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한결같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의 탈을 벗어던져야만 제대로 된 치료가 시작된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의료인이 아니다. 모든 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적으로 약을 먹었을 때 수많은 부작용과 싸워야 했다.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새로운 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실을 알아도 말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식습관이 다른데 어찌 알 수 있을까. 병원에서 부작용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 명확한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많지 않다. 부작용에 대한 내용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래의 효과보다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역작용에 관한 내용이 훨씬 많다. 읽고 나면 도저히 무섭고 불안해서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지만, 처방이 떨어진 이상 먹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 어쩌라고. 약을 먹어? 말어?
먹고 있는 약을 당장 끊어야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평생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줄여가야 한다. 언젠가는 약과 이별하는 날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자신의 몸에 관심을 기울이고 정성으로 돌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병원과 약에 의지하지 말고 소중한 몸은 자신이 지켜내야 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딸은 살기 위해 스스로 약을 줄여왔다. 갑자기 끊는 일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서서히 줄여가며 약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왔다. 3년 전 한약을 먹고 큰 위기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 중이다. 음식이 약이 된 지 다시 2년.
병원에서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희망이 보이지 않았는데 아니었다. 길은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겁을 먹고 가지 않으려 했던 것뿐이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어 고통이 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은 시작했고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 솔직히 나는 심장이 쪼그라들 때가 가끔 있다. 단순한 통증에도 덜컥 겁이 난다. 그러다가 별거 아닌 증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마음이 고요해진다.
사실 매일 외줄 타기 하는 기분이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의학에 대한 내공이 많은 것도 아닌데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찍는 날도 있다. 건강과 질병에 관한 자료가 담긴 책과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점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의학서적 몇 권 읽었다고 ‘앗싸’를 외칠 만큼 큰 소득은 되지 않더라도, 희망이 보이고 치료에 도움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 번 실패 후 두 번째 시도다. 딸은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