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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 Aug 12. 2020

하와이 Day 5, AM:사우스포인트

아빠곰, 다이빙을 하다

2018.8.2.(목) AM   

  

커피셱 브런치(The Coffee Shack)-투스텝(Two Steps-Keoneele Cove) 스노클링-푸날루우 비치 파크:블랙샌드비치(Punaluu Beach Park) -푸날루우베이크샵(Punaluu Bake Shop)-사우스포인트(Ka Lae-South Point)-그린샌드비치(Green Sand Beach)

      

하와이에 오면 매일 질리도록 브런치 같은 아침을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거의 햇반과 미소 된장이었고 오늘 처음으로 커피셱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나에게 브런치란 따뜻한 계란 요리와 향기로운 커피 향! 그리고 화장실이다. 하하하. 손을 뻗으면 망고와 파파야를 따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안개 낀 정글 속 카페에서 따뜻한 계란 요리와 커피 향이라니! 이곳에서 우리는 게코도 처음 만났다. 앵무새 같은 색깔을 한 귀여운 게코는 파충류라면 무조건 질색인 이 엄마도 한 마리 주머니에 넣어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똥꼬1호가 게코 사진만 100장을 찍었다. 

     

커피셱에서 만난 게코

투스텝은 사실 스노클링 난이도로 따졌을 때 카할루우(초보도 가능)와 캡틴쿡(고난이도) 사이었다. 일정이 바뀌면서 캡틴 쿡을 간 후에 오게 되었다. 하지만 스노클링이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따로 입구가 없이 두 개의 큰 바위를 밟고 들어가야 해서 투스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파도가 심하게 치고 수심도 초입부터 바로 깊어지고, 밑에는 바위와 산호들이 많아 진입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1호는 스노클링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 해서 2호랑 얕은 곳에서 놀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는 첫 거북이를 만났다.      

파도에 휩쓸려 얕은 곳으로 와서 다시 못 나가고 있는 거북이었다. ‘Turtle, turtle’ 터를 터를 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누구 하나 만지려 들거나 무리해서 다가가지 않고, 다들 갓 태어난 신생아기를 보듯 조심스럽게 거리를 지켰다. 하와이의 거북이 보호법에 대해 모르는 어떤 관광객이 아이를 불러서 한번 만져보라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단호하게 꾸짖었다. ‘Nope. You can go to jail.’ (안돼요. 감옥에 갈 수 있어요.)

거북이가 파도에 쓸려 들어왔다가 못 빠져나가고 있다고 사람들이 ‘so cute’(너무 귀여워)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 눈엔 다르게 보였다. 거북이는 별로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곳을 빠져나가야 할 곳, 탈출해야 할 곳으로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파도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면 물이 들어올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힘써 싸우지 않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이리로 저리로... 거북이한테 수영을 배우고 싶어 졌다. 아니, 대인배 거북이한테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아이들과 쪼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관찰했다. 벌써 좀 배운 것 같다. 모든 면에 느려서, 토끼처럼 살려고, 토끼를 이기려고 몇 배의 노력을 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삶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내가 거북이인 것을 인정하고 내 모습 그대로 즐기며 살고 싶다.      

투스텝 거북이, 하와이 첫 거북이

 잠수복 입은 사람들도 꽤 있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까만 잠수복을 벗으면 무릎이 살짝 굽어져 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산소통을 매고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늙어서도, 무릎이 조금 굽어도 여전히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아마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며, 거북이가 저기 있다고 입 모양과 손짓으로 처음 알려준 할아버지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젖은 수영복을 차에 대충 쑤셔 넣고 블랙샌드비치로 출발했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허리케인 헥터의 예고편 바람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푸날루우 비치 파크(블랙샌드비치)는 가는 길이 환상적이었다. 차를 열고 닫는 것도 위험할 정도로 바람이 불었지만, 내려서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는 풍경들이 이어졌다. 

블랙샌드비치는 이름 그대로 모래가 까만 비치였다. 거북이들이 동물원 거북이들처럼 밧줄 친 곳 안에서 죽은 듯이 쉬고 있었다. ‘여기에 와서 쉬는 거 보여주는 거야. 1번 거북이! 너는 왼쪽 끝이야. 니 자리로 가서 쉬어야지.’ 하고 조련사가 훈련시킨 것 같았다. 파도도 무섭게 몰려오고 있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들어가서 노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는 거북이 보고 해변 거니는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여유 있게 돗자리 깔고 놀다가도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블랙샌드비치’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돗자리를 깔았음직한 곳의 앞쪽이 아니다. 비치 뒤쪽 풍경이다. 높은 파도가 치는 검은모래해변이 앞이라면 뒤에는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운 잔잔한 연못이 있었다. 아직도 그곳에서 나던 향기와 천연덕스럽던 뒤뚱뒤뚱 오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코코넛 나무에서 코코넛 향이 진하게 났다. 두 풍경의 대비 때문에 더 환상적인 곳으로 기억에 남았다.

