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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31. 2024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방황하는 칼날

이 작품의 메시지는 확실하다.

현재 선도가 목적인 소년법에 대하여 처벌의 목적이 강화되어야 하는 게 아닌지 깊이 고민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로 학교폭력이 심각해지고 있어 분명히 공론화하여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작품에 관한 대화와 함께 범죄와 처벌, 소년법의 개정에 대한 토론을 짧게 나누었다.

소년 범죄자가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양형을 선고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선도와 교화의 효과가 있을 지에 관하여 주로 의견을 나누었다.

흔히 촉법소년이라고 부르는 형사미성년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형사 처벌이 아니라 보호 처분하여 가정법원에서 다루게 된다.

그렇다 보니, 이를 악용한 악랄한 범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처벌이 약하니 두려움이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소년법을 크게 개정하여 중범죄에 한하여 성인과 똑같이 형사 처벌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법을 통한 대리 복수를 할 수 있다.

정작,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게 위로뿐이라면 누가 사법체계의 공정함을 믿겠는가.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가미네도 이러한 까닭으로 직접 복수에 나섰다.

누구라도 자신의 딸이 강간당한 후 살해의 피해자가 되었다면 제정신으로 살 수 없다.

만약, 국가의 사법이 강력한 처벌을 통해 나가미네의 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었다면 어땠을까?

주범을 직접 찾아내어 잔혹하게 살인하는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강력한 처벌과 빠른 집행이 피해자와 유가족의 울분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는 길이며 우리 사회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의 다른 화두는 사적 제재이다.

특히, 법으로 금지하는 사적제재로 좁은 의미의 형벌이다.

사회의 처벌이 약하다고 하여 개인이 직접 죄인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옳은가?

이 질문의 대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의 질서 유지와 제도의 안정화를 위하여 불허하는 게 옳다.

여기저기에서 자경단이 출몰하고 사적으로 복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이미 그 사회는 중앙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혼란과 다르지 않으며 사회적인 혼란은 생계의 위험을 높일 뿐이다.

또한, 복수는 감정적인 산물의 성향이 강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독서와 토론이 모두 끝났다.

이젠 영화를 통해 작품을 한 번 더 감상해야겠다.

소년법이 보다 현실적으로 개정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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