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가 있는 삶이 아름답다.
서사의 본래 뜻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기록을 하는 것이다.
글, 영상, 사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적인 자료를 남기는 것을 우리는 흔히 서사가 담겼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때로는 시각적인 자료를 통해서만 서사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사람의 기억만으로 그 기나긴 과정을 보존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서사가 담긴 무언가를 제작하는 것은 상당히 귀한 일이다.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을 좋아해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을 습관처럼 해왔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것부터 특별한 곳으로 떠났던 순간들도 기록을 하고 외장 하드에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기록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 중 하나가 되었다. 친구들과 모였을 때 외장하드를 빔 프로젝터에 연결해 사진과 영상을 하나씩 돌려보는 일은 새벽 감성을 대낮에 강제로 느끼게 해준다.
워낙 습관처럼 카메라를 들고 별의별 상황들을 담으려고 했던 탓인지 어떤 기록들은 좋았던 순간이 아닌 다소 부끄럽거나 흑역사처럼 지우고 싶었던 기억들이 담아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록들을 지우지 않는 것 또한 특정 상황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과 별개로 모든 순간들이 나 혹은 누군가가 살아간 삶에 대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 흔적들을 모으고 모은다고 해서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지만, 분명 누군가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여러 편으로 구성된 시리즈로 제작된 영화들을 보면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사가 1편부터 마지막 편까지 짜임새 있게 연출된다. 시리즈물로 제작된 영화들 중 1편이 가장 재밌다는 평을 받는 영화들의 주된 이유는 처음부터 시리즈로 제작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 영화가 가져다주는 수익과 영화의 흥행에 따른 추가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시리즈물로 기획된 영화, 드라마 혹은 책 같은 경우 모든 이야기들이 흥미롭고 각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시리즈물의 최대 장점은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서사를 훨씬 깊고 심도 있게 그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해리 포터를 영화와 원작 둘 다 감상한 해덕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인물들의 서사가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게 볼 수 있는 서사는 스네이프 교수와 해리의 관계라고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어렸을 적 친구였던 해리의 어머니를 좋아했던 스네이프가 그녀를 위해, 그리고 그녀의 하나뿐인 아들 해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모르고 해리 포터를 보는 것과 알고 나서 보는 것은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다. 죽음의 성물 2편에서 스네이프 교수의 ‘Always’라는 명대사는 1편부터 복선을 완벽하게 그려온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리고 그 복선들이 서사를 담은 매개체가 되어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네이프 교수의 서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저 스네이프 교수가 해리가 무서워하고 싫어하던 교수였지만 한편으로는 해리를 아꼈던 나쁜 교수였음을 표현하는 대사로 받아들이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주인공 해리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각 인물들의 서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다면, 해리 포터라는 작품 안에는 우리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감동은 해리 포터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모든 순간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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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있는 삶이 아름답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서사가 있다.
문장 그대로다. 모든 사람들에게 서사가 있다. 단지 누군가의 서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저 보이는 대로만 그 사람을 받아들이게 된다. ‘보이는 대로만’ 이라는 어구는 개인적으로 되게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진실됨은 결코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남겨진 서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계속해서 남기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서사가 오직 시각적으로만 담아지지 않는다고 한 것도 관심을 가지는 마음은 시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기록들을 가지고 그 사람의 입장과 상황에 어느 정도 이입을 할 수 있는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날 선 말로 장난을 치는 친구가 있다. 장난이라고 포장을 하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편하게 한다. 장난이라 하는 말들에 내가 반응을 과하게 하는 건가 싶어 애써 웃어넘겨오다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를 받는 것이 쌓이다 보니 점차 그 친구와의 관계 자체가 버겁게 다가왔다.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느끼는 것마저 내 부족함이라 생각이 드는 찰나에 그 친구가 써 놓은 일기를 읽게 되었다. 어쩌다 읽게 된 일기에 자신이 얼마나 주변 친구들을 아끼고, 본인 스스로가 치는 장난을 항상 즐겁게 받아주는 내가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해준다는 글을 보니 조금 다르게 접근을 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치는 날 선 장난들이 이해를 하게 되기는 했지만 잘못이 아니라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내가 조심해 달라고 말을 해도 조심하는 것은 결국 당사자의 몫이기 때문에 상대가 달라지기를 요구하기 어렵다면 내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잠깐 봤던 그 친구의 일기가 그 친구의 서사가 되어주었고, 나는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더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서사를 알아가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직 알아가는 중이다. 그들을 이해해 볼 수 있고, 보이는 모습들이 그렇게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아무리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 사람의 진실됨을 담아내도 결국 사회는 보이는 모습들로 소통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간이기 때문에 모든 순간을 누군가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없지 않은가 싶다가도, 이런 생각 자체가 이미 공감해 보려고 하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많고, 그중 대부분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해리가 바라보던 스네이프 교수였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삶은 과정의 반복이지 결과의 중첩이 아니라고 믿기에 일단 지금 내가 마주하는 순간부터 서사를 알아가고자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