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품 가득한 욕망 앞에서 내가 배운 것
맥주 한 잔을 따르고 앉는다.
어느새 익숙해진 밤의 루틴이다.
부드러운 거품이 잔 위에 천천히 올라온다.
내 욕망도, 그랬다. 거품처럼 피어오르고 사라지곤 했다.
나는 한때 외제차를 갖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타고 싶었던’ 게 아니라
‘타는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차가 내 인생을 바꿔줄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시선도, 내 자존감도,
회사에서의 내 입지도 말이다.
마치 외제차를 타면
내 연봉도 갑자기 더 있어 보일 것 같고
퇴근길 신호 대기 중에도 누군가 나를 부러워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매달 자동차 커뮤니티를 들락거렸다.
리스 조건을 계산하고, 옵션 비교표를 밤새도록 들여다보았다.
나는 실은, 그 외제차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게 아니다.
그건 나를 사랑하지 못한 시절의 대체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욕망은 마치 캔맥주를 거꾸로 흔들다가
갑자기 따서 넘쳐버린 거품과 비슷했다.
수입차 매장을 다녀온 날, 나는 멍하니 거울을 봤다.
정말 저 차를 타는 내가 멋져 보일까?
그때부터 조금씩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자꾸 겉모습을 포장하고 싶어 할까.
나는 왜 누군가의 ‘인정’에 목이 말랐을까.
그리고 나는 왜 지금 이 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걸까.
그런 질문들이,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은 이 밤에도 말이다.
요즘은 외제차 대신,
도서관 앞 벤치에서 아이들과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좋다.
어릴 적 내가 꿈꾸던 ‘멋진 어른’은
비싼 차를 모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떤 차를 타든
더 이상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외제차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내린 해방이다.
맥주 거품이 점점 사그라든다.
한 모금 마시고, 나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진짜 멋지게 살고 있니?”
답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멋진 차보다 진짜 나에게 집중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너도 이제 차 한 번 바꿔야 하지 않냐?”
친구의 한 마디가 마음을 긁었다.
비슷한 또래 친구는 벌써 수입차를 탔다.
같은 해에 입사했고, 비슷한 연봉을 받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외제차를 몰고,
나는 아직도 국산 준중형을 타고 있었다.
비교는 참 잔인한 놈이다.
특히 그 비교가 ‘보이는 것’에 기댈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갑자기 내가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웃긴 건,
그 친구가 외제차를 뽑고 난 뒤,
나는 그와 연락을 줄였다.
뭔가 그 옆에 서기 싫었다.
질투일까, 부끄러움일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자꾸 외제차를 검색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 욕망을 읽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차 시승기를 추천했다.
사실 나보다 더 나를 알고 있는 건
그 알고리즘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 욕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다시 현실이 보였다.
차가 나를 멋지게 만들어주는 건
딱 ‘3일’이라는 말이 있다.
타는 순간 설레고,
주차장에서 사진 찍을 땐 뿌듯하지만,
기름값과 할부금 고지서가 날아오기 시작하면
그 설렘은 빠르게 꺼진다.
지금 내 삶에 가장 필요한 건
멋진 외형이 아니라
편안한 내면이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도 참 고생 많았지.”
몇 년째 함께한 이 차는
아이들과 여행도 가고,
장 보러도 가고,
비 오는 날엔 차 안에서 노래도 듣고,
내 인생의 많은 순간을 함께 했다.
그걸 왜 잊고 있었을까.
왜 난 계속 더 좋은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외제차는 여전히 멋지다.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타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내가 진짜 바라는 모습이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누군가 말한다.
“사는 데 차도 중요하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차를 타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가다.
차는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에 나를 걸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나니까.
지금의 나는,
차보다 더 나를 잘 몰고 간다.
불안도, 허세도, 비교도
조금은 내려놓고
천천히, 나답게 살아간다.
잔 안에 남은 맥주가
이제 바닥을 드러낸다.
오늘 밤, 이 한 편의 기록이
또 하나의 거품을 꺼트렸기를 바란다.
오늘의 맥주 한 잔 문장
“비싼 차보다 비싸게 여길 수 있는 삶을 꿈꾸자.”
[다음 편 예고]
외제차 욕심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내 안의 허영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차 대신 옷, 시계, 신발, 브랜드 로고에 마음이 흔들렸죠.
겉으로는 "별거 아니야" 하면서도
그 로고 하나에 자존심이 들쭉날쭉했습니다.
나는 왜 그토록 '비싸 보이는 나'를 원했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브랜드를 입어야만 괜찮아 보였던 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옷을 벗어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는 지금의 나도요.
《인생, 맥주처럼 사랑하라》
2편. 브랜드를 입은 자존감
조금 더 솔직해진 이야기로 찾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