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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Dec 03. 2023

당신의 호랑이는 잘 크고 있습니까?

산월기


이번 모임에 불참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실례가 참 많습니다.

게다가 이번 모임은 저의 추천 도서였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발제를 만들어 모임을 한 적이 적어 글이 미흡합니다.

항상 이야기는 시작하면 바로 나오기 마련이었고, 중요한 건 각자 하고 싶은 말을 듣는 일이었으니까요.

잘 듣다 보면, 토론에 필요한 이야깃거리는 항상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발제를 쓰겠습니다.


이 소설은 당나라의 관리 이경량의 인호전(人虎傳)을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나카지마 아쓰시는 워낙 우울하고 음침한 작품이 많은데 그것은 그의 지병과 관련이 깊을 것입니다.

천식으로 요절했을 만큼 병은 깊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가 처한 상황이 그의 작품 세계를 만든 것 같습니다.

원래, 무엇이든 짧을수록 깊은 사고를 하게 마련이니까요.

이 소설을 읽어 보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아쓰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낸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읽은 누구나 열등감과 교만함을 떠올릴 것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평가라는 단어는 참 친숙합니다.

입시, 취업, 전문직, 승진, 승격 등 이름만 다른 관문들이 차례차례 생기고 우리는 도전해야 합니다.

작은 나라, 적은 자원을 가진 나라에서 인적 자원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면 한강의 기적도 없었겠지만 우린 지나치게 경쟁 중입니다.

그러면서 각종 부정적인 감정에 빠집니다.

타인이 정해주는 서열에 익숙해진 까닭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에게 맡기고 사는 사람이 많이 보입니다.

그들 중에는 혼자만의 벽을 만들어 귀를 막고 사는 부류도 있습니다.

지나친 방어기제가 아예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된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기류에 편승합니다.

좋아 보이는 것들로 무장하고 기망합니다.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만 타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자들은 어둠 속에 살면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징은 어떻습니까?

그는 무언가로 인해 미쳤습니다.

호랑이가 되었다는 건 비유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저는 이징의 관계의 오류가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에겐 인간적인 교류가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도 소원했습니다.

원래 세상이란 재능과 현실이 부닥치는 법입니다.

그 사이에 자신이 끼어 있으니 적당한 거리를 두며 친밀한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에서 맛보는 좌절은 작은 성공이 주는 뿌듯함보다 얻을 것이 적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건 그 경계입니다.

좋아하는 데 실패하는 것과 하기 싫은 데 필요한 것은 지독한 밀월 관계에 있습니다.

이징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자격지심도 있었습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자격지심은 스스로 평가하여 자책하는 마음이고 열등감은 감정에 해당하여 언제나 비교 대상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로잡힙니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부정적인 마음이지만 우릴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주며 앞으로 달릴 동기도 부여해 줍니다.

물론, 이러한 마음과 나의 관계가 잘 유지될 때 그렇습니다.

이징은 관계 유지에 실패했으며 그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인간관계마저 무너졌습니다.

무형의 마음에서 번져 물리적인 현상까지 온 것입니다.

또한, 이미 현상이 벌어졌다면 동기를 구분하고자 노력했어야 옳았지만 이징은 심연에 맡긴 채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습도 다를 바 없습니다.

우월함도 열등감과 다르지 않으니, 자신을 지나치게 과시하고 원하는 답변만을 듣고자 강요합니다.

그것은 집착이라는 다른 말로 우릴 괴롭힙니다.

저는 이 작품을 가지고 관계와 인정에 관하여 이야길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솔직한 콤플렉스를 꺼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내 안의 호랑이


2. 재능과 현실


3. 관계와 교류의 실패


4. 경계에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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