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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Mar 31. 2024

A의 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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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문에서 떨어져 달라는 안내 멘트를 들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뒤를 살짝 돌아보았는데 자신의 뒤꼭지가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남자는 오늘 출근길이 꽤 흔들렸다.

바로 걷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시야가 휘청거렸다.

마치 머리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는 커다란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어딘가에 숟가락으로 한 움큼 퍼간 부분이 있으니 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뚜껑이 열린 요구르트 통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요구르트를 퍼 먹은 후 공간이 생겨 내용물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A는 타인이 내리는 평가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지만 쫓기는 감정은 아니었다.

자신이 타인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는 만큼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돌아보아도 특별히 내세울 만한 건 없었다.

그것은 나이를 먹어가며 더욱 도드라졌는데 마치 줄어가는 통장의 숫자만큼이나 분명한 일이었다.

그는 처음에 이 진실을 마주했을 때 서글펐으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에 자신은 이성적이라며 삶에서 만나는 일들에 관하여 냉정하게 말한 적이 많았으니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싶었다.

그는 생각보다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장점보다 단점이 몇 가지 더 많아 아쉽긴 하지만 받아들이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그의 장점이 바로 긍정적인 힘이 그의 안에 살아 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런 긍정적인 힘도 약간 휘청였다.

그것은 대화 중 드러난 한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많이 번다더니 왜 그런 집에서 사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A는 그의 머리 오른편에서부터 거대한 스푼이 그의 몸을 떠내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자리에 묶인 채로 고문을 기다리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가 급하게 해동되었으며 한편에서 숟가락이 떠나간 흔적이 느껴졌다.

별말 아닌 것 같았으나 이상하게도 자신을 전면에서 부정당한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A는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변명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는 다름 아닌 그 점이 다소 서글퍼졌다.

그 질문을 한 사람이 밉지도 않았다.

A는 자신의 어딘가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부메랑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부실해진 그의 잔고처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믿었으며 변명하기도 싫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본인의 단점을 결국 타인들도 알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기 때문이다.

그는 차분하게 앉아 내면에서 찰랑거리는 내용물을 느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딱히 만날 친구가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그의 여자가 매우 힘들겠다는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친구의 영역도 담당해야 하니 꽤 피곤할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는 어딘가에 친구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중얼거리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회사 엘리베이터까지 줄곧 같은 생각을 하며 온 것이다.

그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게 타인의 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런 질문이 나오기까지 본인의 행동이 원인을 제공했을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현재 알고 있는 것들을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언행에 신경을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난 일이므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미 그 질문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나왔고 적어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 조심하면 좋을지 답도 내릴 수 있었다.

다만, 그는 새로운 스트레스 앞에서 우울증 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자신을 돌아보며, 스트레스의 종류에 대하여 생각해 봤다.

그리고 의외로 잘 견뎌낸 일이 뿌듯하기도 하였다.

요즘 그는 삶이 유한하다는 점을 상기하며 생활의 고비를 넘기고 있다.

그것은 얼마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로 우린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100년도 못 살 삶인데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살지 말라고 만류하고 있었다.

그 구절을 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A에게는 특별한 힘을 발휘했다.

그는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써먹었다.

그래도 운전 중에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을 향해 튀어나오는 욕설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지만 그건 특수한 상황이니 예외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오늘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 역시 이 구절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넘겼다고 여겼다.

어쨌든, A의 생활은 오늘도 잘 굴러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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