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와 수영하기
2018. 8. 1.(수)
행루즈 케알루케쿠아베이 스노클링 앤 스위밍 위드 돌핀 프로그램(Hang Loose Boat Tour, Kealakekua Bay and Wild Dolphin Snorkel with Lunch)-코나 파머스마켓
한국에서 하와이 돌고래 프로그램을 알아봤다. 나는 호놀룰루에 있는 호텔에서 진행하는 돌고래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하려고 했었다. 시간이 짧고 가격이 비쌌지만 이게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이 '수영장에 갇힌 돌고래랑 수영을 하고 싶다는 거야?' 하면서 반대했다. 나의 가장 큰 버킷에 딴지를 거는 건가 싶어 기분이 상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알아보고 신청한 것이 바다 한가운데서 돌고래와 수영할 수 있는 '행루즈 케알루케쿠아베이 스노클링 앤 스위밍 위드 돌핀'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이름엔 돌고래가 주인공으로 들어가 있지만 상황에 따라 돌고래를 못 만날 수도 있고, 봐도 그렇게 가까이 가지는 못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모험이었다. 하지만 '야생 돌고래', '진짜 돌고래'였다. 그리고 드디어 하와이 4일 차, 고대하고 고대하던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햇반 주먹밥으로 배를 채우고 행루즈 보트를 타고 돌고래들이 마음껏 뛰노는 바다 한가운데로 갔다. 오리발을 하고 스노클 장비를 착용하고, 부력봉을 들고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도 안 되는 깊은 바닷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바닥이 안보일정도로 깊었고 파도도 있었다. 돌고래를 찾으려는 필사의 목적을 띄고 이곳저곳 수영을 하니 생각보다 힘들었다.
스노클링을 바로 전날에서야 처음으로 성공한 스노클링 신생아인 나는, 어제의 성공이 우연이었던 거면 어쩌지, 오늘 다시 안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사실 잠도 잘 못 잤다. 게다가 똥꼬2호가 밤에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며 헛소리를 했다.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빡빡한 일정이 무리였나 보다. 걱정이 되어 여러 번 깼다. 이런 피곤한 몸으로 버킷을 이룰 수 있을까 싶었다.
근데, 스노클링! 여러 면에서 두 발 자전거와 닮았다. 어제는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됐을 때와 같은 기쁨을 나에게 안겨주더니, 오늘은 한 번 타게 되면 두 발 자전거처럼 평생 타는 법을 잊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잠을 거의 못 자서 열감까지 느껴지는 상태였지만 스노클을 입에 물자 나는 자연스럽게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 집 똥꼬2호는 스노클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수경을 끼워주려는 찰나, 가이드가 스노클링 장비를 씌워주는 바람에 얼떨결에 바다에 들어갔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바로 적응해버렸다. 장하다 우리 아들! 엄마가 유튜브를 찾고 블로그를 뒤지며 연구를 해도 할 수 없었던 스노클링을 1초 만에 바로 성공했다.
똥꼬2호가 크게 '엄마!'하고 소리를 지르며 불렀다. 가보니 세상에! 얼굴을 바닷속으로 넣자마자 물고기 떼처럼 많은 돌고래들이 있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아빠곰, 똥꼬2호와 한 참 쫓아다녔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빠곰, 똥꼬2호와 같은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돌고래를 쫓던 그 장면은 내 평생에 두고두고 꺼내볼 장면이 되었다. 똥꼬1호와도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싶어서 큰 소리로 불렀는데 1호는 좀 먼 쪽에 있다가 힘들어서 이미 배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 너무 아쉽다. 똥꼬1호도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 후로도 1호는 계속 멀미 때문에 고생했다. 멀미약을 먹일까 하다가 먹이지 않았는데 미안했다.
지금도 처음으로 물 안에서 돌고래 떼를 봤을 때 숨이 턱 하고 막히던 무중력 상태의 그 장면이 생생하다. 목에 걸고 있던 핸드폰으로 돌고래를 찍어보려 했는데 스노클링 자체가 힘들어서 잘 되지 않았다. 사진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내 눈에 담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이드가 돌고래랑 수영하러 다른 곳으로 한 번 더 가고 싶냐고 했는데, 난 또 들어가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지치고 멀미로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 차마 내 의견을 크게 제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두 번째 미션, 스노클링을 하러 캡틴 쿡으로 바로 이동했다. 캡틴 쿡은 하와이에서 최초로 하와이 주민과 서양인인 제임스 쿡이 만나게 된 곳으로, 투어 또는 카약, 그리고 트래킹으로만 접근할 수 있었다. 보호 차원에서 땅에 발을 디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보트에서 그대로 바다로 들어가서 스노클링 하다가 다시 보트에 타야 하는 곳이었다. 깊은 바다에 들어가서 스노클링 장비로만 수영을 하다가 쉬려면 흔들리는 배에 타서 쉬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바닷속에 펼쳐지는 풍경은 나를 자꾸만 보트에서 먼 곳으로 이끌었다. 산호들과 물고기들이 형형색색 너무 이뻤다. 물고기들은 내가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물고기들이 나도 물고기 친구로 대해줬다. 서로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비켜주기도 하고... 산호에 붙은 이끼를 어찌나 야무지게 집중해서 뜯어먹는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이드가 캡틴 쿡 동상 있는 쪽엔 발을 디디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거기 올라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누가 뭐라고 하면 'No English'라고 못 알아듣는 척하고 잠깐 쉬고 오는 장면을 자꾸만 상상했다. 체력을 조금만 더 회복하고 물고기들이랑 놀고 싶었다. 똥꼬1호는 아직 멀미가 가시지 않아, 내 인생 최고의 스노클링 스폿에서 같이 못 놀고 같이 못 보고 얼른 배로 올라가버렸다. 돌고래도 같이, 스노클링도 같이, 최고로 좋은 건 아이와 다 같이 하고 다 같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엄마가 내려놓아야 하는 욕심인가 보다. 나한테 최고로 좋은 것도, 멀미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우리 아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고, 우리 아들한테는 바다보다 바로 깔끔하게 씻을 수 있는 호텔 수영장이 더 좋을 수도 있다. 1호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호텔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멀미로 노랬던 얼굴이 수영장 미끄럼틀 앞에서 다시 환해졌다. 다른 좋음을 인정하는 것, 존중하는 것... 이번 여행에서 크게 배우게 된 것 중에 하나다.
