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생겼을 때 말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by 김복아

뉴스를 통해 접하는 우리의 일상은 무서운 사고와 믿기지 않은 사건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리고 사고로 인해 인명피해도 엄청남을 우리의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삶 속에서 나 또한 힘든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오늘 아무 일 없다고 다음날도 무사하다는 보장은 없다.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는 삶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본인의 힘든 속사정을 말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때론 나의 약점이 흠이 될 수도 있고 타인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언젠가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올 수 있어서 힘들어도 안 힘든 척을 하게 된다. 특히 더 많이 가질수록 얼굴에 가면을 쓰고, 행복한 척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모순적인 성향으로 이해하는 것도 나의 정신건강에 좋음을 알 수 있다. 다시 저 질문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과연 몇 명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사실 작년에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6개월 간 아프면서 나에게는 딱 3명 정도 있었다. 한 명은 우울증의 경험이 있었고 같은 직군에 종사했던 친구였다. 이 친구의 도움과 걱정 어린 조언이 나를 한 단계 더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는데 1등 공신한 그녀였다. 그리고 같은 교회를 다녔던 친구였다. 이 친구의 나를 향한 기도는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힘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같이 일했던 상담선생님이다. 상담선생님답게 나의 상태를 진단해주기도 했고,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며 때로는 맛있는 밥도 먹으며 나의 기분이 아주 조금 나아지도록 환기시켜 주었다.


이 시기에 이 세 사람이 없었다면, 우울증을 더 길게 앓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각자도생이 사회에 만연하며 각자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힘들 때는 각자보다는 공동체에 의지해 보는 것도 참 힘이 됨을 작년 6개월 간 느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사회적 관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또 이 가운데 상처를 받지만 때로는 타인의 에너지를 받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나에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거 그 자체만으로 이미 복 받은 인생이지 않을까?'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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