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정하는 시 17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얼마 전에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시집 읽기'라고 대답했다. 취미가 독서였다가, 음악 감상이었다가, 축구였다가, 된장찌개 끓이기였다가 다양한 나만의 취미 변천사가 있지만 최신은 시집이다.
교보문고에 가서 시집을 읽는 것이 나에게 엄청난 힐링이 되는 일인데,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요즘 같이 다양한 맛과, 감각과,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생각해보면 정말 고상한 취미다.
문학의 꽃이라고 하는 '시'는 솔직히 말하면 밥 벌어먹기 어려운 학문이다. 그래서 더 이 길을 가는 분들이 대단하고 멋져 보인다. 누군가 나에게 '시인'으로만 살아갈 수 있냐고 물어보면, 과연 그럴 용기가 있을지 생각하면 작아진다. 시인이라고 글 쓰며 이슬만 먹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까. 애초에 문학의 목적 자체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시인으로 살기를 마음먹는 순간부터 배고픔은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를 처음 읽은 순간, 더욱 시인에 대한 존경심과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 시가 사람들에게 주는 환기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변변치 않은 재능으로 글 쓰는 일을 통해 밥을 벌어먹고 사는 나로서는, 이런 신성한 글을 읽을 때마다 죄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가짜 글이 아니라 진짜 글을 쓰면서 살겠다는 약간의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시를 읽음으로써 잔재주로 또는 상업적인 글쓰기에 찌든 내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시는 함민복 시인의 1999년 창비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서 발표된 시다. 당시에는 시 한 편에 3만 원, 시집 한 권에 3천 원이었던 건가. (처음 산 시집이 7천 원이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시가 박리로 팔리는 것이 시인으로서는 슬픈 일이지만, 그 시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국밥처럼 마음을 덥혀주는 일을 했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스스로 돌아보는 겸허한 사람. 시집 한 권이 팔리면 삼 백원이 돌아오는데, 그 돈으로 음식 맛을 고르게 하고 맛깔나게 하는 소금 한 됫박을 살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을 치환할 때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이 하나도 없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시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생각, 묵상, 시야, 돌아봄 등이 선택된 시어를 통해 투명하게 드러난다. 거짓으로는 시를 쓸 수 없다. 시는 단순하고 간결해야 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에 비해 나의 글은 어떤가. 아직도 너무 복잡하고 설명이 많고 뭉뚱그려지지 않았나. 아직 갈 길이 먼 나를 돌아본다. 더 잘 쓰고 싶다. 내 글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위로가 되었다면 그날 밥값은 한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