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1화. 하루의 끝, 나는 도서관에서 아빠가 된다〉

퇴근 시간 5시 30분.
회사 앞 사거리를 지나면 대부분의 차는 좌회전을 한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나는 오른쪽 깜빡이를 켠다.

도서관이 있는 길이다.

조금은 낯선 선택일 수 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으로 향하는 대신,
나는 잠깐의 ‘조용한 우회’를 택한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자동문이 열리는 그 순간부터 공기가 바뀐다.
회사의 언어가 아닌, 책의 문장이 나를 맞이한다.
누군가는 이것을 ‘퇴근 후 공부’라 부를지도 모르지만

내게 이 시간은
“아빠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에 가깝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친다.
문장을 따라 읽다 보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서서히 흐릿해진다.

회의 중에 놓친 타이밍,
급하게 답했던 메시지,
아침에 아이와 짧게 나눈 인사.
모든 장면이 지나가듯 스쳐간다.

그렇게 책과 함께 하루를 정리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떠오른다.
“이 이야기는 라운이한테 들려주면 좋겠다.”
“루아는 이 책의 주인공을 좋아할지도 몰라.”
문장 하나, 문단 하나가 내 아이에게로 이어진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된다.
지금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와 더 깊이 연결되기 위해서라는 걸.

예전에는 퇴근 후 TV를 보며 쉬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아이와의 대화에서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어지는 것이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읽고,
그 이야기를 삶으로 들려주고 싶었다.

책을 읽는 아빠.
생각보다 흔치 않다.
하지만 그 모습이 아이에게 주는 인상은 강렬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빠의 ‘습관’을 기억한다.
어릴 적 나는,
책을 읽는 어른의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에게 책은 늘 낯설고 먼 존재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삶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오늘 내가 어떤 말투를 썼는지,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나 자신에게 되묻는 작은 연습들.

책이 묻고, 나는 대답한다.
책이 가르치고, 나는 배우려 한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변해간다.

회사에서는 다 하지 못한 말을
가족에게는 더 따뜻하게 전하려 한다.
급한 마음 대신,
한 문장을 고르고,
그 속에 담긴 삶의 태도를 떠올리며
아이와 마주 앉는다.

책에서 배운 말투와 생각은
고스란히 '아빠의 언어'가 된다.

도서관을 나서는 밤.
차 안엔 책 한 권이,
마음 안엔 오늘의 다짐이 담겨 있다.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이미 잠든 시간이지만,
나는 그 옆에 앉아 책을 한 장 넘긴다.

‘내일은 이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는 오늘도 도서관으로 퇴근했다.
그리고 책 한 권 덕분에
조금 더 괜찮은 아빠가 된 기분이다.

책을 읽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 작가의 말

지금도 도서관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격증 공부를 위해,
누군가는 조용한 위로를 얻기 위해,
그리고 또 어떤 아빠는
자녀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곳을 찾습니다.

나의 퇴근길이 당신에게도 작지만 따뜻한 영감을 주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