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도 / 이문재

내가 애정하는 시 18

by 유작가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기도를 하는 데 정해진 규칙이나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두 손을 맞잡고 가슴 앞에 모으고, 가만히 속에서 하고 싶던 말들을 하는 것도 기도다. 꼭 신의 존재를 믿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위기와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테고, 그때 내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간절히 무언가를 비는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람은 강한 것 같아도 생각보다 약하다.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는 『시와 사상』2008년 가을호에서 처음 발표됐고, 2014년에 발간한 문학동네 시인선 <<지금 여기가 맨 앞>>에 수록되어 있다.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는 순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되살려 기억하는 순간, 음식을 오래 씹으며 생각에 잠기고, 아이와 눈을 맞추는 순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왜냐하면 그런 순간마다 내 마음에서 일렁이는 생각이 나의 영혼과 대화하고, 아무도 침범할 수 없고 오로지 '나'만 아는 나의 세계를... 즉시 공유하듯이 알아차리고 듣고 있을 절대자가 있다는 가정하에, 내가 잠기는 생각들은 모두 기도가 되는 것이다.



강과 바다의 발원지는 어디일지, 떨어지는 별똥별을 맨 처음에 만든 이는 누구인지, 나는 늘 혼자 같지만 원래 혼자가 아니고, 죽음은 늘 나와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에 대해 인식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 가끔씩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볼 때도 나는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그래서 호흡이고 대화다. 살아있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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