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는 복도가 길게 느껴졌다. 편하게 마음먹자 다짐했지만 심장이 마구 요동친다. 부모님은 나의 손을 잡고 걱정 말라며 위로해 주신다. 길고 긴 수술이 드디어 끝났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맘처럼 호흡이 따라주지 않는다. 오른쪽 갈비뼈 아래 복부에는 큰 호스 2개가 연결되어 있어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 부모님은 회복실에 누워있는 나의 뺨을 톡톡 치며 연신 부르신다. “잠들면 안 돼. 일어나 00야.” 그 옆에서 고모는 울고 계신다. ‘저 괜찮아요...’ 입으로만 맴돌 뿐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폐 혈종(신체 내부에서 발생한 출혈로 혈액이 한 곳에 고여 형성된 혈액 덩어리) 제거 수술을 했다. 폐와 갈비뼈 사이 숨통을 조이고 있던 혈액 덩어리. 크기가 꽤 큰 혈종이다. 등 일부를 35cm 절개했다. 그 후 또 한 번의 작을 수술. 나의 몸 이력서에 수술 훈장 2개가 남았다. 두 번의 수술 후유증이었을까? 현재 난치성 질환 섬유근육통 (근육, 관절, 인대, 힘줄 등 연부조직에 만성적인 통증을 일으키는 증후군) 투병 중이다.
큰 가방을 어깨에 메고 미로 같은 동대문 새벽시장을 돌고 있다. ‘어떤 옷을 구입해야 하지?’ 현기증이 난다. 야식으로 먹었던 국수가 체한 것 같다. 화장실로 달려가 내 위장에 있는 물까지 쏟아냈다.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을 잃고, 아무런 준비 없이 뛰어든 장사.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 지금 나는 두렵고 무섭다. 힘을 내야 한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들 얼굴이 떠오른다. 눈물이 더 거세게 나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내가 과연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막막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렸다.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건강 문제로 일 년 만에 가게를 폐업했다.
새벽 4시경 간호사가 달려와 대상포진으로 입원해 있는 나를 깨운다.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이던 딸아이가 갑자기 경련을 하고,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져 기관 삽관(기도 확보 및 유지를 위하여 코나 입을 통해 관을 넣거나 기관 절개술을 하여 기관 내에 관을 넣는 일) 후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단다. 급히 달려갔지만 딸아이 병실에는 들어갈 수 없다. 공기 감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딸과 격리 중이다. 간호사들은 딸아이 이름을 부르며 깨우지만 말이 없다. 관을 넣기 위해 입을 힘껏 벌리고, 반복적으로 관을 밀어 넣는 시도를 한다. 안타깝게도 앙 다문 입은 잘 열리지 않는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어렵게 관을 넣었다. 딸아이 입 주위에 피가 보인다. 사투를 벌인 흔적을 보니 암담했다. 조용한 새벽 다른 병실에는 환자들이 잠들어있다. 제정신이 아닌 나는 미친 듯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엄마 목소리 들리지? 엄마 보이지? 엄마 여기 있어. 제발...” 딸은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있지만, 함께 갈 수 없다. 순간 나는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심정이다. 숨통이 조여와 주먹으로 가슴을 마구 때리며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도 평범한 일상조차 험난한 산을 오르듯 도전의 연속이다. 밥상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간단한 빨래마저 힘에 부친다.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닥에 대자로 뻗게 만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마음속으로 ‘도전’을 외치고 다시 일어나 일을 계속한다. 그러다 힘들면 또다시 대자로 뻗어 휴식하기를 반복하는 날이 많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거북이처럼 느리긴 해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삶이 평범하지 않았지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을 통해 절망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생각으로 두려움에 떨었던 시간들도 많았다. 지금은 그 두려움에 나를 가두지 않는다. 이제 나의 마음 근육은 단단해졌다.
아파도 웃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지금 일어난 사건을 하향해서 상상해 보는 방식이다. ‘만일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 이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다행이다,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야.’ 과거에는 미처 몰랐던 감사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늦게 깨달았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면 웃을 수 있다. 지금 난 살아있다. 딸과 나는 소중한 삶을 다시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하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체험했기에 나의 현실이 꿈만 같다. 앞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기회다. 지금도 새로운 기회들을 맘껏 누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