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느낄 감정은…’
마치 마트에서 장을 보며 이것저것 구매하듯이 나는 내 감정을 선택적으로 결정하는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삶에 비해 감정에 대한 생각을 구차할 정도로 많이 했던 탓인지 지난 시간들로 인해 정제된 감정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지금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끊임없이 쌓여가고 있다.
사람은 매순간을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오늘 아침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가는 자전거 덕에 넘어질 뻔했던 순간은 나에게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불쾌감이 커져가던 찰나에 자전거를 타고 빨리 가야 했던 상황이 있었겠지 생각을 하니 점차 내 감정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쉽게 변할 수 있는 감정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선택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현재 내가 감정에 대해 이렇게 인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불쾌감에서 평온함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변화가 이루어진 이유는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보려는 선택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불쾌감을 계속 느낄 수 있었지만, 지나가는 순간으로 인해 내가 부정적인 마음을 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상황을 마주하자마자 자동적으로 드는 감정은 무의식에서 온다.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역은 자연스레 의식적으로 이어갈 수도 있고, 선택을 통해 다른 형태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앞서 들었던 한가지 예로만 이야기 한다면 단순히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의 논점은 감정과 이성이 과연 분리가 가능한 것인가이다.
주로 우리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싶으면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너 지금 너무 감정적이야’ 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좋지 않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내 감정으로 인해 불 난 집에 부채질 하듯 일을 키우지 말고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상황으로 이끌고 가는게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숙한 인격을 함양한 전인적 인간이 되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데, 감정에 휘둘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은 성숙과는 거리가 상당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과 이성의 분리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감정에 치우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성이 방파제 역할을 하듯 내 사고회로가 감정에서 이성으로 넘어가는 절차를 밟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연속적인 경험의 축적이 감정과 이성을 동시에 불러오는 것과 비슷하다.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진동벨이 울리자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을 받으러 간다. 음식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나를 반겨주었던 돈까스는 더 이상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때 나는 주변에서 괜찮냐는 질문과 그에 곁들인 걱정 어린 눈빛을 받고 있지만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음식을 치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걸레를 빌리러 갔다 직접 치우겠다는 직원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린 뒤 화장실로 가서 옷에 묻은 곳은 없나 확인하고 매무새를 정리한다. 자리로 돌아와 숨을 고르고 다시 돈까스를 주문하러 간다.’
내가 고등학생 때 경험했던 일이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상당한 몸집을 가진 한 사람이 음식을 맛보고 싶은 마음에 급했던 나머지 쟁반을 가지고 걸어가다 넘어진다. 그때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차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했고, 치우는 것 또한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이 아닌 음식이 아까운 마음에서 오는 아쉬움 뿐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넘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살면서 한번만 넘어지는 경우가 없다. 나도 그렇다. 신체의 중심을 잡지 못했던 영유아 시기를 제외하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내가 처음 넘어졌던 순간은 맥도날드에서 선데이 아이스크림을 받고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넘어졌을 때이다. 그때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붉어졌고, 어떻게 할지 몰라 울먹거렸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그 뒤로 빈번히 길을 가거나 식당과 같은 장소에서 넘어지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내가 알게 된 사실이 몇가지가 있다.
-넘어지는 것은 별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
-조심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질 때 가장 조심해야 한다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조심을 해야 하고, 예상치 못하게 내가 넘어졌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알게 해준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여유를 가지게 해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감정은 확실히 이성에게 영향을 처음부터 받는다. 일련의 경험들이 내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정리하자면 감정은 내가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을 마주했을 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이 내가 평소 감정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경험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도 보지 못했던 것이라면 분명 나는 더욱이 감정적이게 될 것이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지가 내게 미지의 영역인 것처럼 말이다. 주변 사람의 결혼식을 가봤지만 아직 내가 결혼하는 당사자의 마음을 공유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결혼한 적이 없고, 부모님의 결혼식은 내가 보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예상조차 가지 않는 상황은 설레는 일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내가 비슷하게 라도 경험했던 순간이 다시 눈 앞에 벌어진 경우라면,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내 앞을 위험하게 지나가던 자전거가 내게 처음에 불쾌감을 주었던 이유는 아직 내 경험이 부족하여 마음의 여유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내가 끝내 그 누군가를 이해해보기로 결정했지만, 나는 내가 보이는 즉각적인 반응마저 불쾌감보다는 놀랐지만 이해하는 감정을 느끼길 원하는 것이다.
삶은 내 선택의 연속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의 본질은 내가 내 선택을 자의적으로 가져가는 것이지, 다른 요인에 의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에서 오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두가지 가벼운 예시로 내가 평소 감정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이야기 해보았다. 내 삶의 전반적인 태도를 일상에서 흔히들 할 수 있는 경험을 통해 비춰 보고 싶었다.
<처음 경험하는 우발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대한 완벽한 프렌즈의 일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