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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복 Mar 13. 2018

#마흔의 오프닝을 쓴다면

아침이면 떠지지 않는 눈으로 주방 라디오를 켠다.

잠을 깨우는 아침 의식 중에 하나로 라디오를 켠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나간다. 

사람들의 아침 풍경들이 비몽사몽간에 귀에서 눈으로 그려진다.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출근을 하거나, 야근하고 퇴근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아이가 태어나거나, 여행을 하거나 이슈가 되는 정치뉴스도 나오고, 팝송이나 가야금 소리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흘러나온다. 

그리고 보통의 라디오들이 어떤 시간의 정시가 되면 방송이 시작한다. 

프로그램을 여는 시그널 음악이 시작을 알리고 그 뒤를 따라 오프닝 멘트가 라디오를 라디오스럽게 했다. 

"오늘을 이렇게 만들어봐요"라고 말하는 것

생각하고 듣지 않으면 흘려들을 수도 있는 말인데, 여는 말이 그날 프로그램의 주제처럼 흘러가는 것을 보며 참 중요하구나 싶었다. 

1분 30분, 혹은 1분

2분도 넘지 않은 짤막한 분량인데 생각의 공들이 매일마다 받아내는 투수처럼 공을 따라 간다. 

"짧은 말인데 참 좋다..."

공허하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지는 문장들. 

흘러가는 문장이 기억나지 않아 녹음으로 적어보기 시작하고, 가끔씩 블로그에 기록해 놓은 것을 다시 읽어보면서 그 안에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엄청난 큰 것을 발견하거나, 절대로 자신이 할 수 없을 것들이 아닌 소소한 마음의 결심, 일상의 발견들..이라는 것을 여러 번 음미하게 했다. 

"오프닝"

오늘 아침도 습관처럼 라디오를 녹음했다. 역시나.. 듣기만 해도 마음을 새롭게 해주는 것 같은 신비다. 

녹음된 오프닝을 열심히 적어볼까 하다가 오늘은 마흔이라는 공책을 펼치고 적어보고 싶었다. 

"무엇을 적어볼까?.."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때때로 방향을 찾아 보고 싶어질 때 다시 열어보면 좋겠다. 

(#1)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어제 어느 tv 프로에서 보니깐요. 80이 넘으신 할머니도 여전히 소녀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나이를 먹은 엄마라도, 마음은 나이 들지 않고 여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이른.. 

때때로 나이는 왜 만들었을까? 생각해봤어요. 나이를 셈하는 건 나이에 따라 할 것들을 하라고 재촉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어느 지점에 서있는지 알면 삶을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라는 말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나이가 아닌 그냥 오늘, 이 날은 나이 마흔의 수요일이 아니라 그냥 수요일일 뿐이니깐요" 

(#2)

올해의 나의 오프닝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글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고 싶어요. 그럴려면 많이 읽어도 보고 미루지 않고 적어 보는 훈련이 필요하겠죠

적어보니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적을 것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글이 삶보다 우선이 아니라 삶이 있어서 글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거든요.오래 우려내어 맛이 베인 것 음식처럼, 삶이 푹 우려난 글들을 적어보고 싶습니다.

(2018년 2월 7일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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