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조급함을 덜어내자
세상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1월생 아들이 만 5세 되던 해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나왔다. 나는 유예 신청을 하고 1년 뒤 초등학교에 보냈다. 유예 신청을 하게 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좀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공부에 매여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학교를 일찍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은 나의 일방적인 생각이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아이는 3세까지 엄마만 찾는 분리불안이 있었다. 사회성을 키워주겠다며 5세에 유치원을 보냈다. 아침마다 등교하기 싫은 아이를 억지로 유치원 버스에 태우는 나의 마음이 무거웠다. 이렇게 까지 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나? 혼란스러움에 아이가 하원할 때까지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아이는 서서히 적응해 갔고 그때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내 아이의 같은 반 또래 1월생 A양이 있었다. 유치원 적응도 잘하고 항상 밝은 얼굴로 등교하는 A양을 바라보며 아이의 엄마도 흐뭇해했다. 수료식이 다가오는 어느 겨울 A양 엄마는 유치원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점심시간과 겹치게 되어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몰래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A양 엄마는 유치원 식당으로 향했고 B라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B라는 아이가 바지에 소변을 봤다는 이유로 벌을 서고 있었는데 그 벌은 나로서도 이해할 수 체벌이었다. 벌을 서고 있던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벌을 주던 선생님은 몹시 당황했다. 선생님은 바로 A양과 내 아이의 담당 선생님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A양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아이는 물론 모든 아이들을 걱정했다. 왜 그냥 왔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충격이 가시지 않은 그 엄마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사건 이후 담당 선생님은 B라는 아이 부모에게 깊이 용서를 했고 아이 부모는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으로 알고 있다. A양은 5세 수료 후 7세 반에 들어갔다. 취학준비를 위한 선택이라 했다.
아이들이 바지에 실수를 하는 것은 체벌 대상이 아니다. 실수를 하는 이유를 먼저 헤아려주는 것이 부모와 선생님 몫이다. 심리적인 부분도 있을 테고 학원이나 유치원의 취약함이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화장실은 아이들이 언제든 필요할 때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공예 강사 10년 활동한 나의 경험으로 본다면 아이들이 바지에 실수를 하는 것은 어쩜 일상 일 수 있다. 나이가 적은 아이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실수한 아이 자신이 더 놀랐을 그 마음부터 안아주시길.
그 유치원은 우리 딸이 1회 졸업생이었고 규모가 꽤 크고 고급진(?) 사립유치원이었다. 딸이 살아오면서 행복한 시간 중 한 부분을 차지할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작은 아이도 딸의 행복한 모습을 생각하며 선택했던 유치원이었는데 썩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유치원 5세 반 수료를 마치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연상되는 미술학원에 보내게 되었다. 총 인원 30명도 되지 않는 아담한 학원이다. 선생님은 세 분. 부부 선생님 두 분이 운영하는 학원이었고 식사와 간식을 책임지는 선생님은 부부 선생님의 어머니가 담당하고 계셨다. 평소 입이 짧은 아이가 항상 반찬이 맛있다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선생님이 바로 부부 선생님 어머니셨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따뜻해지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유치원 때와는 매우 다른 행동을 보였다. 아침이 되면 등교 시간이 멀었음에도 미리 가방을 메고 베란다로 뛰어가 학원 차가 오는지 눈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으면 저럴까 싶어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1년을 행복하게 보냈는데 정원 미달로 폐원했다. 아이도 나도 무척 안타까웠다. 그 무렵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날아왔다. 나는 유예 신청을 하고 아이를 국공립 유치원에 보냈다.
입학 유예 신청을 하겠다는 나에게 A양 엄마를 비롯해 주위 엄마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키도 크고 리더십도 있고 부족한 곳도 없는 아이를 왜 유예 신청하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평소 학원도 보내지 않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나는 주위 엄마들 사이에서 시대에 뒤처지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갔다. 차가운 시선과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주관과 소신을 지켜나갔고 엄마들 무리에 합류하지 않았다. A양은 그 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내 아이는 국공립 유치원에 입학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A양 엄마의 침울한 모습을 보았다. 엄마가 보는 A양은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다. 하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그런 딸을 안타깝게 여겼다. A양은 학업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였다. 그때서야 후회가 된단다. 조기입학 반대했던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마도 이후 잘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 잠시 적응하지 못한 시기는 있었지만 A양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엄마의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지면서 아이도 점차 안정을 찾아갔으리라 믿는다.
유치원을 졸업한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 스스로 알림장을 보고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는 야무진 아이가 되었다. 약자인 아이들을 돕고 강자로부터 보호해 주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기까지 했다. 아들은 말한다. 그땐 어려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엄마의 선택으로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 만족한다고. 또 한 가지 친구들 대부분 같은 해에 태어난 또래라는 점. 일부 사람들은 나이에 민감하다. ‘빠른’, ‘몇 월’. 심지어 ‘며칠’까지 따지는 경우를 봤다. 그 불편함이 없어 좋았다고 한다. 나의 선택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기입학이 오히려 실이 아닌 득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중요한 건 내 아이가 학교라는 치열한 곳에서 무탈하게 지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아이를 볼 때마다 나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추억 속 한 페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