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정하는 시 16
편지
김남조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 준 이가 없었다
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
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 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 나의 시작이다
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
한 구절을 쓰면 한 구절을 와서 읽는 그대,
그래서 이 편지는 한 번도 부치지 않는다
<편지>라는 제목을 가진 시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아니면 내 눈에 잘 띄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황동규에 이어 오늘은 김남조 시인의 시를 소개한다.
김남조 시인은 1927년 경북 출생으로, 1960년대 대표 여류시인이다. 이름만 들었을 땐 시인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잘 모르다가 시를 읽다가 느끼게 됐던 것 같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영롱한 거울', '글썽이는 눈매'라는 표현들을 보면서 시어를 고르는 세심함과 감수성, 한 번도 부치지 못한 편지를 '그대'에게 쓰는 일을 매일 하는 시인.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외롭게 하는 '당신'이기 때문에, 매일 마음을 다해 글을 쓴 게 아닐까.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없이는 글도 쓸 수 없다. 글은 결국 마음이고 정성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내 취미는 편지 쓰기였다. 토요일이면 대형 문방구에 가서 알록달록 색이 예쁘거나 그림이 예쁜 편지지를 사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줬다. 편지를 통해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학교에서 미처 못다 한 말을 쓰기도 하고, 깊은 속마음에 대해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말보다는 글이 나에게 더 편하다. 친구들에게 받은 답장을 모아둔 박스가 족히 3-4통은 됐던 것 같다. '편지'들이 나의 보물 1호였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크고, 단단하고, 비싼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를 볼 때
‘변한 건 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또 씁쓸해진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면, 정직해진다. 거짓으로 대하기 싫고 나의 진심을 다해서 만나고 싶어 진다. 시인이 말한 대로, 내 안을 비추는 영롱한 거울처럼..얼굴과 얼굴이 맞대어 있을 때, 눈빛을 주고받을 때, 나의 시답지 않은 말 한마디에도 까르르 웃는 당신의 모습을 볼 때 내 마음도 맑게 비친다. 그렇게 서로의 밑바닥까지 알아갔을 때, 그제야 나는 글썽이는 눈매를 보이고 본격적으로 사랑할 '시작'을 한다.
시대가 변해서 지금은 손편지를 나누는 일은 많지 않지만, 문자나 메신저로도 마음은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손으로 쓴 연애편지가 없어지는 건 나도 원하지 않지만. 굳이 편지를 부치지 않아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구절을 마음에 쓰고 있는지 읽어내는 사람. 그렇게 평생 나를 읽어 줄 눈을 가진 사람. 편지를 쓰고 싶은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