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하하
결혼 10주년, 마지막 휴직, 마흔. 온갖 명분을 붙이고 하와이를 3주간 다녀왔다. 나는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다. 핑곗거리가 조금만 생겨도 불안해서 안 되겠다며 여행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이 정도의 명분은 필요했다. 결혼 10주년이니까 하와이 간다! 하고 나도 꼼짝 못 하게 선포해놓았다.
비행기를 결제할 즈음에 남편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나는 미루던 경제공부를 시작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수입과 지출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통장 상황으로 보면, 재테크 책들이 기본적인 내세우는 원칙에 따르면 이 여행은 여행경비를 다 모은 후로 미뤄야 했다. 이 많은 돈을 들이고, 사업장 문을 3주나 닫고 가는데 재미없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큰 도박을 하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가려고 계획할 때마다 남편 사업이 잘 안됐다. 이래도 갈 거야 여행이야 돈이야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고민은 때론 가족이야 일이야 라는 문제로 옷을 바꿔 입으며 등장해서 나를 매번 흔들어놓았다.
처음으로 부모님 안 모시고 우리 가족 네 명만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아이들 봐주시느라 고생하시고 몸이 아파서 힘들어하는 부모님께 차마 우리끼리 여행 다녀오겠다는 말이 안 떨어졌다. '저희 하와이 다녀오려고요.'라고 입을 떼는데 한참이 걸렸다.
급기야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우리가 가기 3달 전에 화산이 폭발했다. 화산재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나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하와이 어느 지역으로 갈 것인가 하던 고민은 하와이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로 바뀌었다.
여행을 2주 앞두고 축농증으로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잤다. 퉁퉁 부은 얼굴로 수험생처럼 여행을 준비했다.
한마디로, 축복받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하와이 여행 준비는 양이 방대하고 어려웠다. 나 같은 하와이 초보자에게 가이드북은 너무 두꺼웠다. 더하기를 겨우 할 수 있게 된 초등학생이 수학정석을 보는 기분이었다. 단기속성 학원이라도 다니고 싶었다. 블로그 글이나 하와이 카페 후기를 보면 욕심만 많아지고 ‘가고 싶은 곳’ 리스트는 자꾸 늘어가는데 어디에 붙어있는 곳인지 전체적인 그림이 잡히지 않았다. 막막하니 여행 준비가 숙제처럼 느껴졌다. 결정할 것이 너무 많았다. 어디를 갈지, 어떤 숙소에서 묵을지, 어떤 체험을 할지, 어디서 언제 싸게 예약을 할지... 초등 아이와 함께하는 아주 평범한 여행 일정을 계획하는데 엄청난 공부와 헤맴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평범한 하와이 여행은 내 마흔 인생을 흔들어놓을 정도로 비범했다.
20대 때 조병준 작가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라는 책을 읽고 6개월 인도 배낭여행을 갔고, 30대 때 전은주 작가의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읽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다. 하와이는 책도 안 읽고 다녀와서 반해버렸다.
글이 시작이고 여행이 마무리였는데, 이번엔 여행이 글이 되었다.
여행을 붙들고 있고 싶어 글쓰기를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이 글을 보고 이때를 추억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 글쓰기가 삶을 변화시켰다. 그리하여 나의 삶은 하와이를 다녀온 후로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다. 여행이 시작인지 마흔이 시작인지 글쓰기가 시작인지 모르겠다. 하와이가 특별했던 건지 그때의 내가 특별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2018년은 우리 가족에겐 '하와이' 그 자체였다. 하와이를 준비하고, 하와이를 다녀오고, 다녀와서 회복하고.
하와이 카페에 가입하려면 하와이 버킷리스트를 써야 했다.
나의 하와이 버킷리스트는 1. 돌고래와 수영하기 2. 거북이와 수영하기 3. 화산 보기 4. 마우나케아 정상에서 별보기였다. 이때만 해도 정말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버킷리스트는 꿈꾸기만 해도 좋아서 대충 끄적거려보는 것인 줄 알았다. 너무 고귀해서 차마 이룰 수는 없는 것들로 채우는 건 줄로 알았다.
이번 여행에서 버킷은 이루어지라고 쓰는 거라는 단순한 진리를 경험했다.
여행도 불안이고 숙제이던 엄마가 '내'가 되는 자유 만끽 여행이었다.
나의 여행기가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때론 용기가 되고, 때론 수다스러운 가이드가, 때론 예방주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와이'를 발음할 때마다 '하하하' '까르르' 같은 웃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처럼 느껴진다. 나의 '하와이'가 당신의 귀에도 들리길. 그래서 같이 '알로하하하'하길 바라본다.
Aloha-Ha-Ha!라는 소제목은 Barbara Park의 챕터북 'Junie B. Jones #26'의 책 제목에서 차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