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새로운 생활공간을 고민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어려움은 예산계획과 자금조달 부분입니다. 넉넉하지 않은 자금 사정 때문이지요. 청춘플랫폼과 청춘캠프, 청춘파크까지 세 곳의 생활공간을 만드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2013 청춘플랫폼
공유부엌 청춘플랫폼은 이웃들이 가까운 곳에서 생활과 문화를 나눌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한 창업자가 보증금 1천만원과 공사비를 마련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매월 30만원의 임대료는 돈을 벌면서 지불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라도 있었지만 보증금과 공사비는 당장 큰 목돈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모아둔 돈도, 대출받을 신용도 없어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자 500만원씩 십시일반하여 보증금을 마련하였고, 나머지 돈은 월세를 위한 여유자금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다행히 공사비는 서울시 마을 공동체지원센터의 주민제안 사업을 통해 마련했습니다. 가구도 직접 만들고 공사도 많은 부분을 직접 시공하여 첫 번째 생활공간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2015 청춘캠프
두 번째 생활공간 청춘캠프는 보증금이 3천만원이었습니다. 원래 PC방이었던 빈 공간을 공유 작업실로 전환하기 위해 공사비가 적어도 2천만원은 필요했죠. 이 즈음에는 공유공간 설계와 운영 경험도 쌓이기 시작했고 멤버들도 많이 늘었습니다. 조직의 재정비가 필요한 시기였어요. 개인 사업자였던 블랭크를 주식회사로 전환하였고, 내부 출자를 통해 자본금을 마련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우리의 도전에 기꺼이 힘을 보태주는 든든한 지원군도 등장했어요. 가까운 거리에서 응원을 보내던 동료가 보증금 3천만원을 선뜻 빌려주었습니다.
블랭크 멤버들이 직접 설계와 시공을 하고, 이제 막 가구 공방을 시작한 지인과 가구 제작도 함께 했습니다. 멤버들이 밤낮으로 페인트칠도 하고 청소도 했죠. 2년뒤 재계약 시점에는 보증금으로 빌렸던 3천만원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약간의 이자명목으로 비행기 티켓도 선물할 수 있었구요 :)
2017 청춘파크
그렇다면 청춘파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을까요? 청춘파크의 보증금은 3천만원 입니다. 다행히 집주인과 협의를 통해 임대료를 20만원 낮추고 5년 계약을 했습니다. 공사비는 처음에 3천만원을 예상했지만 조금씩 욕심을 부리다 보니 슬프게도 4천만원을 훌쩍 넘길 것 같아요. 여전히 넉넉한 곳간을 가지지 못한 우리는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올해 블랭크는 새로운 공동대표를 선출하였고, 건축사사무소 등록도 마쳤습니다. 직원 주식소유제의 첫 시작으로 현 공동대표들이 2천만원씩 출자를 하여 초기 공사비를 마련했습니다. 공동창업자인 김동리, 문승규 두 명이 소유하고 있던 지분은 현 공동대표인 김지은, 김요한의 출자로 인해 총 네 명이 동등한 비율로 지분을 소유하는 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직원 주식소유제를 확대하여 직원이 회사를 함께 소유하고 키워 나가는 회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보증금은 우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응원해주는 가족과 지인에게 펀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처음 상도동에 방문하기도, 펀딩 제안서를 통해 우리가 하려는 일들을 상세하게 설명해드리기도 했죠. 우리가 하는 일을 쉬운 언어로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선뜻 지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펀딩해주신 금액은 보증금에 쓰일 예정으로 2년을 기본으로 최대 5년까지 계약 후 만기일시 상환하며, 연 4%의 이자를 지급해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공사는 지난달에 시작하여 블랭크가 설계와 시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동네목수의 꿈을 펼치고 있는 동리쌤과 캠프 가구를 제작해주신 (천사 같은) 영표쌤이 책장과 가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기나긴 추석 연휴에도 밤새 쉬지 않고 작업 중입니다.
함께 공유하는 공동의 자산
벌써 상도동에서의 세 번째 생활공간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운영하는 공간은 철저히 비영리적으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간 운영을 통한 수익 창출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에 공동의 자산을 늘려가는 것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죠.
생활공간의 문턱을 낮추면서 많은 이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공간을 플랫폼 삼아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모였어요. 동네가 생활거점이자 생산거점이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았습니다. 블랭크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도 해볼 수 있게 되었어요. 공간에서 많은 수익이 직접 창출되지 않더라도, 협업을 통해 부가적인 수익이 발생하고 운영 경험이 쌓이니 다양한 프로젝트도 늘어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간은 자연스럽게 유지되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은 그저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가치를 함께 생산하고 공유하는 생활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아직은 소수가 소유하고 있는 공간들이지만, 상승된 가치가 공간을 이용하는 당사자들에게 온전히 돌아갈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늘어날 때마다 지분을 공유하는 사람들 역시 늘어나고 있고,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구조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까지는 시민자산화와 같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는 못하지만, 동네에서 합리적인 비용으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생활기반을 만들어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응원해주는 가족과 의지하는 동료들,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지역 곳곳의 작은 도시 기획자들과 공무원 등 많은 분들의 응원과 지원이 모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번째 공간을 준비하며 여전히 우리를 지지해주시고 걱정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가치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창한 사업계획서와 높은 수익률이 없더라도, 블랭크가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고 지지해주시는 동료와 이웃을 대상으로 소규모 펀딩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간략한 공간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상환계획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해주세요.
* 살고 싶은 동네를 찾고 있는 1인 거주자나 3-4인 규모의 스타트업의 입주문의도 환영합니다!
* 청춘파크 조성 과정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지난 1-2번째 글을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