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열, <기다림> / 패닉, <기다리다>
<기다림> -이승열
미칠 것 같아 기다림 내게 아직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 니가 미웠어
참을 수밖에 내게 주어진 다른 길 없어
속삭여 불러보는 네 이름
어두운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부서진 조각배 위에
누윈 내 작은 몸
언젠가 그대가 날 아무 말 없이 안아 주겠죠
그 품 안에 아주 오래도록
나에게 지워진 시간의 무게가
견디기 힘이 들도록 쌓여간다 해도
언젠가 그대가 날 아무 말 없이 안아 주겠죠
그댄 나를 아무 말 없이 안아 주겠죠
그 품 안에 아주 오래도록
이승열의 <기다림>은 2003년에 발매된 이승열 1집 <이날, 이때, 이즈음에....>에 6번째 수록곡. 같은 해에 개봉한 이언희 감독의 영화 <... ing>의 뮤직비디오 OST 로도 사용됐다. 내가 좋아하는 임수정과 김래원이 주연이라 나름 흑심(?)을 품고 봤던 영환데 예상보다 진한 여운이 남아서 당황했던. 영화를 보면서 슬쩍슬쩍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장애를 가졌지만 티 없이 맑은, 로맨스를 꿈꾸는 여고생 민아(임수정)와 그 아래층에 사는 사진전공 대학생 영재(김래원)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잔잔한 멜로드라마. 민아의 엄마 역을 맡은 배우 이미숙과 당시 신예였던 임수정, 김래원의 탄탄한 연기를 바탕으로 한 수작이지만, 제작사의 홍보 실패인지 당시 굉장한 블록버스터 때문인지 알게 모르게 묻혔다. (이런 영화가 한둘이겠냐 만은)
영화 개봉 당시 <<씨네 21>>에서는, 이언희 감독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언희 감독에게는 허진호나 이정향의 뒤를 이을 만한 감성 멜로 전문 감독의 자질이 엿보인다. 단선적인 줄거리와 최소한의 배역진으로 지루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서서히 고조시켜가는 솜씨가 녹록하지 않다.>
- <<씨네 21>>, 2003.11.19
다음은 <<동아일보>>의 2003.11.25 기사.
<‘…ing(아이엔지)’는 진부한 듯 익숙하지만 아주 특별한 색깔이 묻어나는 영화다.>
이런 평가를 들을 정도로 괜찮은 멜로 영화였으므로, 잊혀지게 하는 것이 싫어서 소개 좀 해봤다. 흠흠.
다시 노래 이야기. 이승열은 tvN 드라마 <미생>의 OST에도 참여했던 실력파 싱어송라이터이자 록 음악가이다. 그 외 영화 <얼굴 없는 미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시그널> 등 꽤 흥행한 작품들의 OST 작업을 맡았는데, 이승열의 공이 일부는 들어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영상 작품에서 비중으로 따지면 사운드가 2/3, 오버하면 반은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영화 <<... ing>>를 보다가 <기다림>이란 노래를 듣고서야 이승열을 알게 됐지만, 찾아보니 상당한 내공이 있으신 분이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션 중 한 사람. 2008년과 2012년에 한국 대중음악상을 수상하고, 한국 100대 음반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최고의 음악성을 가졌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다. 보컬로서 목소리가 상당히 좋은 가수다.>
구글 검색 결과, 현재는 이렇게 나무 위키에 나와 있다.. 짝짝짝!!!
뉴욕주립대 빙햄튼 대학교 예술사학과 재학 중에 기타리스트 방준석을 만나 1994년 유앤미블루 1집 앨범 <<Nothing'S Good Enough>>을 낸다. 1집은 세련된 모던록 사운드로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음반이었지만, 시대를 앞서가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저주받은 걸작의 반열에 들고 말았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
정말 실력 있는 뮤지션인데 대중성까지는 겸비하지 못해서 앨범을 내도 묻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수많은 사례에 비해 토이의 유희열 옹은 실력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희귀 케이스. 존경합니다^^
실력으로 따지면 이 정도의 설명으로 충분하리라 믿는다. 이 노래를 한 번만 들어봐도 다 아시겠지만, 부드럽고 감미로운 피아노 음에 못지않은 이승열의 안정감 있는 저음과 흔들리지 않는 고음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1도 없던 감성이라도 그 보이스에 촉촉하게 젖어 들어 충만하게 하는 타고난 재주를 가진 아티스트다. 신이 내린 목소리는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개인적으로 이승열 씨가 2011년 3집 앨범 발매 기념으로 서강대 메리홀에서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매주 그곳 앞을 지났지만 가보지는 못했던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다. 다시 콘서트를 하신다면 기꺼이!!!)
미칠 것 같아 기다림 내게 아직도 어려워
보이지 않는 니가 미웠어
참을 수밖에 내게 주어진 다른 길 없어
속삭여 불러보는 네 이름
누군가를 기한 없이 기다리는 일은 정말 미칠 것 같은 일이 아닐까. 사랑하다가 그리워하다가 결국 미워하기까지 하게 되는... 주어진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네 이름을 속삭여 불러보는 수밖에 없다.