배 위에서 맛있는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먹고, 선상 스낵으로 제공되는 치즈 퐁퐁을 손이 형광 주황이 되도록 먹었다.
돌아오는 배에서 다이빙 포인트를 지나는데, 뛸까 말까 주저하며 뒤로 갔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우리가 배에서 다 같이 소리 지르며 응원했다. 사진도 찰칵 찍었는데 내가 봐도 순간포착이 너무 잘 돼서 ‘what’s your e-mail adress? I’ll send you your diving picture! You were really awesome.' (이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제가 찍은 사진 보내드릴게요! 아저씨 진짜 멋졌어요.)라고 소리치고 보내주고 싶었다. 절벽 다이빙 자체도 흔치 않지만, 누가 다이빙하는 장면을 바다 한가운데 배 위에서 정면샷으로 찍어주는 일은 더더욱 흔치 않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서프라이즈 소식을 말해줬다. 돌고래와 만나는 장면의 동영상을 찍었다는 거다. 또 하나의 돌고래인 강철체력 남편이 돌고래 스위밍 이후에 멀미까지 하며 힘들어했는데, 수영해서 쫓아가기만 해도 힘든데 물속에서 동영상까지 찍느라 더 힘들었던 거다. 깜짝 선물이었다. 아내의 버킷(돌고래와 수영하기)을 이뤄주려고 가기 전부터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열심히 검색하고, 그 꿈이 실현되는 자리에 같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억을 계속 간직할 수 있게 기록으로 남겨준 남편에게 정말 고마웠다. 누군가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버킷이 실현되기를 응원하고 돕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사람이 남편이라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도 그러고 싶다. 우리 남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조력하는 아내이고 싶다.
행루즈 투어가 끝나고 컨디션이 좋으면 도토루 커피농장에 가기로 했는데 똥꼬1호의 컨디션을 보고 남편이 과감히 포기했다. 남편이 커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서 내가 많이 아쉽고, 또 고마웠다.
코나 파머스마켓에 들렸다. 나는 여행할 때 시장 가는 게 참 좋다. 그 알록달록 경쾌한 색깔들을 어떻게든 사진기에 담아 간직하고 싶어 진다. 바가지인 게 뻔히 보여도 객기를 부려본다. 평소엔 꿈쩍도 안 할 가격에 미친 척 사기도 하고, 맛있어보여서가 아니라 희한하고 궁금해서 과일을 산다. 람부탄과 리찌를 한 봉지씩 샀다. 이날 힐로 파머스마켓을 기약하며 안사고 미뤄둔 게 많았는데 결국 힐로 파머스마켓은 못 가게 되고 말았다. 아이고, 이때 다 사 먹을걸.
나는 천성이 이상한 사람인가 보다. 너무 행복하면 불안해진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진다. 하와이에서 4일밖에 안됐는데 이제 집에 돌아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행복감이 충만했다. 그러자 여러 가지 생각으로 또 불안해졌다.
초반에 행운이 너무 몰린 것이 아닐까? 이렇게 오랫동안 놀면서 돈을 막 쓰고 다녀도 될까? 항공권, 숙소비, 액티비티 프로그램 결제로 벌써 어마어마한 돈을 썼다. 엄마 아빠, 어머님 아버님 안 모시고 우리끼리 이렇게 다녀도 될까? 농사일로 폭염 속에 고생하고 있을 엄마 생각이 났다.
호텔에 와서 씻고 나왔는데 똥꼬1호 유치원 동기 엄마들 채팅방에 한 엄마가 올린 휴가 인사글이 있었다. 일곱 명이라서 일명 칠공주 방이다.
“우리는 인생을 채우는 것과 방출하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채우지 않고 방출만 하면 쉬 고갈되어 탈진해버릴 겁니다. 바쁘고 피곤할수록 짜증이 나고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 이유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휴가는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하는 시간입니다.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려왔던 삶이었다면 이제 한번 멈춰서 자신을 점검하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글을 보고 내 마음이 안식을 얻었다. 저 위에서 누가 ‘네가 쉬면서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마음껏 누려라.’ 하는 것 같았다.
이러고도, 워낙에 심한 불안증 환자라서 다시 불안함이 급습해 올 때마다 여행 내내, 여러 번 다양한 통로로 이 목소리를 들었다.
쉬면서 만족하고 기뻐하는 법을 배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