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은 날리고 봄꽃은 떨어진다.
벚꽃 잎은 날리고 목련꽃은 짓이겨져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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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이야
Apr 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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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은 날리고 봄꽃은 떨어진다.
날리는 벚꽃 잎은 내 머리 위로 우아한 나비 떼처럼 날리고
떨어진 목련잎은 내 발 밑에서 힘 없이 짓이겨지고 있다.
목련의 화려함을 좋아하지만 떨어진 후에 너무 추해서 싫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봄밤,
어둠 속에서 하얗게 기품을 뽐내어 그냥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들던 목련의 존재감.
그 뽀얀 빛을 잃고 누레지고 바래진 채로 사람들 발길에 차이는 걸 보니
능욕을 당하는 듯한 느낌에 차마 제대로 볼 수 없다.
어젯밤 황홀하게 만들었던 그런 존재가 이렇게 땅에 떨어져 뒹군다.
피해서 가려해도 밟히는 목련꽃잎, 미끄덩 느낌이 나니 하얗던 표면은
곧 짓이겨져 색이 바랜다. 상처를 낸 것이 못내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어제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재작년 직장암 판명을 받고 서울로 오셔서 수술을 하셨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그때에.
모든 상황들이 만만치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잘 끝내고 지금은 집에 계신다.
너무 감사한 일들이다.
내 나름의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했다.
간사한 것이 사람마음이던가. 아빠가 괜찮으시고 엄마랑 두 분이 잘 지내시니
매일 하던
전화가 이틀, 일주일... 이제는 한 달에 몇 번으로 줄어들었다.
아빠가 아프시고 병간호와 돌보는 모든 일들이 주어졌을 때,
태생이 막내로 살던 내게 많은 책임이 갑자기 지워졌을 때. 몹시도 힘들고 힘들던 그때.
그즈음에 나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유순하고 순종적이었던 나는 주장이 강하지 않았다.
너무나 버겁던 상황을 보내고 삶을 내가 주인 되어 꾸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여태껏 큰 변화 없던 생활에도 변화가 많이 생긴지라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냥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내가 꿈꾸는 대로 살아내리라 의욕에 차다가도
체력적으로도 마음의 에너지도 순식간에 소진되어 꼬꾸라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한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
"아고, 우리 딸 목소리 오랜만이네."
전화가 좀 뜸 했다 하면 나오는 단골 멘트. 한껏 목소리를 높여 최대한 밝게 얘기한다.
"아빠!! 뭐 하고 있었어?", "아빠~식사는?"
늘 비슷한 얘기밖에 없는 통화다. 그럼 아빠는 뭘 드셨는지. 어젠 배가 아프셨다던가.
배변활동이 어떠셨다던가. 아주 자세하고 세세한 얘기들을 하신다.
오늘은 평소랑 다른 얘깃거리가 있나 보다.
내가 어릴 적, 그러니까 아빠가 젊었을 때 살았던 동네를 다녀오셨다 했다.
작은 시골도시 안이라 거리적으로는 멀지 않다.
하지만 예전 동네를 가는 것은 쉽지 않은데
다녀오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내가 알던 이름들이 나왔다. 어릴 적 동네친구들의 아빠, 엄마들이다.
윤 씨 아저씨가 죽었단다.
동네 반장이던 아저씨는 내 머릿속엔 어렸을 때 봤던 40대 아저씨 모습 그대로인데.
그 앞 사진관집은 두 내외가 요양원에서 생활한단다.
내가 모르는 이름들도 꺼내며 그 윗집 그 사람도 죽고...
의외로 나는 덤덤했다. "그분들은 아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지 않아?"
아빠 나이가 75세이니 알던 분들이 다 세상을 등지거나, 아프시거나 그럴 테다.
아빠 목소리는 축축하지 않았고 오히려 낮고 건조했다.
추억으로 남긴 한 장면에 있던 사람들이 다 사라지는 느낌을, 나는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느낌을, 나는 아직 모른다.
아빠가 암판정을 받고 서울에 오시기 전에 매일 내게 전화를 하셨다.
수술이 다가올수록 아빠는 전화를 해서는 그렇게 우셨다.
너무 무섭다고...
처음엔 마음이 아파 같이 울고 아빠를 안심시켜 드리고 싶어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랬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너무 무서운 것이 어느 순간부터 아빠에게 왜 우냐고!! 막 다그쳤다.
씩씩해야지 뭔 그런 생각만 하고 있냐고.
아빠가 더 약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움 조금에
나도 점점 상황이 버거워진 것이 아주 큰 이유였다.
동네 사람들의 소식을 전하는 아빠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보려는데 내 생활에 지친 상황이라 극 F인 내가 세상 냉정해져서 아무런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아빠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땅도 많고 재산도 많은 사람이. 그냥 제일병원을 갔단다. 그래서 안되니 한마음병원을 갔다가.."
작은 시골 동네 병원을 전전하다가 뒤늦게 조금 큰 병원으로 갔는데 손을 쓸 수 없었단 말씀이셨다.
"돈 많고 재산 많으면 뭐하노. 나는 딸이 서울에 있어서 바로 서울대 병원 가서 이래 치료받고 병원에서도 딸이 알아서 이리 종종 저리 종종 뛰어다니면서 다 알아서 해주고, 니 덕이 크다."
"딸이 살맀다. 고맙다이~ 아빠가 죽어서도 니 잘 되라고 빌어줄끼다."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순식간에 아빠에게서 나왔다.
전화를 자주 하지도 못하지만 늘 신경 쓰이고 더 챙기지 못하는 자책감이 항상 있다.
자격지심에 한순간 소용돌이쳐 일어났다.
"뭔 소리야 아빠!!"
"그런 말 다시 못할까 봐, 생각날 때 한다고 전화했다. 이제 끊어라."
꽃이 지고 젊었던 날들도 진다.
내 마음속에는 떨어져 버린 목련 꽃잎만 가득해서 자꾸자꾸 가라앉는데
흩날리는 벚꽃 잎은 너무도 가벼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그렇게 올해 봄은 꽃이 피고 꽃이 지고 꽃은 떨어지고 꽃은 날리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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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Brunch Book
일단 시작하는, 4월 이야기
04
투명한 컵 속에 무엇을 채웠나요?
05
집 나간 생각을 찾습니다.
06
봄꽃은 날리고 봄꽃은 떨어진다.
07
브런치 100일
08
애쓰는 마음, 愛쓰는 마음
일단 시작하는, 4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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