어두운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부서진 조각배 위에
누윈 내 작은 몸
언젠가 그대가 날 아무 말 없이 안아 주겠죠
그 품 안에 아주 오래도록
가사를 누가 쓰셨을까. 이런 시적 표현들 아주 좋다. ‘어두운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부서진 조각배 위에 누윈 내 작은 몸’. 기다리다 지치고 외로움에 사무쳤다는 것을 이런 가사로 승화시키다니. 이런 괴로움과 슬픔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건,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 따뜻한 품 안에 아주 오래도록 안아달라고.
영화 <<…ing>>의 제목 자체가 이미 지금 상황은 곧 추억이 될 것이란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서 추억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 민아가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한 방울 또르르 흘리는 모습 위로 <기다림>의 첫 반주와 이승열의 보이스가 겹쳐지는데, 내 마음속에 저장하고 싶은 이 영화의 압권. 임수정 씨 이렇게 예뻐도 되는 겁니까? 예?
+
이승열 <기다림>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는 패닉의 <기다리다>.
<기다리다> -패닉
널 기다리다 혼자 생각했어
떠나간 넌 지금 너무 아파 다시
내게로 돌아올 길 위에 울고 있다고
*널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어
어느 날 하늘이 밝아지면
마치 떠났던 날처럼
가만히 너는 내게 오겠지
내 앞에 있는 너
네가 다시 나를 볼 순 없을까
너의 두 눈 속에 나는 없고
익숙해진 손짓과 앙금 같은 미소만
희미하게 남아서 나를 울게 하지만
너는 다시 내게 돌아올 거야
너의 맘이 다시 날 부르면
주저 말고 돌아와
네 눈앞에 내 안으로 (예전처럼)
널 안아줄 테니*
**
1995년 발매된 패닉의 정규 1집 앨범 <<PANIC>>의 수록곡. <왼손잡이>, <달팽이> 등 패닉의 대표곡들에 가려져 아는 사람만 안다는 그 노래. 그룹 ‘패닉’에 대해서는 이미 앞서 쓴 글에 긱스, <짝사랑>을 소개하며 하고 싶은 말은 다했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다.
마치 가을밤 뚱기당 땅땅 거리는 조곤조곤한 기타 사운드를 듣는 것 같은 느낌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 패닉의 메인 보컬(보컬 1, 래퍼 1 뿐이지만) 이적이 솔로로 불렀다. 그가 1집 히트곡 <달팽이>에서 분위기 잡기 충분한 감성 뿜뿜 매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기다리다>에서는 사랑했던 여인을 사모함으로 기다리는 순정파로 변신하여 달달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적 특유의 내지르는 창법과 사회 반항적인(?) 보이스도 맘에 들지만, 이렇게 가끔씩 훅 치고 들어오는 발라드 감성을 보여줄 때... 정말 만족스럽다. <기다리다>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어지럽고 머리가 복잡할 때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해야 하나... 이런 노래가 나에게 몇 곡 있는데, 그중 상위 랭킹 하나인 노래다.
널 기다리다 혼자 생각했어
떠나간 넌 지금 너무 아파 다시
내게로 돌아올 길 위에 울고 있다고
널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어
어느 날 하늘이 밝아지면
마치 떠났던 날처럼
가만히 너는 내게 오겠지
내 앞에 있는 너
내가 이렇게 아픈데, 넌 어떨까. 넌 더 아프겠지? 나에게 돌아오는 길 위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고 있을 거야. 그런 너를 기다리면, 가만히 찾아올 거야. 나는 곧.. 내 앞에 있는 너를 보게 되겠지.
네가 다시 나를 볼 순 없을까
너의 두 눈 속에 나는 없고
익숙해진 손짓과 앙금 같은 미소만
희미하게 남아서 나를 울게 하지만
익숙해진 손짓, 앙금 같은 미소란 어떤 걸까. 너를 아는 나여야만 알 수 있는 우리만의 언어, 기호, 비밀...
그런데 여기서 기가 막힌 리듬감을 찾아볼 수 있다.
<익숙해진 손짓과/ 앙금 같은 미소만/ 희미하게 남아서/ 나를 울게 하지만>
7.7.7.7 일곱 글자의 마법. 이건 뭐, 7.5조 운율보다 더 기가 막힌 가사의 리듬이 아닌가. 랩 가사를 쓰셔도 정말 환상일 듯.
너는 다시 내게 돌아올 거야
너의 맘이 다시 날 부르면
주저 말고 돌아와
네 눈앞에 내 안으로 (예전처럼)
널 안아줄 테니
다시 내게 돌아올 거라고, 마음이 당기면 주저 말고 돌아오라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다짐을 하면서... 당신을 기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