푸날루우 비치파크(블랙샌드비치) 앞바다

점심을 먹으러 푸날루우 베이크샵으로 갔다. 미국 최남단 베이커리로 유명한 곳이다. 아직 하루의 반도 안 살았는데 배터리가 30프로도 안 남았다. 오후에 그린샌드비치 일정과 사우스 포인트 일정이 있었다. 우리 남편 다이빙 찍을 배터리와 숙소로 돌아갈 내비게이션 용 배터리는 남겨둬야 했다. 꼭 찍고 싶은 장면들이 더 생기면 어쩌지? 마음도 30프로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점원에게 혹시 충전이 가능하냐고 했더니 잭이 없으면 안 된단다. 야속했다.

푸날루우 비치 파크 뒷쪽

그린샌드비치로 출발했는데, 가는 길에 길을 잘못 들어 사우스포인트를 먼저 만났다. 남편의 넘버 원 버킷인 절벽 다이빙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13m이면 아파트 4층 높이쯤 될까? 

(교회 예배당 2층에서도) 이 정도 높이에서 뛰는 기분일까? 

다이빙장이 있는 수영장을 한 번 가볼까? 

남편은 눈으로 높이를 재고, 긴장하고, 설레어했다. 머릿속으로는 벌써 몸을 수십 번 날렸다. 몸 컨디션이 안 좋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안 하겠다고 했었는데, 나는 남편의 버킷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이리로 기울었다 저리로 기울었다 하며 가슴이 쿵닥거렸다. 푸날루우 가는 길에 불던 바람에 비하면 조금 약해진 듯도 했지만 모래바람이 여전히 너무 심하게 불고 있어서 그냥 서있기만 해도 잘못하면 바람에 떠밀려 떨어질 수 있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몸이 까만 십 대 아이들은 가장 높은 곳을 찾아 한 바퀴 공중제비 돌며 떨어지고 또 올라오고 또 떨어지고 했다. 30분 내로 안 뛰면 결국 못 뛴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던 남편은 바로 준비태세를 갖추고 미리 점찍어둔 포인트로 갔다.      

나는 이 순간을 동영상으로 담아야 하나, 사진으로 담아야 하나, 

아 기도한 다음에 ‘내’가 마음에 준비가 된 다음에 뛰어내려야 하는데, 

뛰다가 잘못되면 어쩌지, 

다리가 후들, 손이 후들거렸다. 애들도 발 잘못 디뎌서, 바람에 떠밀려 떨어지면 어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급하게 남편한테 연속 촬영하는 법을 배우고, 배터리도 간당간당한 카메라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손에 쥐고 남편한테 ‘사랑해’를 외쳤다. 그리고! 

사우스 포인트 다이빙: 남편, 버킷을 이루다

1

2

풍덩! 

1

2

와우!      

저 밑 바다에서 남편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할만해! 를 연신 외치며. 

내 다리가 후들거림을 멈추자, 남편이 아슬아슬 사다리를 타고 후들거리며 올라왔다. 저 밑에서 하늘 보며 둥둥 더 놀다가 와도 좋은데 내가 다 아쉬웠지만, 사실 나도 이 긴장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남편이 얼른 올라오길 바라기도 했다.     

버킷을 이룬 자의 미소

똥꼬1호가 ‘엄마, 나도 해볼까?’ 했다. 순간 오늘 게코 만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힘이 없어 보였던 1호가 다이빙을 성공하면 1호도 우리 가족도 하루가 더 신나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 행 히! 투스텝에서 젖은 수영복은 축축하게 젖어서 냄새가 났다. 똥꼬1호는 젖은 수영복을 다시 입는 걸 찝찝해한다. ‘엄마 안 되겠다. 수영복이 젖어서’ 1호에게도 좋은 핑계가 되었다. 그래 아들아! 엄마도 오늘 심장은 아빠한테 다 써서 너에게 줄 몫이 남아있지 않구나. 다음에는 엄마도, 똥꼬1호도, 똥꼬2호도 도전해보자. 사우스포인트 다이빙하러 하와이 또 와야겠다. 엄마 너무 나이 들기 전에 꼭 다시 오자.     



                                                                             -오후의 이야기는 ‘하와이 Day 5 (PM)’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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