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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도서관으로 퇴근합니다

아이의 눈빛이 책장처럼 펼쳐지는 저녁, 나는 그곳에 있습니다.

by 라이브러리 파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분주해진다.

누군가는 집으로, 또 누군가는 술자리로 발걸음을 옮기겠지만

나는 오늘도 조용히 도서관으로 향한다.

책 한 권이 기다리는 그곳엔

내 아들과 딸, 그리고 작은 기적 같은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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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만난 아들의 한마디


며칠 전, 아들은 ‘왜 사는가’라는 낯설고도 묵직한 제목의 책을 꺼냈다.

살며시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가 물었다.

“아빠, 이거 진짜 어려운 책 아니야?”


“응, 어렵지. 그래서 같이 읽어보자.”


책장을 넘기며 단어 하나하나를 짚어주었고,

그날 밤 우리는 평소보다 더 긴 대화를 나눴다.

잠들기 전,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아빠, 나는 가족이랑 도서관 오는 이 시간이 제일 좋아.”


그 말이 귓가에 오래 머물렀다.

아무 말 없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한 문장이,

지친 하루를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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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그림 속 도서관


딸아이는 책 보다 연필을 먼저 집는다.

도서관 바닥에 살짝 엎드려

작은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가끔은 책을 읽는 척하다가,

몰래 나를 흘끔 바라보며 웃는다.


그날도 딸은 한참을 그리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아빠, 여기 이 사람이 아빠야. 책 읽고 있지?”

그림 속 나는 책을 들고 있었고,

그 옆에 찰싹 붙어 있는 작은 아이가 딸이었다.


“왜 이렇게 가까이 앉아 있어?”

딸은 웃으며 말했다.

“아빠 옆은 조용하고, 따뜻하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마음이 조용히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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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우리 가족의 계절이 머무는 곳

책을 읽는 시간은 단지 지식이 쌓이는 시간이 아니다.

그건 아이와 나 사이,

아빠와 딸 사이,

그리고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다시 삶을 배우고,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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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도서관으로 퇴근합니다


아이들이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때

도서관의 향기, 책장의 소리,

그리고 책을 읽는 아빠의 모습이

기억 한편에 따뜻하게 남아있길 바란다.


책을 읽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도 퇴근합니다.

가장 고요하고, 가장 따뜻한 곳으로.


도서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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