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고에 나를 기대던 시절의 이야기
한때는
브랜드 로고가 나를 대신 설명해 주길 바랐다.
티셔츠 왼쪽 가슴팍에,
운동화 옆면에,
가방 정중앙에.
누가 봐도 “아, 저건 비싼 거네” 싶을 법한 그 로고들.
그게 나였다.
아니, 그게 ‘되어야’ 나 같다고 느꼈다.
처음엔 그냥 멋있어 보여서 입었다.
근데 그게 반복되니까,
없으면 불안했다.
없는 날은 괜히 주눅이 들고,
사람 만나는 게 꺼려졌다.
브랜드를 입지 않으면
‘내가 좀 부족해 보이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따라다녔다.
아무도 관심 없는데,
혼자서 머릿속에 전광판을 세워 놓은 것처럼
자꾸만 외모와 이름값을 계산했다.
특히 중요한 날에는 꼭
로고가 큰 옷을 입었다.
뭔가 나를 한 단계 ‘끌어올려’ 주는 느낌.
근데 알고 보면 그건 ‘위로’가 아니라
‘위장’이었다.
자존감은 꽤 비싸게 팔렸다.
때로는 월급의 20%를 옷 한 벌에 쓰기도 했다.
카드값 보고 한숨 쉬면서도,
그 옷 입고 나간 사진을 보면
‘그래, 그만한 값어치는 했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사람들은 내가 뭐 입었는지
생각보다 기억 못 한다.
더 솔직히 말하면,
거의 기억 못 한다.
그리고 진짜 멋있어 보이는 사람은
브랜드가 아니라
말투, 태도, 눈빛에서
자기만의 색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그걸 몰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옷장을 열면
로고보다는 재질을 먼저 본다.
얼마짜리보다는, 얼마나 편한지를 본다.
‘괜찮아 보이기 위한 옷’이 아니라
‘나와 잘 어울리는 옷’을 고른다.
그게 나를 위한 소비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한때는 내 옷장에
브랜드가 10개쯤 줄을 섰고
지금은 3~4벌만 자주 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3~4벌을 입은 내가
예전보다 더 자신 있어 보인다.
왜냐면,
이제는 그 옷에 기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딸아이가 내 티셔츠를 보더니 물었다.
“아빠, 이거 무슨 브랜드야?”
나는 그냥 웃었다.
“아빠 브랜드야.”
그게 허세가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맥주 한 잔 따르며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누가 뭐라든,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냥 나답게 살고 싶은 거다.
로고가 없다고 내가 아닌 게 아니다.
더 이상 브랜드로 나를 입히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내 이름의 브랜드니까.
그래도 가끔은 흔들린다.
모처럼 외출하는 날,
쇼윈도 안에 반짝이는 신상이 나를 부른다.
"너, 요즘 좀 많이 무난해진 거 아니야?"
내 안의 목소리가 말한다.
그럴 때면 맥주 한 캔을 사서 집에 온다.
거품이 차오르는 걸 멍하니 보다 보면
생각도 천천히 가라앉는다.
예전에는
“지금 안 사면 품절된다”는 말에 휘둘렸고,
“남들이 다 산다”는 광고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요즘은
그 말을 듣고도 한 박자 쉬어간다.
“정말 나한테 필요한가?”
“이걸로 나를 좋아하게 될까?”
“아니, 나는 이미 나를 좋아하나?”
이 세상에는
비싸고 멋진 옷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것들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옷보다
내 마음을 덜 불안하게 해주는 옷을 찾는다.
그게 비싸지 않아도 괜찮다.
그 옷을 입은 내가
덜 눈치 보고,
덜 비교하고,
덜 흔들리면 그걸로 충분하다.
“왜 요즘은 예전처럼 안 꾸미냐”는 말을
농담처럼 듣기도 했다.
그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나보다 비싼 옷은 안 입으려고.”
그 말을 나 스스로도
진짜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나는 조금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로고보다 말을 아끼고,
가격보다 마음을 챙긴다.
그게 더 비싼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오늘의 맥주 한 잔 문장
“내가 입은 옷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다음 편 예고]
돈을 벌면 마음도 여유로워질 줄 알았다.
카드값이 밀리지 않게 되고,
통장에 숫자가 조금씩 쌓이면
행복도 따라올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돈은 늘었는데 마음은 더 조급해져 있었다.
더 벌어야 할 것 같고,
더 가진 사람을 자꾸 쳐다보게 됐다.
쌓인 돈만큼, 불안도 함께 늘어났다.
다음 편에서는
‘돈이 많아질수록 왜 마음은 더 가난해졌을까’
그 물음에 대해
내 경험을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
〈3편. 돈을 벌수록 가난해지는 마음〉
당신도 같은 생각을 해본 적 있다면,
한 잔의 맥주와 함께 천천히 읽어주세요.