다.
역시 간절곶은 해돋이 명소답게 잘 정비되어 있었고 이곳에는 오늘 아침에 해돋이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며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간절곶은 포르투갈의 서쪽 끝 연안의 해넘이를 상징하는 카보다호카를 본으로 만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간절곶 옆에 있는 “소망 우체통”은 그 크기가 엄청나고 “간절곶” 이란 말과 소망은 서로 통하는 말인 것 같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힘들었는데, 계속 걷다가 보니까 왼쪽 발가락이 크게 이상이 생긴 느낌이다. 간절곶이란 표지석 있는 곳에서 조금 더 가면 풍차가 멋있게 자리하고 있다.
그 벤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한참을 기다려서 그 자리에 앉았다. 염치 불고하고 양말을 벗고 발가락을 보니까 물집이 엄청나게 생겨 있었다. 그렇게 아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발가락이 심하게 아프니까 아프던 어깨가 아프지 않았다.
가지고 온 약과 반창고로 대충 처리하고 한참을 쉬었다. 이제 오늘 목표한 남은 거리는 십 리 정도 남았다. 간절곶에서 진하해수욕장까지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특히 드라마하우스에서 해변으로 가는 숲길은 명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오늘도 오전에는 뚜벅뚜벅 걸었지만, 오후에는 터덜터덜 걸었다. 마지막에는 절뚝거리면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