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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일 Aug 31. 2022

캐나다에서

생일을 맞이하다


2014년 8월 4일



부푼 기대를 안고 나는 캐나다로 간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호주를 다녀온 이후로 얼마 만에 바다를 건너가는 것인가! 너무 기대가 되고 설렌다. 내 옆에 앉아있는 친구는 비행기에서 신라면을 먹을 수 있는 만큼 다 먹겠다는데 벌써부터 부끄럽지만 참고 가보겠다. 나는 땅콩을 다 먹을 거니까! 



_




캐나다를 가는 비행기 안에서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썼던 어린 시절 나의 일기의 일부분이다. 


이모가 살고 계신 호주를 3번 정도 다녀오고 나는 커서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살겠다고 다짐한 뒤로 5년 만에 출국하는 비행기에 탔으니 얼마나 기대가 컸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대형 캐리어를 밀고 달리다 그 위에 올라탈 생각으로 점프를 했는데 앞으로 고꾸라져서 부모님께 가는 날까지 걱정을 안겨드렸던 내 모습은 지금도 가족 식사시간에 종종 우스갯소리로 나온다. 




감사하게도 나는 캐나다에서 금방 적응을 하며 살았다. 같이 룸메이트로 배정받은 친구도 영어를 워낙 잘했고 북미 문화권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호스트 분(John&Linda)들도 우리를 친아들처럼 아껴 주셨다. Salmon Arm이라는 지역에서 살았는데 그 지역의 모양이 마치 연어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지역 명칭이 붙여진 연유가 역사적이거나 정치적인 요소 없이 물고기 모양대로 붙여진 사실은 내가 이 지역에 정을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한강보다 폭이 넓은 호수를 끼고 넓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때의 내가 더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물론 그때의 나도 나 나름대로 행복을 찾고 누렸겠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목도하는 것이 마음에 이리도 큰 평안을 가져다주는지 몰랐었다. 이런 소소한 아쉬움마저도 내가 캐나다에서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해주니 캐나다에서의 나날들이 내 삶에 얼마나 힘이 되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캐나다 집 앞 전경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캐나다에 발을 디딘지 어언 한 달이 되어갈 때가 되니 잊고 있던 나의 생일이 찾아왔다. 




유독 날씨가 좋은 주말 아침이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달력을 넘겼는데 아무 생각 없이 넘기던 달력의 날짜를 봤을 때 내 생일인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생일에 대한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축하해 주는 일은 내게 너무 즐거운데 무슨 이유인지 축하받는 것은 어색하다. John과 Linda도 내 생일을 모르실 것 같고 룸메이트도 만난 지 이제 1년 조금 넘은 사이기 때문에 모르겠지 하는 마음에 편하게 지나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주말마다 각자 맡은 집안일을 했고 그날은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그러다 John이 나와 룸메이트에게 오늘 손님들이 많이 오시니까 마당에 있는 낙엽을 쓸어줄 수 있냐고 하셨는데, 어렸을 적 영어 유치원에서 그림으로나 공부했던 raking the leaves를 드디어 해보는구나 싶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갈고리 달린 빗자루를 들고나갔던 기억이 있다. 



낙엽을 쓸기 시작한 지 5분 정도 지났었나 갑자기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낙엽이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날아갔다. 이 정도 일은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5분 뒤, 다시 10분 뒤, 다시 5분 뒤 낙엽이 바람에 의해 원위치로 날아갔다. 조금씩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불평의 요정님께서 등장하시려고 했다. 



이럴 거면 낙엽을 왜 쓸지? 


아니 바람 불어서 날아가면 차라리 안 쓸고 바람이 쓸어주길 바라는 게 빠르지 않을까? 



온갖 생각이 들다가 마지막에는 이런 질문이 들었다. 



아니 생일날 밑 빠진 독처럼 낙엽 쓸고 있는 게 맞나?



생일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생일날 부정적인 마음이 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일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나서 갑자기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_

2014.08.30 


~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을 했다. 생일을 내가 왜 축하받아야 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태어난 일이 그리도 축하받을 일인가? 고생은 부모님이 다 하셨는데 나는 뱃속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축하를 받을 자격을 가지게 된다. 나는 남의 생일을 축하해 줄 때 어떤 마음인가. 분명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데 반대로 나는 왜 축하받는 것을 어색하는가. 누군가 내 생일을 기억해 주면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은 들지만 축하해 주는 사람이 혹여 나의 반응에서 진심을 느끼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도 있겠다. 그리고 내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축하받는 것을 어색해 하지만 그래도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어색함과 드는 걱정들은 내가 당연히 축하받겠지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생긴 마음일 수도 있다. 


~


_

그날 일기에 다소 난잡하게 나의 생각을 적어서 나름 해독을 해야 했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가끔씩 지금의 내가 봐도 생각이 깊고 복잡했던 순간들이 있다. 여하튼 그 뒤로 나는 낙엽을 계속 쓸었는데 풀리지 않는 생각을 시작한 탓인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쓸었다. 바람이 불던,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던 주변 의식 전혀 하지 않고 계속 쓸었다. 그러다 손님들을 맞이하던 John이 나와 룸메이트를 덱으로 불렀다. 저녁을 먹는가 보다 하고 덱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손님 중 한 분이 큰 목소리로 ‘Happy Birthday Peter!’이라고 외치더니 그곳에 계신 분들이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내가 걱정한 그 순간이 찾아왔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시니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하는 것이 가장 예의 바르고 감사하는 것처럼 보일까 회로를 돌리는데 갑자기 손님들끼리 4중 화음을 쌓으시며 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너무나 아름다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셨다. 정말이지 지금도 그렇게 강렬하면서 마음을 울리는 노래는 찾기 쉽지 않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 Linda가 집 안에서 예쁜 컵케이크를 가지고 나오며 내게 축하의 말을 건네주었다. 내 생일을 알고 계셨다. 




축하를 받고 저녁 식사를 시작하다 문득 하늘을 다시 봤는데 비가 그치니 하늘이 개면서 무지개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쌍무지개였다. 난생처음 들어본 4중주 하모니의 생일 축하 노래와 난생처음 본 쌍무지개를 보니 난생처음으로 생일도 나름 특별한 날이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이, 생일을 처음부터 내가 축하를 받는 날이라 생각 말고 내가 특별히 더 감사하는 날이라 여기기로 했다. 내가 태어난 것 감사, 부모님의 아들인 것 감사, 축하를 받을 수 있어 감사, 그리고 지금 내가 지구 반대편 캐나다에 와 있는 것 감사. 감사하며 사는 게 정말 어렵고 특히 마음이 좁은 나는 감사를 더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1년에 한 번이라도 감사하자라는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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